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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철의 영화음악 이야기] 이레이저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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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5-03 17:53:35 수정 : 2012-05-03 17: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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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뜨고 있지만 영상과 소리가 꿈처럼 감지 1977년 제작, 감독, 각본, 편집, 미술, 특수효과를 모두 혼자 도맡아낸 데이비드 린치의 장편 데뷔작 ‘이레이저헤드(Eraserhead)’가 5년의 세월 끝에 완결된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첫 장면까지만 1년 반이 소요됐고, 때문에 주연배우 잭 낸스는 이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4년여 동안 고수해야 했다.

그 어떤 제약도 없는 난해하고 기분 나쁜 흑백 영상은 마치 불가해한 꿈처럼 다가왔다. 뉴욕 영화제에서는 거절당했고, 첫 상영 당시 관객 수는 단 24명뿐이었다. 하지만 그중 20명 이상이 다시 극장을 찾았고, 이후 소수의 열광적 지지에 힘입어 컬트영화의 대명사로 추앙받으며 작품은 수십 년 동안 유령처럼 세계에 퍼져나갔다. 반드시 심야 시간대에 봐야만 하는 영화였고, 한밤중에 잠들 수 없는 이들의 기분 나쁜 동지가 됐다. 중학생 시절 극장에서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것은 일종의 충격적 체험이었다. 단순히 이야기를 지켜보는 것이 아닌, 하나의 세계로 비집고 들어가는 출입구에 다름없었다.

필라델피아의 공업단지, 인쇄공 헨리 스펜서는 교제하던 여성이 불현듯 자신의 아이라며 데려온 미숙아를 돌보게 된다. 여자는 도망가고 미숙아는 끊임없이 칭얼대는 가운데 혼미해지는 정신 사이로 점차 죽음의 환영에 매료되어간다. 참고로 영화에 등장하는 생생한 미숙아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이것이 특수효과인지 아님 실제 생명체인지에 대해 데이비드 린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청각을 자극하는 영화는 없었고, 다행히 이 소리는 모두 음반에 수록됐다. LP와 마찬가지로 두 개의 트랙이 20분, 18분으로 구성된 음반은 데이비드 린치와 음향기사 알란 스플렛이 엮어낸 불길한 ‘소리’의 집합체였다. 귀로 감지하기 어려운 미세한 떨림부터 극단의 굉음까지 크고 낮게 울리는 복합적 노이즈가 뇌의 모세혈관을 자극했다. 사람들의 의식을 잠식해 나가는 사이, 팻츠 월러의 오래된 오르간 연주곡들 또한 단편적으로 삽입된다. 앨범은 2007년 DVD와 함께 리마스터 음반이 재발매됐다.

피터 아이브스가 작곡한 ‘인 헤븐’은 헨리의 환상 속에 존재하는 라디에이터 소녀가 부르는 노래였다. ‘천국에서는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가사로 이루어진 이 미스터리한 곡은 후에 밴드 픽시즈에 의해 다시금 격렬하게 불려진다.

스스로 내면과 정면으로 마주한 젊은 영상작가의 과열된 에너지 덩어리다. 현실도피가 낳은 망상에 투영된 이질적 광경들은 눈과 귀로 모조리 빨려들어간다. 봐서는 안 될 것을 은밀하게 들여다보는 기분의 영화는 무의식 속에 내재된 광기와 부조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분명 눈을 뜨고 있지만 영상과 소리는 꿈처럼 감지된다. 이 긴 밤의 악몽은 지우개 가루가 날리면서 형성되는 어떤 우주의 광경처럼 아득하기만 했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직감을 믿으라는 충고는 꽤 적절하다. 확실히 머리보다는 감각을 써야 하는 영화였고, 그 감촉은 비교적 오래 지속됐다. 인간이 지닌 어두운 심상은 보통 무의식 속에 존재하지만, 이따금 현실로 출몰되곤 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린치는 언제나 그 순간들을 붙잡으려 노력했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음에도 영화 전편에는 어떤 노골적인 실체감으로 흘러 넘쳤다. 그 누구에게도 도달하지 못한 어두운 고백, 혹은 고독한 질문이다.

불싸조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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