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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가 만난 사람]내달 미국 4개 도시 순회 공연 떠나는 소리꾼 장사익

입력 : 2007-05-24 16:54:00 수정 : 2007-05-24 16: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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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심장의 뿌리에서 퍼 올리는 가수가 있다. 매번 온 힘을 다해 남은 한 방울의 진액까지 다 소진해버릴 듯 노래를 부른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늘 전율을 동반한다. 시에다 자신의 가락을 붙여 노래하고 때로는 스스로 가사를 지어 대중과 소통하기도 한다. 간혹 흘러간 대중가요를 자신만의 창법으로 불러 이른바 ‘뽕짝’조차 새로운 장르로 만들어버린다. 국악 정서가 바탕이지만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하는 전문 국악인도 아니고, 여느 성악가 못지않게 발성이 깊고 울림이 커도 클래식을 전공한 전문인이 아니다 보니 그를 제대로 표현할 만한 ‘간판’이 마땅치 않다. 그냥 가수라고만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하다. 가수보다는 ‘소리꾼’ 이나 ‘가객’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다음달 미국 네 개 도시로 ‘사람이 그리워서’ 순회공연을 떠나는 소리꾼 장사익(58·사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추우면 겨울이고 더우면 여름이듯,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적인 호흡으로 노래를 하고 싶어요. 그냥 늘 허는 대로만 허는 거지요. 내 소리는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가서 세상 사람들과 만나는 많은 음악의 한 부분일 뿐이지요.”
바위산과 계곡과 봄꽃들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세검정 언덕배기 장사익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충남 광천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제 이순을 바라보는 연배에 이른 장사익이 소리꾼으로 거듭난 것은 불과 15년 안팎이다. 어린 시절 부친이 농사철에 때가 되면 농악을 치던 환경에서 자라났고,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태평소 소리에 귀가 열리는 성장기를 보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영업사원, 점원, 노점상 등을 전전하며 노래와는 거리가 먼 생업에 매달려 살았다.
“카센터에서 주차 일을 하면서 지내다 마지막으로 스스로 물어보았지요. 여태까지 진정으로 노력하면서 살아왔는가? 죽을힘을 다해 산 거는 아닌 것 같았어요. 앞으로 얼마나 살지 모르겠는데, 돈에 연연하지 않고 평소에 꿈꾸었던 삶을 딱 3년만 죽을 각오로 살아보자, 이렇게 작심한 거지요. 그래서 태평소를 배웠어요. 시켜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고 부탁해 친구 사물놀이패에 들어가 정말 죽을 둥 살 둥 열심히 했어요. 그렇게 살다 보니 어디선가 감춰져 있던 노래가 터져 나오는 겁니다. 어느 날 골목길에 장미가 피어있는데, 그 화려한 장미에게서가 아니라 장미 밑에 감춰진 하얀 찔레꽃에서 향기가 퍼져 나옵디다. 그 향기에 울어버렸어요. 아, 이게 나구나, 늘 세상의 주변에서 쭈뼛쭈뼛 눈치나 보면서 사는 가련한 사람들이 저 찔레꽃이구나, 그들이 세상에 향기를 주는구나…. 저절로 찔레꽃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와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흥얼거리고 읊조리고 그랬지요. 나중에 사물놀이판 뒤풀이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노래를 불렀고, 판이 벌어진 거고, 음반까지 낸 거지요. 하지만 여기까지 이렇게 오게 될 줄은 진짜 몰랐어요.”
1995년 8월에 나온 장사익의 첫 음반 ‘하늘 가는 길’의 대표곡이 바로 ‘찔레꽃’이다. 임동창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잔잔하게 흘러가다 후반부에 이르러 포효하고 절규하는 듯한 장사익 특유의 음색은 짙은 호소력을 발휘한다. 이후 그는 ‘기침’ ‘허허바다’ ‘꿈꾸는 세상’을 비롯해 지난겨울 만든 가장 최근의 음반 ‘사람이 그리워서’까지 모두 5집을 펴냈고, 웬만한 대중가수는 꿈도 꾸기 힘든 세종문화회관 공연 때면 매번 전석이 매진되는 ‘스타’가 되었다. 노년층은 그의 국악풍 음색과 새롭게 다가오는 ‘뽕짝’ 정서에, 젊은 층은 그들대로 샤우트 창법을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그 중간 세대는 가사의 서정적인 호소력에 두루 끌렸다.
“무대에서 ‘찔레꽃’ 후반부를 부를 때 머릿속에서 별이 반짝반짝하면서 0.001초만 긴장을 늦추어도 아차 하면 쓰러질 것처럼 아찔할 때도 있어요. 발이 저리고 손이 바보같이 움직이고 몸 전체가 소리를 뽑아내기 위해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경지까지 노래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고, 힘들어도 소진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충전되는 것 같아요.”
