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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조의 기술- 예술가의 남자 (편찬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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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19 09:03:58 수정 : 2011-01-19 09: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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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위량은 중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다. 그녀의 이름은 짱위량, 화가로서 죽는 날까지 사용했던 ‘판’이라는 성은 남편 ‘판찬화’에게서 따온 것이다. 판찬화는 과연 화가 판위량에게 어떤 남편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이름 대신 남편의 성을 사용했을까.
 
새로운 중국을 꿈꾸던 젊은 청년

판찬화는 1883년 안후이성의 한 도시인 둥청(桐城)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 중국은 외세의 노골적인 침략으로 혼란스러웠던 청나라 말기였다. 어려서부터 조국의 장래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의를 보였던 그는 공부를 하기 위해 일찍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떠나 베이징으로 간 판찬화는 무능한 관리들과 제 기능을 잃어버린 사회를 보고 겪으며 구시대의 폐단과 더불어 신문물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에 새로운 중국 건설에 대한 결의를 다짐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과 교류하며 조금씩 꿈을 키워갔다.  

판찬화가 생각하기에 새로운 중국 건설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신학문을 배우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에 문을 열고 신문화에 대한 개혁을 단행한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그때 그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이때 판찬화는 일본에 와 있던 쑨원을 만나게 되었고 곧바로 중국혁명동맹회(1905년 쑨원이 신해혁명 준비 공작을 수행하기 위해 설립한 중국의 혁명 단체. 특히 유학생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고 결속력을 다졌다. 후에 신해혁명이 성공하여 중화민국이 성립되자 국민당으로 개편되었다)에 가입했다.

부모님이 정해주신 여인과의 결혼과 귀국

일본에서 신학문을 배우며 새로운 중국 건설이라는 목표에 매진하던 중 판찬화는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가 잠시 고향에 돌아온 틈을 타서 부모님이 이미 구해놓은 신붓감과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신문화의 도입과 함께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유연애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였지만 결혼을 전적으로 부모의 뜻에 따르는 전통적인 관습도 여전히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판찬화는 결혼식을 올린 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 정진했다.  

1909년, 10년간의 긴 유학을 마치고 마침내 귀국한 판찬화는 동맹회 일을 계속하는 한편 고향 안후이성에서 가까운 우후현에 세관 감독으로 부임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여덟이었으니, 우후항과 같이 번화한 개항장을 둔 지역의 세금 감독으로 부임하기에 상당히 젊은 편이었다.

이곳에서 판찬화는 평생에 걸쳐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될 여인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짱위량, 신임 세금 감독으로 부임한 판찬화를 환영하기 위해 상인들이 주최한 연회에 처음으로 얼굴을 내민 초짜 기생이었다.

기생 짱위량과의 운명적인 만남

판찬화가 세관 감독으로 갓 부임했을 당시 우후현은 뇌물 수수가 오랜 관습으로 자리 잡고 있던 지역이었다. 우후현의 상인들이 그의 부임을 환영하는 연회를 열었던 이유도 바로 판찬화가 전임 세관 감독들처럼 뇌물을 받고 상인들의 활동을 눈감아 주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은 판찬화가 가족과 떨어져 생활한다는 사실을 알고 뇌물로 여자, 즉 색(色)을 준비했다. 이춘옌 출신의 기생 짱위량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던 것이다.

연회가 끝나고 판찬화가 돌아가자 상인들은 이춘옌의 주인과 작당을 해서 짱위량을 단장시켰다. 그리고 늦은 밤을 틈타 그녀를 판찬화의 사택으로 보냈다. 하지만 상인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판찬화는 처음부터 뇌물을 받을 생각이 없었으며, 더구나 짱위량은 그가 평생을 함께할 운명의 여인이라는 것이었다. 

예기치 못한 두 번째 결혼

판찬화가 위량에게 선물한 목걸이
한밤중에 느닷없이 곱게 단장을 한 위량이 나타나자 판찬화는 몹시 당황했으나,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인들의 속셈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위량의 처지를 알고는 그녀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도록 이춘옌에 몸값을 지불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자유의 몸이 되어도 홀로 살아갈 길이 없던 위량은 제발 보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판찬화는 차라리 이 기회를 역이용하여 상인들에게 정면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 밤이 지나기도 전, 그는 신문사에 연락을 하여 자신이 위량과 정식으로 결혼했다는 소식을 알리고 다음 날 아침 신문에 발표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실 신문물을 배운 판찬화는 축첩제도(국가나 사회에서 첩을 두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가 반드시 타파해야 할 악습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위량을 위해, 또 뇌물로 자신에게 족쇄를 채우려는 상인들의 허를 찌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결혼이었다.

위량은 처음에 판찬화의 행동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불안해했지만 날이 밝자 모든 의문이 풀렸다. 다음 날 아침, 신문에서 위량과 판찬화가 정식 부부가 되었다는 기사를 본 우후현의 상인들은 깜짝 놀랐다. 기생인 위량을 이용해 신임 세금 감독을 쥐락펴락하려던 그들은 졸지에 세관 감독의 부인이 된 위량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굴렀고, 그녀가 이춘옌과 상인들의 온갖 비리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하룻밤 사이에 상황이 완벽하게 역전된 것이다.

비록 ‘첩’이긴 했지만 이 결혼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기생집에 팔려 박복하게 살아온 짱위량에게 있어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기도 했다.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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