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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이든, 명품이든, 우리는 행복할지니”

현대문학 7월호 ‘짝퉁’주제 엽편소설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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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7-02 17:32:03      수정 : 2010-07-02 17:32:03
짧은 소설에는 ‘콩트’라는 명칭을 붙이거나 낙엽 한 장 크기라 하여 ‘엽편(葉片)’, 혹은 손바닥만 하다 하여 ‘장편(掌篇)’이라는 수사를 동원한다. 짧아서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짧은 만큼 촌철살인의 기지와 삶을 한 줄에 꿰뚫는 깊은 성찰이 필요한 난해한 장르다. 하지만 읽는 이 입장에서는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월간 ‘현대문학’이 최근 발간한 7월호에 ‘짝퉁’을 주제로 ‘엽편소설 특집’을 꾸렸다. 특집에 참여한 이들은 심보선 김경주 김영남 김이정 김채원 마광수 박남철 박상순 송하춘 연왕모 오탁번 윤제림 윤후명 이강숙 이원 이응준 이장욱 정현종 한정희 함성호 등 20명에 이른다. 신예에서 원로급까지, 소설가는 물론 시인들까지 대거 필자로 끌어들여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통상 200자 원고지 20여장 분량을 ‘엽편소설’의 평균 분량으로 여기지만 이번 특집에 참여한 이들은 7∼8장에 이야기를 압축해 넣어야 하는 조건이었다.

“나는 양 한 마리를 사육하고 있다. 잘 생각해보면 여러분도 나와 같은 양 아니면 이와 비슷한 것 한 마리쯤은 사육하고 있을 것이다.”

김영남 시인은 ‘유럽산 양(羊)을 버리다’에서 겉과 속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인간들의 태도를 ‘양 사육’에 비유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해낸다. 결국 화자는 “여우도 양처럼 뻔뻔스럽게 끌고 다니는 세대, 아니 하이에나를 양으로 믿어주는 세대”에 넌덜머리를 내고 자신의 내면 속 외양간을 단숨에 뜯어버린 뒤 그 자리에 정원을 꾸며 꽃을 들고다니는 길을 택한다.

◇오탁번씨                      ◇윤후명씨                     ◇이강숙씨                      ◇한정희씨
◇김영남씨                      ◇이응준씨                      ◇이장욱씨                     ◇김경주씨
김 시인 외에 다른 필자들도 ‘인간 짝퉁’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다. 오탁번 시인은 ‘반품’에서 다 늙은 아내가 홈쇼핑에서 프랑스제 명품 팬티를 구입했다가 짝퉁임을 알고 크게 실망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야유한다.

“또 반품하려고? 그냥 입어. 당신도 짝퉁인데 뭘. 첫날밤 당신이 입었던 분홍 팬티 생각 안 나? 그땐 당신이 진짜 명품이었다구. 그런데 이제 보니 짝퉁이지 뭐야.”

명품도 세월이 흐르면 짝퉁으로 변하는가. 남편의 괘씸한 입놀림에 아내는 그날 내내 늙은 남편의 과거 행적을 들추어내며 온갖 지청구를 퍼부어댔다. 이와는 반대로 소설가 이강숙은 허구한 날 경조사를 핑계로 술에 탐닉하는 ‘짝퉁남(男)’을 그려내면서 아내의 입을 빌려 세상을 질타한다.

“자기만 안다고 하는 당신 같은 남편이 많아서 이 세상조차 온통 짝퉁이라는 걸 당신은 왜 몰라요? 나까지 짝퉁을 만들 생각은 말아요. 아내가 짝퉁이면 나라가 망해요.”

소설가 이응준의 ‘물고기 그림자’는 시인들의 것보다 더 시적인 아름다운 엽편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목남’은 어둠 속에서 상처에 시달리는 여인 ‘은희’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원래 인간은 물고기처럼 바다에서 살았는데 훗날 땅 위로 올라온 인간은 바다에서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대신 내면에 물고기 모양의 그림자를 거느리지만 이 물고기 그림자는 자기의 주인이 극도의 고통에 처하게 되면 견디다 못해 멀리 떠나가버린다”고 생각한다. ‘절망’이란 “소란스러운 충격이 아니라 뼛속 깊은 조용한 피로”라는 시적인 서술도 일품이다. 결국 은희의 몸에서 쑤욱 빠져나와 어둠의 바다로 천천히 헤엄쳐 멀어지는 물고기 그림자를 보는 목남. 그에게 그림자의 본질은 짝퉁 같지만 기실 짝퉁이 아닌 영혼의 실루엣이기도 한 것이다.

‘짝퉁이거나 명품이거나, 귀엽거나 뿌듯하거나, 어쨌거나, 우리는 행복할지니’를 서문으로 집필한 심보선 시인은 “교환 불가능한 삶, 어떤 외적 척도로도 측정될 수 없는 삶, 그러나 고유의 규칙과 윤리와 아름다움을 모색하는 삶, 불가능으로부터 가능성의 꽃을 피워올리는 이 내면의 비밀한 삶이야말로 거짓말의 기호제국을 돌파하는 진짜 삶”이라고 썼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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