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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술술~] “한때 방황했지만 이젠 노래·춤으로 밝은 미래를 꿈꿔요”

입력 : 2012-04-08 17:27:05 수정 : 2012-04-09 13: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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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동아리 ‘뮤즈’ 활동 통해 확 달라진 서울 구로중학교 ‘일진’
한때 ‘문제아’로 낙인찍혔던 중학생들이 뮤지컬 동아리 활동을 통해 밝은 삶을 되찾아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중학교 ‘일진’으로 군림하며 악명을 떨쳤던 이들의 삶은 어느날 “함께 뮤지컬을 해보는 게 어때?”라는 교사의 한 마디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학교와 세상을 향해 폭력을 일삼던 이들은 이제 학교를 다니는 게 누구보다 즐겁다고 한다. 음악과 춤으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미래를 향한 꿈을 수줍게 품어보고 생활태도 또한 180도 변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돼 개봉을 앞두고 있다. 6일 서울 구로중학교 연습실에서 이들의 희망가를 들어봤다.

서울 구로구 구로중학교에서 ‘일진’으로 이름을 날렸던 학생들이 뮤지컬 동아리 ‘뮤즈’를 통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진은 뮤즈 학생들이 거울을 보며 뮤지컬 연습을 하는 모습.
◆뮤지컬을 시작하기까지는

“52만5600분의 귀한 시간. 어떻게 재요 일년의 시간. 그것은 사랑.”

이날 구로중 국제관의 연습실에서는 뮤지컬 ‘렌트’의 주제곡 ‘시즌 오브 러브(Seasons of Love)’가 흘러 나왔다. 헤드폰을 목에 걸고, 지그시 눈을 감고, 박자에 맞춰 발을 구르며 10명의 소녀들이 노래하는 소리였다. 시작할 때는 불협화음도 있었지만 이내 이들의 목이 풀렸는지 아름다운 화음으로 변했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들 수줍게 웃으며 얼굴을 감싸거나 고개를 푹 숙인다. 아직 남들 앞에 서기는 쑥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다른 반주음악이 흘러나오자 이들 표정은 순식간에 당찬 여중생의 그것으로 변신했다. 손을 위로 쭉쭉 뻗었다가, 재빠르게 회전동작을 하며 연습실 정면 거울속 자신들의 모습을 응시한다. 마치 콘서트장의 ‘아이돌’ 걸그룹을 바라보는 소녀팬마냥 행복하면서도 진지한 표정으로 주시한다.

이들은 구로중 뮤지컬 동아리 ‘뮤즈’ 멤버들이다. 10명의 여학생들로 구성된 이들은 지난해 1월부터 뮤즈 활동을 해왔다. 일주일에 3일간 모여 방과 후 2시간씩 함께 연습한다.

지난해 12월 학교 축제 때는 자신들이 직접 짠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 식으로 ‘깜짝 데뷔’하기도 했다. 이후 학교에서 제법 유명해졌다는 이들은 벌써부터 이번 여름에 예정됐다는 두 번째 공연이 기다려지는 모양이다.

때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때론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하는 아이들.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한 치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한때 학교 일대를 주름잡던 ‘일진’이었다.

“대단했지요. 주변 학교에서도 이 아이들 이름을 들으면 벌벌 떨 정도였습니다.” 구로중 생활지도부장인 이평근 교사는 2년 전의 이들을 이렇게 기억했다.

이들은 2010년 입학 때부터 유별났다. 남녀 학생 20명 정도가 떼를 지어 다니며 말썽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냥 말썽쟁이라고 하기엔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수업시간에 교실을 헤집고 돌아다니며 교사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것은 예사였다. 어떤 학생은 교사와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다. 지각·결석 또한 밥먹듯이 했다. 수시로 친구들 돈을 뺏어 학생 전체가 이들을 무서워하고 멀리했다. 인근 중학교까지 원정을 가 패싸움을 벌인 적도 있었다.

이 교사는 ‘대략난감’한 이들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구로중에서 5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며 별의별 애들을 만나봤지만 이러한 ‘문제아’들은 처음 겪었다.

하지만 이들을 놓아버리기는 싫었다. 그는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너희들이 가장 하고 싶은 게 뭐니? 무엇을 하게 해주면 학교 다니는 게 재미있을까?”

“노래요.” “춤이요.” 희한하게도 이들이 하고 싶은 건 비슷했다. 이 교사는 그 길로 서울시교육청 생활지도담당 장학관을 찾았다. 우리 학교 일진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보려고 하는데 뮤지컬을 하고 싶다 하니 도와달라 했다.

