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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40년간 기부·봉사’ 신양문화재단 정석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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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8-21 23:45:16 수정 : 2011-08-21 23: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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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분뇨같은 것… 모이면 악취나고 뿌릴수록 풍요로워져”
질문은 ‘말’로 했지만 대답은 ‘글’로 돌아왔다. 기자가 물으면 그는 자기 생각을 단어 몇 개로 정리해 종이에 적었다. 종이가 떨어지면 손뼉을 두 번 쳤다. 옆 방에 있던 비서가 익숙한 표정으로 종이를 챙겨 가져왔다. 1998년 후두암 수술로 ‘음성 장애’를 겪는 신양문화재단 정석규(82) 이사장과의 인터뷰는 목소리 대신 글로 한 시간 좀 넘게 이뤄졌다. 어느덧 책상에 수북이 쌓인 메모지는 그대로 80년 삶의 기록이 됐다.

그가 필담에만 의존한 것은 아니다.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에는 목을 꾹 눌러 어렵게 쇳소리 같은 육성을 들려줬다.

사람의 음성보다 전자음에 가까워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귀 대신 가슴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 이사장은 40여년간 봉사와 기부로 삶을 살았다. 98년 재단 설립 이후 2010년까지 서울대에만 145억원을 기부했다.

82억원을 들여 학생들이 자유롭게 공부할 수 있는 학술정보관 3동을 지었다.

서울대병원에 2005년 난치병 연구기금 2억원, 이듬해 교수초빙기금 12억원을 쾌척했다. 그는 “사회에서 얻은 재산은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이룰 수 있었다”며 “이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당연한 순리”라고 말했다.


◆“돈은 뿌릴수록 풍요로워져”


“돈은 분뇨와 같다. 분뇨가 한 곳에 많이 모여 있으면 악취를 풍기며 썩지만, 밭에 골고루 뿌리면 비옥한 땅을 만들어 좋은 수확의 바탕이 된다. 돈도 나누면 나눌수록 삶을 풍요롭게 한다.” 돈과 기부에 대한 정 이사장의 철학은 이 한 마디에 다 녹아 있다.

사재 5억4900만원을 털어 설립한 신양문화재단은 현재 자산이 189억원이다. 여덟 번 증자했는데 한 번도 제3자 출연금에 의존하지 않았다. 모두 그와 가족이 낸 기부금만으로 충당했다.

“재산의 사회 환원이라는 제 기부 철학에 비춰보면 개인 재산을 재단에 출연한 것은 자부심을 가질 만하죠. 그러나 10여년 넘게 재단을 통해 기부활동을 했는데도 다른 개인이나 단체의 출연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빈곤한 기부 철학을 드러내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메모를 멈춘 그는 다시 목을 눌러 “재산의 축적에 대한 욕망과 후손에 대한 상속 의식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이기 때문에 노력을 해서 얻은 부를 남을 위해 기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며 “그러나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 개개인이 사회가 혼자 사는 곳이 아님을 명심해 적은 돈이라도 기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재단 설립 이듬해인 99년부터 장학사업을 시작해 2010년까지 학생 937명에게 19억1420만원을 지급했다. 학교 말고 다른 교육기관이나 학술연구단체에 기술정보비 등의 명목으로 지원한 돈도 14억8692만원에 이른다.

그의 ‘퇴비 뿌리기’는 교육 사업을 넘어 사회복지 전반에 걸쳐 있다. 72년 국제로타리에 가입해 벌써 40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총무이사, 회장 등 여러 직책을 맡았다. 국제봉사위원장 시절에는 필리핀의 청소년 직업훈련소를 지원하는 국제 봉사사업을 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 5만여명의 로타리 회원 중 처음 ‘초아(超我·나를 뛰어넘는)의 봉사인’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2007년에는 ‘로타리 코리아’ 잡지 10월호 표지 모델로 선정돼 세계 회원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서울 영등포 일대의 독거노인들과 조부모가 손자·손녀하고만 함께 사는 조손가정 등에게 생계비, 난방비를 지원하는 활동도 빼놓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2월 그를 ‘이달의 나눔인’으로 선정했다.


◆“젊은이여, 최고가 되라”

1929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정 이사장은 그 시기 누구나 그랬듯 심한 굶주림에 시달렸다. 그는 대학 때 환기가 안 되는 하숙집 좁은 방에서 시골 사람들이 긴 담뱃대에 넣어 피우던 싸구려 잎담배를 신문지에 말아 수시로 피워댔다. 해방 직후의 배고픔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피운 것이 40여년이 지나 후두암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기 전 그는 6·25 동란 당시 부산에서 임시 개교한 전시연합대학에 다녔다.

이듬해 보생고무산업에 기술사원으로 입사해 16년간 근무했다. 처음에는 한국군 훈련용 신발, 민간용 고무신 등 별다른 기술이 필요없는 단순한 제품을 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67년 태성고무화학이라는 회사를 세워 공업용 특수고무제품 국산화에 힘을 쏟았다. 방적기에 사용하는 고무제품의 국산화에 성공한 그는 이를 전국 방적공장에 공급해 외화를 아낄 수 있었다. 그는 이때 ‘선진 기술 습득을 위해 인재 양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가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한 것은 99년 미국 하버드대학을 방문했을 때다.

“하버드대 학생들이 캠퍼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도서관 약 100개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당시 하버드대 재정이 약 200조원인 것에 비해 서울대 발전기금은 하버드대의 1%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기금 조성과 함께 소규모 도서관 건립을 재단 목표로 삼기로 했죠.”

정 이사장은 젊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분야에서 ‘톱’이 되라”고 당부한다.

이를 위해 항상 비전을 세워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충고한다. 지금까지 재단이 지원한 학생 중에서 노벨상을 받을 만큼 유명한 과학기술인이 탄생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는 “외국 회사에 값비싼 로열티를 지급하는 나라에서 이를 받는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분야에서 최고 인재가 나와야 한다”며 “젊은이들에게는 요즘과 같은 나약한 정신력이 아니라 ‘꼭 1등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양문화재단 정석규 이사장은 “기부는 액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에 골고루 뿌려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차수 선임기자
◆“‘봉사’라는 아름다운 유산 후세에 남기고 싶어”


정 이사장은 요즘도 매일 재단 사무실에 출근해 오후 7시까지 업무를 본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관계로 일 처리는 주로 전자우편, 편지 등에 의존한다. 그가 요즘 추진하는 일은 옛 미군 공군기지가 있던 필리핀 앤젤레스의 한국인학교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교포들이 많이 사는데 어린이를 위한 현지 재단법인 설립 절차를 진행 중이다. 지난해 7월 이미 지상 3층 건물이 들어섰다.

그는 주변에서 ‘재산이 있으면 편하게 살면서 자녀에게 상속하지, 왜 기부를 하느냐. 대외홍보를 위한 것 아니냐’는 말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정 이사장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기부의 기쁨을 모르는 사람과 무슨 말을 나눠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 이사장은 “내가 지원한 사람이 무럭무럭 커가는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기부나 봉사에 대해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며 “모두가 직접 작은 봉사라도 경험해 기쁨을 알고 그 ‘바이러스’가 사회 전체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글=조민중, 사진=지차수 기자 inthepeop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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