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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김삿갓과 조기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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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12-12 16:27:00 수정 : 2006-12-12 16: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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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과 나는 어떤 관계인가.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란 속언도 있지만 조손(祖孫)은 불가분의 관계다. 그게 세간에선 부정모혈(父精母血)로, 때로는 업(業·카르마)으로 불리기도 한다. 혈통을 중시하는 풍조는 동서양이 따로 없다. 우리나라 명문가에서는 족보를 조상 모시듯이 하지만 족보의 최대 보유국은 미국이라고 한다.
조상과 나의 긴 가족사에서 가문이 형성되고, 그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후손은 싫든 좋든 가문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조선조 성종의 후손인 이홍구 전 총리처럼 서울 근교에 많은 땅을 물려받은 경우는 행운인지도 모른다. 반면 땅뙈기는 고사하고 불명예와 빚까지 상속받는 후손은 한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되든 그건 후손인 나의 몫이 아니겠는가. 몇 세대가 흘러가면 오늘의 나도 후손들의 조상이 될 터, 멋진 ‘조상 노릇’을 하자면 지금부터 잘해야 할 일이다.
조선조 말엽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은 불행한 조상을 둔 경우지만 상황을 반전시킨 인물이다. 그의 조부 김익순은 선천부사로 재직 중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항복했다가 나중에 처형됐고, 김삿갓은 영월 백일장에서 소위 ‘김익순 사건’이 시제(詩題)로 올라오자 친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른 채 그를 질타하는 시로 장원급제했다. 후에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는 평생 삿갓을 쓰고 참회의 삶을 살았다. 조상의 업을 대신 닦은 덕인지 그의 명망은 오늘에까지 울림을 준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씨가 고종 때 고부군수 조병갑의 증손녀라는 사실은 최근 한 월간지를 통해 알려졌다. 조병갑의 학정이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그가 대한제국의 판사로서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선고까지 내렸던 인물이고 보면, 조 전 수석으로선 기가 찬 일일 것이다. 한때 조씨는 “억울한 가족사가 왜 지금 문제가 되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런 조씨가 며칠 전 동학농민혁명군 유족행사에 참석해 “조상을 대신해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매일 아침 108배를 드린다”고도 했다. 조씨가 고위공직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가족사다. 조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민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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