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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삶]"한국의 장맛 IOC 실사단도 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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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03-19 14:14:00 수정 : 2007-03-19 14: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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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전통음식문화체험관'' 조 정 강 원장
사재 30억 털어 체험관 지어고유음식 보존·계승에 앞장
“쏟아져 들어오는 외국 음식 때문에 우리 전통음식 문화가 위협받고 있어요. 자라나는 세대가 전통음식의 맛과 멋을 제대로 알고 우리 음식문화의 우수성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신념으로 우리의 전통음식 문화를 보급하고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여장부가 있다. 강원 평창군 백옥포리의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 조정강(70) 원장. 한국 전통음식의 ‘대모’로 불리는 전통음식연구가인 조씨는 “남의 것이 좋아 보인다고 무조건 받아들이다 보면 우리 문화와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죠. 특히 요즘처럼 외국 음식에 입맛이 길들면서 몸에 좋은 우리 음식이 식탁 뒷전으로 밀려날까봐 걱정이에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서울 서교동 홍익대 근처에서 고급 한정식집 ‘동촌(東村)’을 운영하던 조씨는 ‘잘나가는’ 식당을 접고 금당산(1173m)의 울창한 수림을 끼고 있어 경관이 뛰어난 이곳에 들어와 체험관 건립에 남은 인생을 걸었다.
1999년부터 사재 30억원을 들여 2005년 11월 문을 연 전통음식체험관은 6500평 부지에 전통 장독대를 비롯한 석빙고와 전통음식실, 전통조리실, 살림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150여명이 묵을 수 있는 숙소도 마련돼 있다.
김치 고추장 된장 등 발효식품과 음식재료의 재배에서부터 제조와 저장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배울 수 있는 이곳은 철저하게 전통방식을 고집한다.
그는 “우리 음식을 직접 만들고 맛도 보고 어떻게 보존하는지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면서 “한국 전통음식의 핵심인 발효 음식을 배우는 것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아가고 지켜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통음식체험관은 조씨가 10년 전 책 출간을 위해 평창을 우연히 들렀다가 장류와 발효 음식에 가장 적합한 입지여건에 매료돼 건립하게 된 것.
7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쳐 세운 체험관은 비용 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여자 혼자 몸으로 공사장 인부들을 다독이고 독려하는 것 또한 힘겨운 일이었다. 더구나 피땀 흘려 가꾼 작물들이 태풍에 휩쓸려가기도 했다.
“전통음식연구소를 열어도 정부에선 한푼도 지원금을 주지 않았어요. 고심한 끝에 가진 재산을 몽땅 털어넣었는데 개관하고 얼마 후 큰 수해를 입었어요. 장독이 물에 잠겨 장류와 젓갈류가 훼손되고 시설물이 파괴되는 등 피해액만 수십억원대로 그때의 심정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강원도 평창군 백옥포리 6500평 부지에 자리한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 한옥형태로 지어진 내부엔 조리시설과 숙소 등이 있다.

오죽했으면 조씨의 든든한 후원자인 가족마저 이젠 그만두라며 말렸을 정도. 하늘 원망도 해보고 한때는 자포자기에 빠져 수많은 날을 눈물로 보냈다는 그는 깨진 장독을 쓸어담으며 “내가 시작한 일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꼭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면서 이겨냈다고 한다.
결국 전직 대통령들과 정·재계 인사들이 즐겨 찾을 정도로 유명했던 한정식집은 체험관 건설로 진 빚을 갚기 위해 다른 용도로 전환됐다. 왜 그렇게 오랜 세월 일궈 놓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일에 모든 것을 건 것일까.
그는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속엔 우리 선조의 손맛과 얼이 깃들어 있다”며 “전통음식은 문화를 이루는 한 축인데도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말한다.
한류 붐에 힘입어 한국음식에 대한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 우리 전통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때문에 조씨는 자신의 지식을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1997년 ‘좋은 쌀로 밥짓고 맑은 물로 장담그기’에 이어 2002년 ‘손맛 밴 우리 음식 이야기’, 2005년엔 ‘한국 전통음식의 밑바탕’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직접 김치를 담그거나 메주를 쑤는 가정이 줄면서 한국사람조차 전통음식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아요. 젊은이들이 발효음식을 배우고 체험하는 교육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조씨의 손맛은 이제 막내딸 김주성(43·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 부원장)씨가 그 맥을 잇고 있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하고 미국에서 유학하던 주성씨는 “음식은 예술과 같다”는 조씨의 뜻에 따라 대학원에서 식품공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국문학 박사과정을 이수 중에 있다.
조씨의 소망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후진을 양성하고 각 지방의 특색 있는 전통음식을 발굴해 대가 끊기지 않도록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전통음식에 조예가 깊은 노인들을 이곳으로 초빙해 음식 만드는 기술을 보존, 계승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대는 문화전쟁시대입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발효를 기본으로 4계절 특색을 지닌 세계에서 으뜸가는 건강음식이 있습니다.”
조씨는 “유구한 우리 역사와 맥을 같이해 온 김치와 된장 등 한국음식이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서 빛을 발하는 그날까지 전통 재래음식 보존을 위해 발벗고 나서겠다”고 한다. 올해 칠순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최근 평창 동계올림픽 실사단이 이곳에 들러 우리의 전통음식을 맛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듯이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한몫을 하고 체험관을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문화명소로 키워 나갈 것”이라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글 황온중 기자, 사진 이종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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