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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기자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51> 오슬로 대학 박노자 교수

한국인보다 더 거침없이, 더 날카롭게 한국을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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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5-17 21:33:53      수정 : 2010-05-17 21:33:53
5월 중순 며칠 체류한 북유럽의 노르웨이는 밤 10시가 넘어도 환했다. ‘백야’의 나라다웠다. 오슬로 국립대학을 찾았다. 오슬로 대학은 시내 중심지인 중앙역에서 지하철로 15분 걸렸다. 오후 4시에 찾은 캠퍼스에서는 여유가 묻어나왔다. 오슬로에서는 모두가 그랬다. 많은 이들이 활보하는 오슬로 중앙역 인근의 카를 요한 거리에서도 번잡함은 없었다.

#토종보다 더 치열하게 한국을 들여다 보는 귀화인

오슬로 대학에서 만난 학자는 러시아의 아들이었다가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귀화 지식인 박노자(朴露子·37) 교수다. 그는 토종 지식인보다 더 치열하게 우리의 모습을 들여다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0층 건물의 4층 인문대 연구실 문을 노크하자, 그가 환하게 반겼다. 노르웨이에서 벽안(碧眼)의 교수가 한국 기자에게 “어서 오세요”라는 한국말을 건넸다. 감격스러웠다. “한국에 있을 때 이웃의 권유로 세계일보도 구독했다”는 말도 고맙다. 그런데 연구실 문에는 ‘박노자’라는 이름 대신 원래 이름인 ‘블라디미르 티호노프’(Vladimir Tikhonov)가 걸려 있다.

◇박노자 교수는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등 복지 이슈가 분출되는 것은 한국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참살이’인 웰빙은 삶의 안정성과 질을 담보해야 하는데, 적절한 노동과 자유시간이 확보될 때 개념 설정이 가능하다”며 “웰빙을 소비적인 시각에서 접근했던 것은 잘못”이라고 설명했다.
오슬로(노르웨이)=박종현 기자
“연구실 팻말은 대학 당국이 만들었고, 한국 여권에 있는 이름을 그대로 옮겼으니 제가 간섭하기가 힘들어요. 여권에 러시아 이름이 그대로 사용된 것은 박노자로 공식 개명하기가 힘들어서에요. 새로운 본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박씨 문중의 양해를 얻든지 행정소송을 하든지 해야 한다는 설명을 법무부에서 들었습니다. 하지만 관청을 상대하는 일이 버겁고 이름 같은 외면에 집착하는 게 의미없어 있는대로 두었습니다.”

연구실은 생각보다 좁았다. 두 사람이 마주보고 이야기하기에도 불편했다. 창문도 좁게 나 있었다. 이 비좁은 공간의 좁은 창문을 토대로 그가 한국을 연구해 온 것이다. 책장을 둘러보았다. 신간 계간지에서부터 오래된 학술잡지와 논문까지 여러 책이 키 작은 호위병처럼 연구실을 지키고 있었다. 카메라를 꺼내들고 말을 걸었다. 좁은 창문을 통해 한국사회를 촘촘히 들여다보는 박 교수가 뷰파인더 속으로 들어온다. 때론 눈두덩을 덮을 정도로 고민하면서 발언하고, 때론 즐거운 듯 손사래를 치는 모습이 잡힌다.

고민과 여유. 이즈음의 그를 규정하는 단어일지 모른다. 그의 논쟁적인 글들이 떠올랐다. 아내의 모국이면서 이제는 자신의 나라가 된 한국 사회의 모순을 그는 곧잘 파고들었다. 우리 안의 집단성이나 파시즘, 국가주의는 그의 주된 비판 대상이었다. 선천적 타자의 시각에다가, 후천적 내부자의 고민이 버무려져 이런 비판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시각은 보수층 일부에서 비판받고 있지만, 그가 비합리적인 접근을 했다는 주장은 별로 없다.

휴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서 몇몇 교수와 인사를 나눈다. 한국에서 건너온 기자와 이 대학의 교수를 서로에게 소개시켜 준다. “인도철학을 전공하는 분이세요. 아시아에 대한 연구 업적이 탁월한 분이지요.” “한국에서 온 기자인데, 복지 사회에 대한 관심이 남달라요.”

#‘춘향전’에 매료됐다가 한국 고대사 연구

정작 관심이 남다르고, 업적이 탁월한 이는 박 교수다. 그의 관심 영역은 통일신라시대의 불교에서 현대 한국 정치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폭넓다. 최근에는 한국 사회 진화론에 관한 영문 책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글에는 단재 신채호와 육당 최남선이 중심에 있다. “육당과 단재는 민족을 매개로 조선과 세계를 바라본 분들입니다. 육당이 타협주의자라면, 단재는 비타협주의자였습니다. 육당은 다카하시 도오루 경성제국대 교수와 함께 살펴보면 좋습니다. 다카하시 도오루와 논쟁하고 다투면서 일본적인 근대 사관을 내면화했거든요. 단재는 육당과 함께 한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분이지요. 단재는 ‘일본은 백제의 제자’로 여겼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단재의 민족주의는 메이지 시대 일본 민족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어요.”

