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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때 광나루는 교통과 물류의 중심지였다. 서울에서 충청도나 경상도 등 남부 지방으로 오고갈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광나루는 요즘말로 하면 경부축의 중심지였다. 늘 사람과 물자로 붐비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송파나루, 동작나루, 노들나루, 양화나루 등과 함께 한강의 5대 나루로 꼽혔고 그 가운데도 으뜸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서울 광진구 광장동과 강동구 천호동을 잇는 광진교가 준공되면서 광나루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광진교는 한강다리로는 한강대교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 됐다. 교통요지로서의 광진교의 입지적 가치가 그만큼 뛰어났다는 얘기다. 한강대교가 경인축의 중심다리로서 국가경제에 기여했다면 광진교는 경부축의 중심다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광진교는 경부고속도로가 뚫리면서 경부축의 중심다리로서의 역할을 한남대교에 넘겨줘야 했다. 이후 광진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크게 줄어들었다. 바로 옆에 천호대교가 뚫리면서 교통량도 크게 감소했다. 일종의 ‘잊혀진 다리’가 돼 버린 것이다. 한편 광진교는 6·25전쟁 때 한강대교와 함께 폭파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광진교의 오랜 역사에는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사연이 서려 있는 것이다.

그런 광진교가 ‘걷고 싶은 다리’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시가 광진교 다리 4차로 가운데 2차로를 과감히 보행로와 휴식공간으로 조성했고 다음달 1일부터 이를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위한 다리였던 한강다리가 진정으로 사람을 위한 다리로 탈바꿈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하나로 이뤄진 이 사업의 성패는 결국 시민의 사랑을 얼마나 받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사실 서울시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외국인에게 내세울 수 있는 이렇다할 한강다리 하나 갖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지금부터라도 한강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 보자. 그런 다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미학적으로도 뛰어나야 하지만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노력들이 여러 모로 역사의 애환이 서려 있는 광진교에서 시도됐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전천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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