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사람의 삶]"백범 연기하다 ''백범 전도사'' 됐죠”

관련이슈 이 사람의 삶

입력 : 2007-04-12 13:09:00 수정 : 2007-04-12 13:09: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드라마서 단골 백범역 맡는 탤런트 이영후씨 “김구 선생이 저의 연기생활과 삶을 바꿔놓았어요. 그분의 올곧은 인생은 언제나 제 삶을 되돌아보게 한답니다.”
환갑을 훌쩍 넘긴 탤런트 이영후(67)씨는 TV 드라마에서 단골로 백범 김구 선생역을 맡아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그도 그럴 것이 반듯하게 가르마를 탄 이마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쓰고 두루마기를 차려입은 그의 모습은 백범을 떠올리게 한다. 백범과의 인연은 닮은꼴 외모에만 있지 않다. 이씨는 백범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연기 인생뿐 아니라 TV 밖의 실제 삶에서도 큰 변화를 겪었다.
1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자택에서 만난 이씨(사진)는 ‘눈길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걷지 말기를. 오늘 내가 걸어간 길이 훗날 다른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백범의 말씀으로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인생을 사는 데 정도(正道)를 걸으라는 말씀이죠. 사사로이 이익을 추구해선 안 된다는 의미인데 요즘 같은 세상에 꼭 가슴에 새겨 볼 만합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생전 모습

그가 백범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6년 전이라고 한다. 그는 1969년 MBC 특채 탤런트로 방송계에 입문했지만 이후 10년이 넘도록 변변한 출연작 없이 무명 배우의 설움을 톡톡히 맛봤다. 그러던 중 1981년 MBC 방송국에서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그해 시작하는 새 드라마 ‘제1공화국’에서 백범 역을 맡아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그간 자신이 맡았던 배역에 비하면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이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작해야 술꾼 A, B로 출연하는 단역에 불과했어요. 백범 역을 맡은 후 비로소 배우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지요.”
이씨는 불혹이 넘어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외모만 닮아서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백범 역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백범일지를 구해 수없이 읽었고, 백범에 관한 것이라면 사소한 정보도 놓치지 않았다. 상해 임시정부 시절 백범과 가까이 생활했던 분들을 찾아가 백범의 사소한 버릇까지 알아냈다. 말은 느릿느릿 하고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비비는 그의 백범 연기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연기 인생에서 김구 선생을 처음 연기하던 때만큼 신난 적이 없었습니다. 저도 그분만 한 용기와 신념을 갖고 한길로 매진한다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덕분이었을까. 이씨는 주연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었다. 시청자들은 그를 통해 TV 화면에 되살아난 백범의 올곧고 호탕한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오랜 ‘무명생활’을 접었다. 여기저기서 배역이 들어오면서 연기 인생이 꽃피기 시작했다. 야망의 계절, 모래시계, 용의 눈물, 제4공화국, 제5공화국, 야인시대 등 굵직한 드라마에 출연했고, 한 제약회사의 광고 모델로도 오랫동안 활약했다. 백상예술대상과 한국방송대상 등 상복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연기 인생만이 아니었다. 이씨는 제1공화국을 계기로 이후에도 4∼5차례 다른 드라마에서 백범 역을 맡았다. 백범에 깊이 천착한 덕택에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백범 전문가가 됐고 백범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으로 변신했다.

그는 연기자로서뿐 아니라 ‘백범 전도사’로서의 활동도 열심이다. 교회와 관공서 등에서 김구 선생에 대해 강연한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부터 동아방송예술대 방송연예과 교수로 활동하는 그는 매 학기 연기론 강의 첫 시간에 백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뤼미에르 형제가 세계 최초로 상업영화를 상영한 1895년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듬해 김구 선생은 을미사변에 격분해 일본군 장교를 죽이고….”
그가 굳이 후배 연기 지망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배우로 살더라도 김구 선생을 귀감으로 노력한다면 못할 일 없다”는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고 싶어서다.
얼마 전부터는 김구 선생을 10만원권 화폐의 도안 인물로 선정하자는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아직 10만원권 발행 계획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화폐 인물로 김구 선생만 한 분이 없다는 생각은 확고하다.
“13일이면 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88주년이 되는데 요즘 사람들이 김구 선생을 점점 잊어가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선생의 초상을 고액권에 새겨 날마다 접하다 보면 그분의 사상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봄꽃처럼 환한 웃음을 짓는 그의 얼굴은 영락없이 김구 선생의 모습이었다.
유덕영 기자 fired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