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과 나의 긴 가족사에서 가문이 형성되고, 그 끄트머리에 존재하는 후손은 싫든 좋든 가문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조선조 성종의 후손인 이홍구 전 총리처럼 서울 근교에 많은 땅을 물려받은 경우는 행운인지도 모른다. 반면 땅뙈기는 고사하고 불명예와 빚까지 상속받는 후손은 한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쪽이 되든 그건 후손인 나의 몫이 아니겠는가. 몇 세대가 흘러가면 오늘의 나도 후손들의 조상이 될 터, 멋진 ‘조상 노릇’을 하자면 지금부터 잘해야 할 일이다.
조선조 말엽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은 불행한 조상을 둔 경우지만 상황을 반전시킨 인물이다. 그의 조부 김익순은 선천부사로 재직 중 1811년 홍경래의 난 때 항복했다가 나중에 처형됐고, 김삿갓은 영월 백일장에서 소위 ‘김익순 사건’이 시제(詩題)로 올라오자 친할아버지의 존재를 모른 채 그를 질타하는 시로 장원급제했다. 후에 김익순이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는 평생 삿갓을 쓰고 참회의 삶을 살았다. 조상의 업을 대신 닦은 덕인지 그의 명망은 오늘에까지 울림을 준다.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씨가 고종 때 고부군수 조병갑의 증손녀라는 사실은 최근 한 월간지를 통해 알려졌다. 조병갑의 학정이 동학혁명의 도화선이 됐고 그가 대한제국의 판사로서 동학교주 최시형에게 사형선고까지 내렸던 인물이고 보면, 조 전 수석으로선 기가 찬 일일 것이다. 한때 조씨는 “억울한 가족사가 왜 지금 문제가 되느냐”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런 조씨가 며칠 전 동학농민혁명군 유족행사에 참석해 “조상을 대신해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매일 아침 108배를 드린다”고도 했다. 조씨가 고위공직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가족사다. 조씨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조민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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