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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운동하고 싶어요] 뇌병변 어느 20대의 생활체육 좌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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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20 09:29:06 수정 : 2011-06-20 09: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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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강좌중 장애인 프로 전무… “등록해도 힘들 것” 희망 꺾다
송파체육문화회관 문턱 높아… 시설도 돌볼 인력도 하나 없어
입구엔 ‘장애인 반값’ 버젓이… 전문시설도 보호자 동행해야
여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쬔 지난 17일.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에 위치한 ‘송파구체육문화회관’ 1층 로비에 한 여성이 들어섰다. 뇌병변 장애 2급을 앓고 있는 신나리(25·여)씨다. 신씨는 분만 예정일보다 일찍 양수가 터져 태어나면서 응급조치를 제대로 못 받아 장애를 안게 됐다. “수영반에 등록하러 왔는데요.” 안내창구를 찾은 신씨가 뒤틀리는 표정으로 어렵게 말을 했다. 그의 큰 목소리가 로비에 울렸다. “장애인 프로그램이 없는데….” 창구직원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신씨가 다시 힘들게 “저 같은 사람은 그럼 어떻게 해요”라고 묻자 직원은 “온 적이 없어서…”라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10분여 지나 도움 요청을 받은 수영 지도사 김모씨가 왔다. 신씨는 회관을 찾은 이유와 어떤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지 등을 말했다. 김씨의 얼굴에도 난감함이 어렸다.

김씨는 “일반 프로그램에 등록해도 괜찮은데, 다만 따로 봐드릴 수는 없다”면서 “레인에서 누군가 속도를 내지 못하면 다른 회원들이 불편해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노인들 때문에 운동을 못하겠다. 수영장 반을 나누라’는 식의 민원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서로 불편할 것”, “많이 힘들 것”이란 표현이 계속됐다.

2004년 문을 연 이 회관은 연면적 9000㎡ 규모로 연간 7만여명이 이용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총 101종목, 327강좌가 개설돼 있다. 수영만 하더라도 유아·어린이·성인·여성반을 비롯해 단기속성반, 실버건강대학, 주말·자유수영 등으로 프로그램이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장애인 강좌는 없다. 헬스, 농구, 축구, 배드민턴 등 다른 스포츠도 장애인 프로그램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신씨는 고향인 대구에서 고교까지 마치고 2006년 서울시내 사립 S대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지난해 8월 졸업한 뒤로 강동구 성내동에 원룸을 마련해 체육문화회관 인근 직장으로 출퇴근을 한다. 

신씨는 “장애인도 주민인데 장애인 프로그램을 하나라도 만들 순 없느냐”고 수영 지도사에게 물었다. 김씨는 “기존 강좌가 꽉 짜여 있어 틈을 낼 수 없고 경사로 같은 시설도 따로 안 돼 있다”고 미안해했다.

결국 구민을 위한 체육회관에는 장애인의 체육활동을 위한 시설이나 인력, 프로그램, 어느 것도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50% 할인’ 대상에 장애인도 포함된다는 안내문이 나붙어 있었으나 50% 할인은 둘째치고 회관을 이용할 수조차 없는 현실이다.

김씨는 발걸음을 돌리는 신씨에게 “도와줄 수 없어 미안하다. 언젠가 개설되지 않겠느냐”고 격려했다.

신씨가 다시 인근 오금동에 있는 ‘서울곰두리체육센터’를 찾았다. 서울 시내 6개 장애인전문체육시설 중 한 곳이다. 전문시설이다 보니 장애인이 이용하기에 별 불편함이 없을 만큼 편의·교육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프로그램도 수영, 배드민턴, 헬스, 골프 등이 마련돼 있고, 강사가 일대일 강습을 해 주는 ‘개별화 체육’도 운영하고 있다. 신씨는 “일반인처럼 물살을 가르며 수영하는 것이 소원”이라며 “개별화 체육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5살 때 처음 걷고 7살이 돼 말을 했을 만큼 성장이 더뎠지만 어머니와 함께 끊임없이 물놀이를 즐겼기 때문에 물을 좋아한다. 하지만 센터측 관계자는 “일단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둬야 한다”면서 “얼마나 기다릴지 기간은 예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씨가 “대충만이라도 알아야 기다릴지, 포기할지 결정할 것 아니냐”며 답답해하자, 센터 관계자는 “총 8명이 수강 중인데 그만두는 사람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고 대기자만 15명”이라고 답했다. 신씨로선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20∼30명이 참여하는 수영 장애인반에 등록하기로 했다.
지난 17일 서울시 송파구 거여동 ‘송파구체육문화회관’을 찾은 뇌병변 장애 2급인 신나리(25)씨가 착잡한 표정으로 운동 프로그램 소개 안내문을 살펴보고 있다. 신씨는 회관 관계자한테서 “프로그램 참여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수영복은 몸에 달라붙어 갈아입기가 힘든데, 탈의실이나 샤워실에 보조인력이 있나요?”

신씨는 부모 도움을 안 받기 시작한 지 6년째지만 여전히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센터 관계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있기는 한데 항상 있지는 않다”면서 “가급적 보호자와 함께 오길 권한다”고 답했다. 장애 정도에 따라 활동보조원 사용료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있지만 중중장애인이 아닌 신씨로서는 장애등급을 다시 받고 소득수준 판정 등 추가 절차를 밟아야 하므로 까다롭고 번거로운 일이다. 신씨는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다른 이용자들한테서 도움을 구해 보겠다”며 신청서를 썼다.

“샤워는 어떻게 할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신씨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여기선 힘들겠네요. 집에 가서 할래요”라고 했다. 서울곰두리체육센터 관계자는 “신씨와 같은 사례가 없도록 대책을 세워 보겠지만 서울시 등의 지원이 턱없이 적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박희준 팀장, 신진호·조현일·김채연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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