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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소리를 국회로] ③민주주의 꽃피우는 입법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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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1-05 11:08:09 수정 : 2011-01-05 1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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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특별법… 부패방지법… 민의가 이끌어낸 값진 결실 “영국 국민은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 버린다.”

영국의 대의(간접)민주주의 체제를 놓고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장 자크 루소가 한 말이다.

이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이 바로 청원 제도다. 시민이 입법 과정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통로다.

특히 국민이 입법에 제안을 직접 하는 국민발안 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청원 제도는 국민의 목소리를 입법과정에 반영하는 사실상 ‘유일한 창구’라서 더욱 중요하다. ‘성폭력특별법’과 ‘부패방지법’,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수많은 법안이 청원을 통해 문제 제기와 국회 논의가 이뤄진 끝에 제정됐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민사집행법 개정안’도 국민 청원을 계기로 입법 논의가 시작됐다.

◆국민이 입법에 직접 참여하는 창구

우리나라에서 청원제도가 본격적으로 활용된 건 1987년 민주화 항쟁 이후인데, ‘한국 여성의전화’ 주도로 전개한 ‘성폭력특별법’ 제정을 의미 있는 청원 사례로 들 수 있다.

91년 1월 남원에서 31세 주부가 9세 때 자신을 성폭행한 50대 남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짐승을 죽였다”는 진술로 유명한 ‘김부남 사건’이다.

여성계는 91년 10월30일 ‘성폭력특별법 제정’ 청원을 국회에 내고 본격적인 입법운동에 나섰다.

성폭력 방지를 위한 개별 법안으로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취지의 이 청원은 13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여성계는 92년 다시 14대 국회에 입법청원을 냈고 93년 말 국회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는 결실을 얻었다.

‘부패방지법’은 시민단체가 3차례 입법 청원을 비롯해 6년간 끈질기게 공론화 작업을 한 끝에 이끌어낸 성과물이다. 참여연대는 95년부터 부패방지법 제정 청원을 준비하기 시작해 96년 11월 국회에 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이 법안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부패방지법 제정에 찬성 서명을 하고 이를 10대 공약에 담은 김대중 정부 들어서도 논의는 공전만 거듭했다. 2000년 총선 낙천·낙선 운동에서 대상자 86명 중 59명이 낙선하면서 분위기가 급반전돼 2001년 6월 국회에서 청원안과 여야 발의 법안을 합쳐 ‘부패방지법’을 통과시켰다.

여성계와 참여연대가 나선 청원 사례도 이처럼 오랜 시일이 걸리다 보니 국민 개인이 청원을 내서 성과를 이루기는 쉽지가 않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당시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사무국장)은 “의원들 서명을 받아 정치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청원 내용이 국회에서 다뤄지지 않으면 안 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며 “부패방지법 제정 과정은 유명무실한 청원 제도를 현실적으로 작동하도록 실험한 사례라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참여연대가 1996년 제출한 부패방지법 입법 청원은 정치권의 반대로 공전을 거듭하다 2000년 시민사회단체가 부패 국회의원에 대한 낙선운동을 벌인 뒤 분위기가 급반전해 2001년 제정됐다. 사진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들이 낙선 대상자 명단을 발표하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국민 의견이 담긴 청원, 법을 살찌운다

청원이 입법으로 이어지기까지 적잖은 시일과 노력이 필요하다 보니 개인보다 단체에 의해 활용되는 사례가 많다.

시민사회단체는 청원 제도를 국회에 민의를 전달하는 주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참여연대가 제출한 청원안만 지금껏 131건에 달한다. 경실련도 25건의 청원을 냈고, 중도보수로 분류되는 바른사회시민회의도 7건의 청원을 제출했다.

청원한 내용이 바로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국회의원들이 입법하는 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18대 국회에서 185건의 청원 중 단 1건만이 통과됐으나 몇몇 청원은 국회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법을 살찌우기도 한다.

참여연대가 지난해 11월 낸 ‘민사집행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 청원 내용은 민주당 박영선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에 대부분 반영되어 지난해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청원이 자체 법안으로 이어지지 않았더라도 의원 발의안에 반영된 것까지 따지면 18대 국회에서 반영률은 제청 청원 32.5%, 개정 청원 33.8%로 높아진다.

명지대 정상호 교수(정치학)는 “청원은 국민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입법에 반영하는 참여민주주의 성격과 국회의원이 여러 소위에서 심사하는 대의민주주의 요소를 모두 갖춘 독특한 제도”라며 “언뜻 잘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요소가 공존하면서 민의를 국회에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사건팀=이강은·나기천·조현일·이귀전·유태영 기자 society@segye.com
■ 부패방지법 제정과정

●1996년 11월=참여연대, 부패방지법(공직자 윤리규정, 재산등록 및 공개, 공익제보자 보호, 돈세탁 규제 등 포함) 입법 청원

●1997년 2월=참여연대·경실련·민주노총 등 ‘시민·사회·종교단체 연석회의’, 특별검사제 도입 및 부패방지법 제정 국민운동 돌입 선포

●1997년 7월=‘특검제 전면도입과 부패방지법 제정 국민행동’, 환경운동연합 마당에서 4박5일 농성

●1998년 12월=15대 국회의원 대상으로 서명운동(299명 중 253명 찬성)

●1999년 12월=청원안 및 여야 부패방지법안, 제15대 국회 임기만료로 자동 폐기

●2000년 7월=참여연대·경실련·한국YMCA 등 ‘부패방지입법시민연대’ 결성

●2000년 8월=16대 국회의원 대상으로 서명운동(299명 중 208명 찬성)

●2000년 9·12월=16대 국회에 부패방지법 입법 청원

●2001년 4월=청원안과 여야 발의 부패방지법안 국회 심의과정에서 폐기, 법사위 대안 제시

●2001년 6월=부패방지법 국회 통과(재적 268 찬성 135 반대 126 기권 7)
1995년 3월 부동산투기억제와 토지거래의 정상화를 위한 부동산실명법 제정 청원
1997년 2월 정치자금법 개정 청원
1999년 4월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개정 청원
2005년 4월 공직자윤리법 개정 청원
2009년 10월 SSM 개설 허가제를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청원
1996년 11월 부패방지법 제정 청원
1996년 11월 노인복지법 개정 청원
1998년 7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청원
2009년 11월 민사집행법 개정 청원
2010년 6월 이자제한법·대부업법 개정 청원
2003년 1월 사면법 개정 청원
2003년 4월 고위공직자뇌물의제법 제정 청원
2003년 4월 상비군 창설법 제정 청원
2003년 11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청원
2007년 7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 청원(복면시위 금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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