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76> 이집트 아비도스·덴데라·에드푸

관련이슈 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

입력 : 2006-10-20 11:04:00 수정 : 2006-10-20 11:04: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3000년 전 거대한 신전… 시간을 잊는다 고대 이집트 신화는 단일하지가 않다. 각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신들이 오랜 세월 속에서 통합되며 여러 신화가 만들어졌다. 강한 세력이 주변을 통합하면서 신들도 정리되었는데, 크게 보아 헤르모폴리스, 멤피스, 그리고 헬리오폴리스 등이 중심이 되었다.
그 중에서 현재 카이로 동남쪽 교외 지역인 헬리오폴리스의 신학에 따르면 태양신 아툼(혹은 라)이 슈(공기의 남신)와 테프누트(이슬의 여신)를 창조했고, 이 둘이 결합하여 게브(대지의 남신)와 누트(하늘의 여신)를 낳는다. 그 후 게브와 누트 사이에서 남신 오시리스와 세트, 여신 이시스와 네프티스가 나오는데 이들 남매가 각각 짝을 지어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네프티스가 부부가 된다. 이 아홉 신이 9주신으로 사람들에게 숭배되었다.
이 가운데 오시리스신은 이집트를 통치하며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존경을 받았지만, 이를 시기한 동생 세트의 모함에 빠져 죽게 된다.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관을 찾아내어 남편을 살려냈지만, 이를 안 세트가 오시리스를 14토막으로 잘라 이집트 방방곡곡에 버렸다. 이시스는 다시 조각들을 찾아서 결합시켰지만, 물고기에 먹혀 버린 남근만은 찾지 못했다. 이시스는 나일강의 진흙으로 그 부분을 보충한 후 생명을 불어넣어 오시리스를 살려내었고, 그와 결합해 아들 호루스를 낳게 된다. 호루스는 성장하여 작은아버지이자 아버지의 원수인 세트를 물리치고 왕위에 복귀한다. 그렇게 해서 호루스는 현세의 왕으로, 오시리스는 내세의 왕으로 군림하게 된다.
학자들은 이런 신화를 호루스신을 믿는 나일강 상류 사람들과 세트신을 믿는 나일강 하류 사람들의 권력투쟁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고대 이집트인들은 죽어서는 내세의 왕인 오시리스의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고, 생전에 한 번은 그의 머리가 묻혔다는 아비도스의 오시리스 신전을 방문하는 것이 꿈이었다.
아비도스(Abydos)는 나일강 상류인 룩소르에서 북쪽으로 약 150㎞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 신전은 신왕국 제19왕조의 세티 1세가 만들었다. 제18왕조의 투탕카멘 왕이 어린 나이에 죽자 혼란스러운 시기가 지나고 람세스 1세가 기원전 1310년쯤, 제19왕조를 연다. 20개월 후에 그가 죽자 파라오에 오른 사람이 아들 세티 1세였다. 그는 이름에서 보듯이 세트신을 숭배하던 나일강 하류 출신이었지만 다른 신을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집트인들에게 인기 있던 오시리스의 거대한 신전을 아비도스에 지었고, 수많은 기둥과 부조 속에 오시리스신에 관련된 기록들을 새겨 놓았다.



◇오시리스 신전의 부조(왼쪽), 호루스를 상징하는 독수리 조각


그 외에도 이집트 신화와 관련된 또 다른 신전들이 나일강변에 있는데, 아비도스에서 남쪽으로 약 90㎞ 떨어진 덴데라(Dendera)란 도시에는 호루스신의 부인이며 사랑의 여신으로서 많은 이집트인들에게 사랑을 받은 하토르 여신의 신전이 있다. 이 신전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인 기원전 2세기쯤에 건설된 것으로, 그리스인들은 하토르 여신을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동일시했다. 이집트인들은 하토르 여신이 새해 첫날에 남편이 있는 에드푸(Edfu)의 호루스 신전으로 외출한다고 믿었는데,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호루스신은 태생이 두 가지였다. 헬리오폴리스 사람들은 호루스신을 오시리스와 이시스 사이에서 난 아들로 여겼지만, 멤피스 신화에서는 오시리스와 형제였다. 이 둘을 구별하기 위해서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인 호루스신을 ‘연하의 호루스’, 오시리스와 형제인 호루스신을 ‘연상의 호루스’라고 불렀다.
룩소르에서 남쪽으로 약 120㎞ 떨어진 에드푸에 있는 호루스 신전은 연상의 호루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지만 연하의 호루스를 나타내는 상징들도 보인다. 이 신전은 기원전 237년에 시작되어 약 200년의 세월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매우 보존이 잘되어 있고, 거대한 신전과 열주에는 수많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신전 앞에 세워진 독수리 모습의 신인데, 이것은 숙부인 세트에게 복수한 연하의 호루스신을 의미한다.
현재는 이런 신전과 신상들이 단지 복잡한 신화의 상징에 불과하지만,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절실한 현실이었다. 이집트에서 수많은 신화가 서린 3000년 전의 유물 앞에 서서, 기둥과 벽에 새겨진 수많은 상징을 보노라면 문득 현실이 무한히 확장되는 듯한 느낌에 빠진다. 비록 이집트 신의 계보가 복잡해서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더라도, 수천년 전의 숨결을 맛보는 것만으로도 이집트 여행은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천천히 내려가다 관광객이 별로 없는 중소 도시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나는 스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소하그란 마을에서는 버스에 타니 이쪽저쪽에서 “코리안, 야판(일본)”이라고 수군거리다가 웬 청년이 다가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코리아요!”
그러자 모두들 “아! 세울(서울)!”이라고 외쳤다. 88 서울올림픽 이후 코리아 하면 서울로 알고 있는 것이다. 청년은 반갑다며 악수를 청한 후 담배를 권했다. 마치 몇십년 전의 한국 인심을 보는 것 같았다. 케나란 마을에서는 거리를 걷던 나에게 “헬로!” 하면서 경례하듯이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다가와서 나라를 묻고 악수를 청한 후 저녁 때 한번 만나자는 사람들도 많았다. 별다른 뜻은 없었고 대개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는데, 관광지에서 호객꾼들에게 시달리다가도 이런 인심과 친절을 맛보는 순간 여행의 피로가 풀렸다.

아비도스로 가려면 우선 엘 발리아나(El Baliana)까지 와야 한다.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고 나일강을 따라 말라위(Malawi), 아시우트(Asyut), 소하그(Sohag)를 거쳐 엘 발리아나까지 가는 방법도 있지만, 버스가 뜸해 카이로에서 룩소르행 기차를 타고 가다 엘 발리아나에서 내린 후 버스나 합승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엘 발리아나에서 오시리스 신전이 있는 아비도스까지는 합승 택시가 있고, 아비도스에서 케나(Qena)까지는 버스로 1시간, 케나에서 하토르 신전이 있는 덴데라까지는 합승 택시를 탄다. 케나에서 룩소르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30분 정도, 룩소르에서 남쪽의 에드푸까지는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고, 에드푸에서 합승 택시를 타면 호루스 신전까지 간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