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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고교생 잔혹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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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24 19:50:41 수정 : 2011-01-24 19:5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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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만 외친 게 아니다. 동물에 대한 인도적 처우도 공론화했다. 1789년 ‘도덕과 입법의 원리 서설’에서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며 동물 권리를 주창했다. 19세기 이후의 보호운동에 씨를 뿌린 셈이다.

영국 의회는 1822년 동물 학대를 금지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딕 마틴’ 법이다. 개, 소, 닭, 곰 등을 괴롭히거나 싸움을 붙이는 행위가 이로써 금지됐다. 가축을 도살장에 가두는 기간도 제한됐다. 영국 왕립 동물학대방지협회가 결성되고, 동물병원과 보호소가 생긴 것은 그 이후다. 미국은 1871년 동물복지법을 제정했다. 일본, 프랑스 등은 20세기에야 비로소 뒤따랐다. 대한민국에서 법률 제4379호로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것은 1991년이다.

사회 전반의 인식은 아예 헌법으로 동물 권리를 보장한 독일 등에 비할 바 아니고 법제 역사도 일천하지만 국내 변화의 바람은 제법 거세다. 개나 고양이를 키워보겠다고 인터넷 동호인 카페를 기웃거리는 이들이 ‘분양’ 운운하다가는 잔소리를 들을 공산이 크다. ‘입양’이라고 운을 떼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 가정의 69%는 반려동물을 한 침대에서 재운다. 한국이 달려가는 방향도 그쪽이다. 말 못하는 동물을 상대로 한 잔혹극이 근래 자주 물의를 빚는 현실에서도 변화가 체감된다. 이제 쉽게 넘길 수 없는 불법 범죄인 것이다. 실정법의 처벌 수위는 아직 낮은 편이지만 사회적 지탄은 피하기 힘들다.

최근 경기 양주시 일대를 뒤숭숭하게 만든 개 연쇄도살극의 윤곽이 드러났다. 고교생 7명이 작당해 개들을 잇달아 죽인 혐의로 경찰에 입건된 것이다. 이유는 ‘재미 삼아서’였다고 한다. 동물사랑실천협회 등에 따르면 수법 또한 여간 흉측하지 않다. 둔기로 때리고 불로 지지는 등 엽기적으로 괴롭히다 죽였다. 잔혹하기 짝이 없다.

유대인 학살극을 벌인 나치 독일이 현대 동물법 제정에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매우 역설적이다. 히틀러 심복인 헤르만 괴링은 1933년 8월28일 “동물들은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실험을 경험했다”며 동물 생체 해부를 전면 금지하는 법 제정의 당위성을 설파했다.

재미로 개를 잡았다는 고교생들은 어찌 봐야 옳은가. ‘금수만도 못한 축’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히틀러 집단과는 싹수부터 다른 부류’로 봐야 하나.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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