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지체장애인 이종만(56)씨는 최근 경춘선 전철을 타고 강원도 춘천에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다른 장애인 친구들과 강화도로 1박2일 여행을 갔다왔다. 이씨는 전동휠체어를 두들기며 “이 바퀴로 갈 수 있는 곳이면 다 다녀볼 생각”이라고 말했다.이씨는 35년 전 강원도 영월의 한 군부대 막사 신축 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다 추락해 목뼈를 다쳤다. 이 사고로 그는 목 아래를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하지만 끈질긴 재활노력 끝에 지금은 상체를 자유롭게 쓴다. 성격도 이전보다 밝아졌다. 운동에 대한 욕구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21일 서울 강남구 개포4동 강남구민체육관 건물 앞. 이씨는 현관 앞에 서있는 ‘체육관 이용 안내문’을 가리켰다. 강남구민은 물론이고 다른 구 주민까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장애인도 주민일까요?”
이씨가 알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물었다.
건물에 들어서자 왼편으로 탁구장 2개가 눈에 들어왔다. 탁구장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10㎝가 족히 넘는 ‘턱’이 막아 세웠다. 무리해서 휠체어로 넘으려다가는 뒤로 넘어갈 것 같았다. 탁구장을 지나치자 에어로빅장과 탈의실, 휴게실 등이 나타났으나 이곳도 높은 턱으로 휠체어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화장실도 출입문이 좁아 휠체어로 아예 들어설 수 없었다. 이씨와 동행한 취재팀이 들어가 본 화장실 내부에는 장애인용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았다. 이씨는 “운동은 둘째치고 급한 일도 해결하지 못할 곳”이라고 혀를 찼다.
반대편에 있는 헬스장 앞에도 높은 턱이 막고 서 있었다. 헬스 트레이너는 “장애인이 이용할 만한 기구도 없고 휠체어로 돌아다닐 공간도 안 된다”면서 “2층 사무실로 가 알아 보라”고 말했다.
이씨는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밖으로 나가 경사로를 이용, 2층으로 향했다.
21일 참여할 만한 운동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보러 서울 강남구민체육관을 찾은 1급 지체장애인 이종만(56)씨가 휠체어 접근을 막는 탁구장 입구의 높은 턱 앞에서 주민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이씨는 철문 손잡이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돌려서 여는 동그란 손잡이는 손이 불편하거나 쥐는 힘이 약한 장애인에게 큰 장애물이죠.”
막대 형태 손잡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힘겹게 문을 연 이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직원 만나러 가는 길 자체가 전쟁이네요”라고 말했다. 이주연 관장 직무대리는 “시설이 오래된 탓에 많이 미흡하다”고 미안해했다. 이 체육관은 1994년에 지어졌다.
◆공공 체육시설이 이 정도인데…
문화체육관광부가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의뢰해 전국 체육시설 876곳을 대상으로 점검한 결과를 취재팀이 단독 확인한 결과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한 비율은 54.6%에 지나지 않았다. 장애인 편의시설을 아예 설치하지 않은 곳이 36.7%, 설치했더라도 법적 기준에 맞지 않은 시설이 8.7%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문광부가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지난해 4월부터 장애인들에게 모든 편의시설을 제공하도록 돼 있는 공공기관(국가 또는 인구 50만명 이상의 지자체 시설)의 체육시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관련 법상 적용대상은 연차적으로 늘어나는데, 내년 4월에는 인구 30만명 이상 지자체가 설치한 공공체육시설로, 2015년 4월에는 인구 30만명 미만 지자체 시설로 확대된다.
이 시설들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비율은 대전시가 81.1%로 가장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어 용인시(69.6%), 안양시(69.1%), 인천시·대구 달서구(64.3%), 부천시(64.2%), 울산시(63.6%), 창원시(60.9%), 서울 관악구(60.3%), 서울시(59.7%), 국가(59.2%) 등 순이었다.
설치율이 가장 낮은 곳은 안산시(36.5%)로 조사됐다. 천안시(39.9%)와 고양시(42.5%), 제주도(44.4%), 전주시(45.4%), 청주시(45.6%), 전북도(45.7%), 대구시(49.5%), 성남시(49.6%), 전남도(51.5%), 포항시(52%), 인천 부평구(52.6%)도 전국 평균에 못 미쳤다.
편의시설 종류별로 접수대와 관람석 등 기타시설의 설치율이 17.9%로 가장 낮았고 ▲수영장 입수보조시설 등 편의시설 23.4% ▲점자블록 등 안내시설 24.5% ▲화장실 등 위생시설 58.7% ▲주출입구 접근로 등 매개시설 67.5% 순이었다.
문광부 한 관계자는 “국가 또는 지자체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개선하라고 지침을 내리지만 과태료 부과 등을 통해 강제할 근거 규정이 없다”며 “개인이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진정하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열린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희준 팀장, 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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