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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엄친딸' 동포 인턴 여학생의 무너진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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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5-19 22:16:25 수정 : 2013-09-12 22: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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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내내 한국서 자원봉사 활동
‘차세대 동포의 꿈’ 무참히 꺾여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초대형 사고를 쳤다. 미국 워싱턴 외교가와 이곳에 파견 나온 한국 특파원에게는 초특급 비상이 걸렸다. 특히 기자들에게는 ‘사건 재구성’이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주미 대사관의 사건 보고 내용,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 결과,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대통령 방미 행사를 치른 관계자들의 증언이 모두 엇갈리면서 한동안 통제불능 사태로 치달았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기자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려면 조각 그림을 하나하나 다시 짜맞추는 수밖에 없다. 이 그림의 큰 두 조각은 가해자인 윤 전 대변인, 피해자 인턴이 나눠 가지고 있다. 운전사, 피해자의 친구, 대사관과 청와대 직원 등 다른 관련자들이 가지고 있는 조각은 큰 조각의 틈새를 메울 수 있을 뿐이다. 이 그림을 객관적으로 짜맞추고 있는 측은 메트로폴리탄워싱턴경찰청이다. 한국 기자들은 애꿎은 경찰청 대변인 등 관계자들을 매일같이 들들 볶고 있다. 그래도 미국 경찰관들은 “수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꿈쩍하지 않는다.

국기연 특파원
워싱턴경찰 당국의 조사 내용에는 원천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피해자의 증언과 목격자, 폐쇄회로(CC)TV 자료 등을 확보하고 있지만 가해자가 한국으로 줄행랑을 놓아 대질신문 등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윤 전 대변인은 지극히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재구성한 사건 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쯤되면 기자는 몸이 한껏 달아오른다. 피해자인 인턴을 직접 만나 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를 수 없게 된다.

피해자가 사흘 동안이나 대통령 순방 행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기자가 그의 신원이나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데는 시간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자의 신상이 노출되는 일이 절대 없도록 기자도 극도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가 조심스레 알아본 피해자는 장래가 촉망되는 그야말로 ‘엄친딸’이었다. 그를 잘 아는 친구와 교수들은 한결같이 매사에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실력파 ‘똑순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인턴 부모의 거주지를 찾아냈다. 워싱턴에서 줄잡아 자동차로 2시간 이상 걸리는 교외지역에 집이 있었다. 그곳에 가면 피해자와 부모를 모두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무작정 차를 몰았다. 그 집에 도착했을 때 피해자의 아버지가 때마침 집 앞에서 산책하고 있었다.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가급적 말을 아끼려는 아버지와 인터뷰를 마치고, 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귓전을 떠나지 않는 아버지의 말이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나 쭉 여기서 자란 아이인데 한국에 유달리 관심이 많아 그동안 참 열심히 했어요. 그러나 이번 일로 꿈이 바뀔 것이고, 미국에서도 할 일이 있겠지요. 꿈이라는 것은 늘 바뀌잖아요.”

기자는 피해자의 인적 사항을 취재하면서 그가 외교관이 되거나 국제기구 등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또 한국에서 대규모 국제행사가 열렸을 때 자원봉사를 하려고 한국으로 날아가 여름방학 한철을 몽땅 한국에서 보낸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는 아마 국제관계 분야에서 일하면서 ‘코리아 스페셜리스트’를 꿈꾸었던 것 같다.

그 인턴 여학생이야말로 재미동포 1세 부모가 바라는 ‘드림 걸’이다. 유대인 못지않게 뿌리 의식이 강한 한국인 부모는 지구촌 어디에 살더라도 자녀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한국과 관련 있는 일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재미동포는 얼마 전 1.5세인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낙마했을 때 함께 낙담했다. 재미동포는 이번에 다시 미국 국적의 인턴이 부모의 고국을 도와주려다가 큰일을 당해 또 한 번 상심하고 있다. 재미동포는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의 성추행을 ‘문화차이’라고 주장한 대목에서 가장 분개했다고 한다. 윤 전 대변인에게는 글로벌 시대를 맞아 지구촌 어디에서든 한국과 하나가 되려는 차세대 동포의 ‘꿈’을 짓밟은 죄목을 하나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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