담당 장학사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뮤지컬 연출가 성천모(41)씨를 소개해 줬다. 연락을 받은 성씨 또한 흔쾌히 “제가 아이들을 가르쳐보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구로중 일진들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젠 이루고 싶은 꿈 있어요”

시원스러운 노래가 매력적인 함수정(15·가명)양은 지난해 10월 뮤즈 학생들을 모델로 한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 출연했다. 요즘 생활이 어떠냐고 묻자 “공부한다”고 답한다. “배우가 되기 위해 가고 싶은 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에 가려면 성적이 좋아야 한대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교과서를 들춰본 적이 없다고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가거나 공원에서 노는 게 생활의 전부였다.

“2학년 때까지를 생각해보면 내가 뭘하고 살았나 싶어요. 그냥…. 죽어있었던 것 같아요.”

그랬던 함양이 이제는 틈틈이 뮤지컬 연습을 하고 영어 단어를 외우는 ‘모범생’이 됐다. 뮤지컬 연습을 마친 뒤에는 학원에도 간다고 한다. 남들보다 뒤처진 학업을 따라잡기 위해서다.

그는 “전에는 몰라서 안 했지만 이제는 너무 절실해요.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요. 공부 열심히 해서 제가 원하는 학교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바뀐 것은 성적만이 아니었다. 교사와 친구들 관계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는 이전에는 선생님들이 무슨 말을 해도 반항부터 했다. 그런데 뮤지컬을 시작하고나서 학교생활이 재미있어졌다. 그러다보니 선생님들에 대한 생각도, 태도도 달라졌다. 교사들이 정말 아끼고 위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대들기보다는 일단 ‘왜 저러실까’를 생각하게 됐다. “세상을 똑바로 보게 된 거죠.”

그가 교사들에게 예의바르고 숙제도 잘해오는 성실한 학생으로 변하자 전에는 그를 두려워하며 멀리하던 친구들도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뮤지컬을 시작하기 전에도 함양은 반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들과 가까이 지내는 게 겸연쩍고 무서웠다. 그는 요즘에는 일부러 반 친구들을 찾아가 모르는 영어문장과 수학문제를 물어본다고 한다.

그는 “내가 먼저 다가갔더니 신기하게도 친구들이 마음을 열더라”며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요즘은 누구하고도 친하게 지낸다”고 활짝 웃었다.

◆밝아진 표정이 가장 큰 변화

아이들이 지난 축제 때 무대에 올린 창작 뮤지컬 ‘우리는 하나’는 자신들의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렇다. 폭력, 흡연, 무단 이탈 등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뮤지컬을 하게 됐는데 지도에 어려움을 느낀 교사가 포기한다. 이에 실망한 아이들이 오히려 더 열심히 연습을 하고, 공연이 성공하게 되면서 교사도 이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는 이야기다. 공연 대본과 연출은 성씨가 도와줬다.

성씨는 지금도 뮤지컬 배우인 조재은씨와 번갈아가며 일주일에 3일씩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아이들이 처음과 비교해 무엇이 가장 바뀌었는가라는 질문에 바로 “표정이 밝아진 것”이라는 대답이 나온다. 성씨는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이들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고 한다.

이 교사가 ‘너희들을 도와줄 연출 선생님’이라고 소개하자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왔지만 성씨는 아이들에게서 왠지 모를 그늘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뮤지컬에 재미를 붙이지 못한 학생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면서 결국 여학생들만 남게 됐다. 일진으로 군림했던 이들은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몹시 어색해했다고 한다. 지난 축제 때는 공연 직전 화장실로 도망친 학생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이들이 배우로서 자신들의 생각과 감정을 남에게 표현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게 무엇보다 힘들었다”며 “지금도 쑥쓰러워하는 아이들이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기적’과도 같은 변화”라고 말했다.

성씨는 아이들이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화를 자제하고 남을 배려하는 법을 배웠다고 확신한다.

그는 “배우들 중에는 과거 학교폭력이나 왕따 등 학교 부적응자로 자살까지 생각했던 이들이 의외로 많다”며 “그들은 연기를 통해 마음에 쌓여 있던 분노와 한을 토해내며 상처를 극복한다”고 귀띔했다. 학생들이 고마워하냐고 묻자 “이 아이들은 원래 립서비스 같은 걸 못한다”며 “하지만 오히려 이 같은 모습이 더 자연스럽고 인간적으로 보인다”고 웃었다. 성씨는 “올여름에 아이들과 한 차례 더 공연을 하고 내년에는 졸업기념으로 시내 소극장으로 진출해 또 한 번 공연할 계획”이라고 자랑했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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