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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 형사가 회고해 본 '이태원 살인사건'

입력 : 2011-10-13 09:03:28 수정 : 2011-10-13 09: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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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정범 기소했으면 결론 달랐을지 몰라" "지금 와서 생각해보건대 검찰이 둘을 공동정범으로 기소했더라면 사건의 결론이 다르게 났을지도 모르겠다"

14년 전 이태원 살인사건을 수사했던 김락규 금천경찰서 강력팀장은 13일 "유력한 용의자인 아더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 모두 살인사건과 관련해 공동정범 혐의가 있다고 보고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보냈다. 하지만 검사는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 신분을 의식해서인지 "법원과 검찰의 판단은 내가 평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도 얼굴에는 안타까워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팀장은 1997년 4월 용산경찰서 강력반 소속 형사로 있으면서 이태원 햄버거 가게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사건 발생 다음날 유력한 용의자에 관한 제보를 받은 미군범죄수사대(CID)는 한국 경찰과 공동으로 미8군 영내 드래건호텔에서 미 군속 자녀인 아더 패터슨(당시 18세)을 체포했다.

그는 "당시 CID의 수사도 철두철미했다. 패터슨이 자기 소유의 흉기를 미8군 영내 하수구에 버렸다고 진술하자 미군 소방대를 동원해 하수구 덮개를 하나하나 다 들춰내 수색했다"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장시간의 수색 끝에 흉기가 발견되자 현장에 있던 수사 담당자 모두가 환성을 질렀다. 범행 도구는 살인사건 수사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 자료다.

그러나 패터슨은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초지일관 부인했다. 오히려 자신의 친구인 에드워드 리(당시 18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리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수사팀은 혈흔이 선명하게 남은 하얀색 나이키 운동화를 발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조사 결과 피해 고(故) 조중필씨의 피로 확인됐다. 살인 가담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리가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가 나온 것이다.

경찰은 강남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부친과 함께 있던 리를 긴급체포했다.

대질신문까지 벌였지만 둘의 진술은 팽팽히 맞섰다.

리는 경찰 조사에서 "한국 남성이 화장실에 들어가자 패터슨이 따라 들어갔다. 그가 얼마 뒤 나와서는 '내가 일을 저질렀다'고 했고 내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자 '그럼 가서 직접 보라'고 했다. 가서 보니 사람이 죽어 있더라"고 진술했다. "신발의 피는 그때 튄 것"이라고 했다.

패터슨은 "내가 주머니칼을 자랑하며 만지작거리는 것을 보고 리가 칼을 가져갔다.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리가 화장실에서 한 남성을 찔렀고 남성이 내게로 쓰러지면서 피가 묻었다"고 상반되게 진술했다.

리는 조사 도중에도 히죽거리며 함께 있던 아버지에게 "담배 좀 달라"고 해 수사관을 당황케 만들기도 했다.

히스패닉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패터슨은 멕시코계 갱단 소속임을 암시하는 문신을 손등에 지니고 있었다.

김 팀장은 "흉기를 원래 소유한 것, 하수구에 버린 것, 피묻은 옷을 없애려고 시도한 것 등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패터슨에게도 살인혐의가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리와 패터슨을 살인사건의 공동정범으로 판단한 경찰과 달리 검찰은 '피해자의 상처 위치와 방향을 볼 때 피해자보다 덩치가 큰 사람일 것'이라고 한 부검의 의견을 유력한 증거로 키 180㎝가 넘는 리만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리는 증거 불충분으로 1999년 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패터슨은 흉기소지 등의 혐의로만 기소돼 1년6개월 형을 받고 복역하다 1998년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1999년 8월 당국이 출국금지를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떠난 패터슨은 지난 5월 미국에서 체포돼 구금된 상태에서 한국 송환 여부를 결정하는 재판을 받고 있다.

김 팀장은 "얼마 전 피해자 어머니의 인터뷰를 보니 14년 전 사건의 안타까운 기억이 되살아났다. 빨리 패터슨이 송환돼 한국 법정에 서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그리 쉽게만 풀리지는 않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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