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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로 ''장길산''을 만나보러 갈까

입력 : 2007-09-14 10:52:00 수정 : 2007-09-14 10: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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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만한 문학 기행지… 한국 산하는 문학적 자양분이 흘러넘치는 땅이다. 오스카 와일드·제임스 조이스·W B 예이츠·사뭐엘 베케트를 배출한 아일랜드 부럽지 않다. 이야기의 미학을 한껏 갈고닦은 박경리·이청준·황석영 등 소설가뿐만 아니라 가슴 따뜻한 시어를 남긴 유치환·조지훈 등 시인들도 국토 곳곳에 예술을 심어뒀다. 서늘한 바람 부는 가을, 가벼운 배낭 하나 걸머메고 문학기행을 떠나는 발걸음은 가볍다. 흠모하는 작가의 시비나 생가 대문에 살짝 입맞춤해도 어색하지 않은 계절이다.
◇소설가 이청준의 생가.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전남 장흥·소록도
장흥군 진목마을엔 소설가 이청준의 생가가 있다. 단편 ‘눈길’엔 팔려버린 생가에서 어머니와 마지막 밤을 보낸 작가의 쓸쓸함이 담겨 있다. 인근 보성읍 길목과 탐진강변 마을은 판소리 소설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고, 주변 천관산 탑산사는 ‘잃어버린 절’ ‘살아 있는 늪’, 장흥초등학교는 장편 ‘흰옷’을 쓸 때 큰 영감을 줬다.
1976년 출간된 이래 100쇄를 넘기며 애독된 ‘당신들의 천국’은 장흥과 멀지 않은 소록도가 무대다. 나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려는 소록도 병원장 조백헌 원장을 통해 유토피아의 참의미를 드러낸 작품이다. ‘작은 사슴’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소록도는 한때 ‘천형의 섬’으로 홀대받았다. 환자들이 거주하는 곳의 철조망은 진작 걷혔고, 현재는 해안 절경과 백송이 관광명소로 자리 잡았다. 또 다른 문인 한하운의 ‘보리피리’가 시비에 새겨져 있어 한센인의 비애를 전한다.

◇시인 유치환의 생가.

# 유치환 ‘행복’, 김훈 ‘칼의 노래’… 경남 통영
‘깃발’ ‘행복’의 시인 청마 유치환은 경남 통영 태평동 출생이다. 남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정량동 언덕에 청마문학관과 생가가 서 있다. 전시관에는 직접 쓴 15권의 시집·산문집·수상록·청마의 유품 100여점이 놓여 있다. 전시관 근처엔 생가가 초가집 형태로 복원돼 있다.
유치환은 서정주와 함께 대표적인 생명파 시인으로 이름이 났지만, 애틋한 로맨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기혼자였던 유치환은 21세에 청상이 된 이영도를 연모한다. 유치환은 20여년 동안 편지 5000여통을 보냈고, 이는 그의 사후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시집으로 묶였다. 통영 청마거리에 있는 우체국은 유치환의 지극정성을 환기하는 명물이 됐다. 우체통 옆엔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란 시구가 있는 시비가 놓여 있다. 우체국 맞은편 2층이 이영도의 집이다.
통영은 김훈의 베스트셀러 ‘칼의 노래’의 배경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이 100여척 왜 전함을 깨뜨린 한산대첩의 현장이다. 망일봉 한산대첩 기념공원, 명정동 충렬사가 있다.

◇경북 영양 주실마을의 ‘지훈 시 공원’.

# 조지훈 ‘승무’, 이문열 ‘사람의 아들’… 경북 영양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의 지훈문학관은 유품과 시집, 영상물로 청록파 시인의 일생을 재현한다. 지훈 육필 원고집·부채·여권·넥타이·모시두루마기 등이 진열돼 있다. 조선 사대부가의 전형을 보여주는 조지훈 생가도 있다. 입구에 후학들이 세운 시비 ‘빛을 찾아가는 길’이 방문객을 맞는다. 근처에 ‘시인의 숲’이 조성돼 있고, 지훈의 시 20여편을 돌에 새겨 전시한 ‘지훈 시공원’이 있다. 시공원에는 시 ‘승무’에서 튀어나온 듯한 여승 동상이 서 있다. 한 작품씩 감상하며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좋다.
‘사람의 아들’ ‘젊은 날의 초상’ 등을 쓴 이문열도 영양 출신이다. 생가가 있는 영양군 석보면 두들마을은 ‘그해 겨울’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소설 속 무대가 된 곳이다.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채와 이문열이 후배 문인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광산문학연구소도 발걸음해 볼 만하다.

◇경북 영양 주실마을의 조지훈 선생 생가.

# 황석영 ‘장길산’… 전남 운주사
전남 화순 운주사는 대하소설 ‘장길산’의 대미를 장식한 장소다. “세상의 모든 천민들이여 모여라, 모여서 천불천탑을 세우자”라며 미륵세상을 꿈꾸던 반란 노비의 회한을 느낄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탑과 불상이 1000개씩 있다고 기록돼 있으나, 현재는 석탑 12기와 석불 70여개가 남아 있다. 노비들이 투박한 솜씨로 미륵불을 만드는 소설 내용대로 이곳에 널려 있는 석불들은 모양이 제멋대로다. 거칠고 기교 없는 불상이 오히려 핍박받는 백성의 염원을 잘 드러낸다.
대웅전 서쪽 산비탈엔 10m가 넘는 와불이 있다. 조선 민중은 와불이 일어서는 날 미륵세상이 열린다는 전설을 믿으며 고된 삶을 달랬다. 경내에 산재한 칠성바위, 거지탑 등 불교 문화재도 눈길을 끈다.

◇신경숙 소설 ‘리진’의 배경인 명성황후 생가.

# 신경숙 ‘리진’… 여주 명성황후 생가
명성황후 민씨가 8세까지 살던 집으로, 신경숙의 장편 ‘리진’의 배경이다. 행랑과 사랑, 별당이 복원돼 원형을 갖췄으며 고종황제의 친필을 새긴 ‘명성황후탄강구리비’가 서 있다. 생가 옆엔 명성황후 기념관이 건립돼 있다. 명성황후의 생애와 시대 정황을 소개하고 궁중 유품 110여점을 진열했다. 뮤지컬 ‘명성황후’를 봤다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올 장소다.
현재 명성황후 생가 성역화 사업 때문에 다음달 7일까지 전시관은 휴관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잠들어 있는 홍릉이 근처에 있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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