늘 폭발적인 목소리로 온 힘을 다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어떤 이는 마약을 하느냐고 농담 삼아 묻기도 했다고 전한다. 그이는 의외로 술 한 모금 못 마시는 스타일이다. 슬프면 더 슬프게 하고, 기쁘면 더 기쁘게 해서 사람들의 맺힌 것을 풀어주는 그런 소리꾼이 되려면, 노래 부르는 당사자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6월 2일부터 뉴욕, 워싱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를 돌며 ‘사람이 그리워서’라는 소리판을 벌이는 장사익은 협연 형식의 미국공연은 더러 했지만, 단독 순회공연은 처음이다. 그만큼 포부도 크고 걱정도 많다.
“미국에서 공연을 하면 객석의 반응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해요. 주류사회와 단절되고 사람들의 관계가 건조한 동포사회에서 따뜻한 사람살이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보다 오히려 몇 배는 더 큰 것 같습니다. 미국인들에게는 된장이나 마늘 같은 맛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마음을 풀어주고 화해와 상생으로 나아가렵니다. 공연 준비 중에 버지니아 참사가 터졌어요. 며칠 동안은 앞이 안 보이더라구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런 참사야말로 사람들 사이의 벽 때문인 것 같고, 인류 역사 수백만 년 속에 길어야 100년을 함께 사는 동시대인들이 서로 이뻐해도 시간이 없을 텐데, 미워하면서 담을 쌓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살아도 산 게 없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망망대해 겨자씨 같은 존재들끼리 서로 미운 마음 버리고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내 노래가 기여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지요.”
그는 늘 시집을 끼고 산다. 좋은 시 하나 발견하면 보석을 발굴한 듯한 느낌이란다. 그 시를 늘 읊조리면서 곡을 붙여 노래로 대중과 소통한다. 그는 이렇게 만든 노래를 굳이 ‘작곡’했다고 하지 않고 ‘엮었다’고 표현한다. 그의 음반에 수록된 노래 7할 정도는 그렇게 만든 노래이고, 나머지 3할은 ‘동백아가씨’나 ‘비 내리는 고모령’ 같은 뽕짝이다. 시에 얹힌 노래의 메시지로 사람들의 마음을 맺어주고, 뽕짝으로는 편안하게 풀어준다. 피아노나 기타 반주에 맞추어 그가 부르는 뽕짝은 유난히 서럽고 흥겹다.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으로 살다간 정운영의 2005년 영결식 때는 ‘봄날은 간다’를 불렀고, 신영복씨의 출판기념회 때는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뽕짝마저 죽은 이를 위로하는 만가로, 다시 축가로 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장사익 소리의 단적인 매력이다. 무대에서 울 때가 있느냐는 물음에 소리꾼 장사익은 서슴없이 답한다.
“눈물이 흐를 때가 많지요. 무당이 굿을 하다보면 임경업 장군이 되고 관운장 혼백이 되어 합일되듯 ‘시골장’이란 노래를 부르다보면 저만치 아버지가 와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엄마, 내 노래 좀 들어봐, 하면서 상주인 내가 ‘비 내리는 고모령’과 미당의 시에 곡을 붙인 ‘황혼길’을 불러드렸어요.”
미국 대륙을 축축하게 적실 소리판에서 장사익이 부를 노래 중 하나 ‘시골장’은 이렇게 흐른다. 사람이 그리워서 시골장은 서더라, 연필로 편지 쓰듯 푸성귀를 담아 놓고, 노을과 어깨동무하며 함께 저물더라―.
문화전문기자 jhoy@segye.com
사진 이종덕 기자


■ 장사익 연보

▲1949년 충남 광천 출생
▲1968년 선린상고, 1978년 명지대 졸업
▲1993년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김용배 추모공연 기획, 태평소 연주
▲1994년 장사익 소리판 ‘하늘 가는 길’ 초연
▲1995년 1집 음반 ‘하늘 가는 길’
▲1997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로열심포니오케스트라 협연
▲1999년 2집 음반 ‘기침’
▲2000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헝가리국립오케스트라 협연, 3집 음반 ‘허허바다’
▲2001년 세종문화회관대극장 보스턴팝스오케스트라 협연
▲2002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세계무용축제 개막식 공연
▲2003년 4집 음반 ‘꿈꾸는 세상’
▲2006년 5집 음반 ‘사람이 그리워서’

▲수상: 전주대사습놀이 공주농악 장원(1993년), 전주대사습놀이 금산농악 장원(1994년), KBS 국악대상 대통령상(1995년), KBS 국악대상 금상(1996년), 국회 대중문화, 미디어 대상 국악상(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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