본격 휴가철을 앞둔 요즘 서점가는 ‘소설 대전’이라고 부를 만큼 소설들 간의 경쟁이 뜨겁다. 얼핏 장르소설이 훨씬 잘 팔릴 것 같지만 의외로 순수소설의 인기도 만만치 않다. 장르소설을 순수소설보다 낮게 평가하는 우리 문단의 관행이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겠다. 확실한 건 순수소설도 작품에 따라선 장르소설 이상의 상업적 성공을 거두는 게 가능하다는 점이다.
소설 대전에서 순수소설 진영의 선봉에 선 이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64)다. 그의 새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민음사)는 지난 1일 한국어판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열흘 만에 30만부 가까이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20∼30대 여성의 평범하고 솔직한 연애 이야기로 독자들의 호응을 얻어 온 정이현(41)씨는 한국 문단의 ‘희망’이다. 2012년 그가 펴낸 장편소설 ‘연인들’(톨)은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그 때문에 최근 나온 신작 ‘안녕, 내 모든 것’(창비)에 거는 출판계와 독자들의 기대도 남다르다.
곧 출간할 조정래(70)씨의 새 장편소설 ‘정글만리’(전3권·해냄출판사)는 올여름 소설 대전에서 최후의 승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동안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에 천착한 저자가 이번에는 중국 대륙으로 눈을 돌려 한층 웅장한 서사를 탄생시켰다.
눈길을 끄는 건 요즘 한국 소설 중 가장 잘 팔리는 세계문학상 수상작가 정유정(47)씨의 ‘28’(은행나무)이다. 전문가들은 이 소설을 “전작 ‘7년의 밤’과 마찬가지로 순수소설과 장르소설의 경계를 허문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작가 스스로도 순수소설과 장르소설 중 어느 한 범주에 포함되길 거부한다. “그냥 독자들이 읽고 싶어하는 소설, 잘 읽히는 작품을 쓰려 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28’의 성공은 순수소설과 장르소설의 구분이 더 이상 무의미함을 보여준다는 시각도 있다. 등단 7년차의 한 소설가는 “작품 자체의 완성도만 높으면 무슨 소설이냐와 상관없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잘 팔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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