박 교수에게 한국은 북한의 영화 ‘춘향전’과 함께 다가왔다. 춘향전은 고등학생이던 1980년대 후반 러시아에서 우연하게 접했다. 이 우연한 접촉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과 모스크바 대학의 대학원에서 한국사학을 공부했다. 고려인 3세인 미하일 박 교수를 만나 논문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의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에 대한 실시간 정보는 주로 인터넷을 통해 파악한다. 매달 교보문고 인터넷 사이트 등에서 여러 책을 구입하고, 지인들과 출판사에서 신간도 다수 증정받는다. 각종 해외 학술 논문과 저널, 유수 언론을 통해서도 정보를 받아들인다. 여기에 치열한 사색과 고민의 과정을 더해 칼럼을 쓰고 각종 매체에 기고한다. 기자와 함께 대학원을 다닌 러시아 관영지 로씨이스카야 가제타의 올렉 키리야노프 서울 지국장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그 형(박노자)과 같이 대학을 다녔는데, 형은 머리가 참 좋았어요. 게다가 부지런했어요. 한국인보다 더 날카롭고 깊게 한국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형의 장점 덕분일 것입니다.”

박 교수를 만나 이 말을 전했더니, 그가 고백한다. “제가 한국 대학에서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어요. 한국 환경에서 지식인이 성역없이 비판하기는 쉽지 않아요. 걸리는 게 너무 많거든요.”

#생존이 아닌 즐거움을 위해 사는 나라 꿈꿔

한국 대학과 지식인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은 씁쓸해 보였다. 한국 현실에서는 창조적인 사고로 무장하거나 기존의 틀을 깨며 독립적 사유를 하는 학생도 나오기 힘들지만, 칸트나 헤겔 같은 석학이 배출되기는 더 힘들 것이라고 했다. 기업화와 관료화로 치닫는 한국 대학이 교수에게도 천편일률적인 일을 주문하고 있어서다.

“학자는 외부의 주문이 아니라, 자신이 내세운 목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한국 교육 당국은 이를 방해하고 있어요. 오직 계량화에 매몰돼 있어요. 깊이 있는 사색과 연구가 필요한 인문학 교수에게조차 영어로 된 학술저널에 논문을 내라고 주문하지요. 연구비 책정에 내몰리고, 기계적인 논문 생산에 투입돼야 하는 현실이에요. 교수에게 학술논문만 쓰라고 강요하고, 그 편 수나 게재 대상 저널은 물론 논문 집필의 언어(대개 영어)까지 지정하며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귀화한 지식인의 한국에 대한 애정과 비판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새로운 조국에 대한 거침없는 그의 비판에 그의 일가친척이 거주하는 러시아가 아른거렸다. 러시아는 그의 모국이면서 아내를 만나게 해 준 땅이다. 박 교수는 러시아에 유학 중이던 아내를 만나 1995년 결혼했다.

그러나 그에게 제대로 된 연구 공간과 기회를 준 나라는 노르웨이다. 노르웨이에 대한 생각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과 러시아, 노르웨이를 설명하는 키워드를 물었다.

“한국 국적 취득을 준비하던 중에 오슬로 대학에서 연락이 왔어요. 한국에서는 3년 거주했지만, 노르웨이에서 머문 시간은 10년이 가까워 옵니다. 노르웨이는 국민과 거주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나라에요. 서로 나쁜 감정 없고, 상처 주지 않으면서 즐겁게 살도록 하지요. 한국과 러시아는 정도 차이는 있지만 ‘생존’을 키워드로 내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점에서 쓸쓸하지요. 오늘의 생존이 아닌 미래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느리더라도 토론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가 끊임없이 힌국 사회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즐거운 나라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는 노력으로 보였다. 무슨 일을 진행하려면 족히 5년 넘는 우여곡절과 토론의 과정을 거치는 노르웨이에서 얻은 경험과 생각인지도 모른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오슬로 대학 교정의 저녁은 낮시간보다 환해 보였다. 육아나 노인 문제는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 전체의 책임으로 인정하는 사회적 환경도 부러웠다. 노르웨이에서 그 생각은 더 선명하게 찾아들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박노자 교수는…

오슬로 대학 한국학과 교수. 197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 동방학부 한국사학과 졸업. 모스크바 대학에서 한국고대사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모스크바 대학의 강사를 거쳐 경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침.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 ‘토종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귀화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남을 살리는 불교적인 삶을 동경한다고 말한다. 한국 사상사를 설명하면서 불교적인 생각을 사회과학적인 용어로 풀어왔다. 인문학자는 동시대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화두를 제공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여긴다.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우승열패의 신화’ ‘하얀 가면의 제국’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박노자의 만감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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