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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리 슬픈 자화상 ''토플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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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4-18 11:44:00 수정 : 2007-04-18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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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났단다. 다른 나라 영어 시험인 토플을 볼 수가 없어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토플 폐인도 속출하고 있다. 진정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분명 이번 토플 대란은 수요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미국교육평가원(ETS)의 책임이 크다.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그러나 ETS가 수요를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만을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영어를 둘러싸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우리 내부의 문제점들이 더 크며, 토플 대란을 통해 흉물스러운 단면이 드러난 것뿐이다.
그동안 영어 능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엄청난 잠재적 수요가 있었는데도 제대로 된 영어능력 측정 도구가 없었다. 더불어 토플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평가도구를 왜곡된 형태로 이용해 온 우리 책임 또한 그냥 넘길 수 없다. 교육부는 교육부대로 영어의 문제를 단순히 학교 교육의 틀에서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시험 점수에 집착하는 우리 사회 저변의 잘못된 의식이 이런 결과를 불러왔다.
토플은 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기는 하지만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다. 토플은 미국 학부나 대학원에 진학하고자 하는 외국 학생들의 영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이다. 처음부터 매우 제한적인 목적으로 영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험이다. 따라서 토플은 모든 영어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이 아니며, 그것을 의도하지도 않았다. 토익도 그런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 시험이 우리 사회에서는 특목고 입시 및 영어 사교육 열풍을 등에 업고 매우 기형적인 모습으로 이용돼 왔다. 중고생들은 물론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상급 학교 진학을 목적으로 토플과 토익을 공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특목고 진학 열기에 편승해 사교육 기관들은 이를 더욱 조장하고 있으며, 참된 영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고 시험 점수에만 매달리고 있다. 오늘의 토플 대란은 우리의 이런 일그러진 모습이 만들어낸 슬픈 자화상이다.
그러나 현실을 이대로 방치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해외로 유출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 정도 비용이면 국가가 나설 필요가 있다. 교육부가 나서야 하겠지만, 그들이 보는 영어는 언제나 교과목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영어는 언제나 여러 교과목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래서 대안 자체가 매우 미시적이고 제한적이다. 이참에 ‘국립영어연구원’과 같은 별도 기관을 만들어 영어 문제를 좀더 총체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토플이나 토익 같은 다양한 영어평가 도구를 개발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내재는 영어라는 언어의 문제를 거시적이고 총체적으로 다룰 기관이 필요하다.
한편 시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 시험 공화국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것을 시험과 점수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어떤 영역에서 한 개인의 진정한 능력을 평가하고자 한다면 실은 시험을, 그리고 그 평가 결과를 조금은 조심스럽고 보수적이며 간극을 두고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가는 진정한 학습이 이루어진 뒤에 하는 것이며, 능력을 쌓는 것에 우선해서는 안 된다. 시험은 그저 내 현재의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제한적인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세상에 인간의 능력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 시험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험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내재한 한계와 문제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토플 대란을 계기로 영어를 비롯한 여러 평가도구를 현명하게 이용하려는 의지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병민 서울대 교수·영어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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