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62>베트남 달랏

관련이슈 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

입력 : 2006-06-23 17:49:00 수정 : 2006-06-23 17:49: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프랑스풍 휴양지…호수에 마음 두고 오다 베트남 북부에서 내려온 길고 긴 쯔엉선(長山) 산맥의 남쪽에 중부 고원이 있고, 그 끝 부분에 달랏(Dal Lat)이란 중소 도시가 있다. 쯔엉선 산맥은 호찌민 루트가 있는 산맥으로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의 수많은 게릴라들과 탄약, 물자가 이 루트를 통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전쟁 중에도 서로 암묵적으로 전투를 피한 달랏에서는 남베트남의 고위 관료들과 베트콩 간부들이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휴양지로 개발된 해발 1475m의 달랏에는 아름다운 호수와 계곡, 폭포 그리고 프랑스풍의 예쁜 집들이 있어서 1년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으며 수많은 예술가가 모여들고 있다.



◇짜이 맛에 있는 영복사↑
◇영복사의 대웅전↓


언덕이 많은 달랏에는 미니 호텔, 카페, 식당, 시장 등이 아기자기하게 퍼져 있는데, 그 중심은 시민들의 휴식처인 쑤언 흐엉(Xuan Huong) 인공 호수와 야채와 어류 등을 파는 달랏 중앙시장(Cho Dalat)이다. 시내 중심지에는 약 70년 전에 프랑스인들이 지었다는 달랏 대성당이 있고, 언덕의 정상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의 여름별장도 있다. 또 주택가 한구석에는 모스크바에서 건축학을 공부했고 1960년대 히피 영향을 받았다는 베트남 건축가가 만든 항응아 갤러리가 있다. 이 집의 뜰에는 철사로 만든 거미줄, 시멘트로 만든 거대한 나무, 그 속에 만든 방 등 기괴한 건축물이 들어서 있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끈다.

달랏은 시내보다는 교외에 볼 것이 많다. 시내에서 약 13㎞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뚫고 나가면 높이 15m의 프렌 폭포가 나오고, 그곳에서 약 17㎞를 더 나가면 ‘닭 마을(치킨 빌리지)’이 나온다. 이곳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대형 닭이 서 있는데, 산에 들어가 화전 생활을 하던 소수 민족 ‘꼬호’족이 정착하자 정부에서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마을 사람들의 상징으로 세웠다고 한다. 또 근교에는 죽림선원(竹林禪院·Thin Vien Truc Lam)이 있다.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유일하게 한국과 같은 대승불교를 믿고 있어서 대웅전과 좌우의 고루·종루·선방 등의 분위기가 한국의 절과 비슷하며, 정원에 아름다운 꽃들과 분재가 가득한 것이 인상적이다. 달랏 근교의 짜이 맛(Trai Mat)에는 영복사(靈福寺·Chua Linh Phuoc)라는 불교 사원이 있는데, 약 50년 전에 지어졌다는 이 절은 용 조각으로 가득하다.
입구에도, 대웅전 기둥에도, 경내에도 꿈틀거리는 용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이곳까지는 러시아제 두 량짜리 증기열차를 타고 갈 수 있다.



◇조개구이를 파는 음식점↑
◇야채시장↓


달랏에서는 다양한 음식도 즐길 수 있다. 고급 음식점에서 각종 해산물은 물론 달랏 특산품인 토끼고기, 사슴고기를 먹을 수 있고 거리에서는 조개, 우렁이, 골뱅이 등을 값싸게 즐길 수도 있다. 각종 조개 한 접시에 한국 돈으로 800원에서 2000원 정도이니 얼마나 싼가. 또 돼지갈비 덮밥 껌스응과 뜨거운 단팥죽 같은 쩨농(che nong)을 먹을 수도 있으며, 베트남 쌀국수 퍼(Pho)도 즐길 수 있다.
또한 달랏에는 카페가 많다. 그 중에서 역사가 서린 뚱(Tung)카페란 곳은 1950년대 사이공 지식인들의 아지트로 유명했다. 서서히 남과 북의 갈등이 증폭되고 전쟁이 태동하던 그 시절의 탁자와 의자가 여전히 남아 있는 이곳에서는 언제나 지나간 팝송들이 흘러나온다. ‘카사블랑카’, ‘아이 앰 세일링’, ‘디 엔드 오브 더 월드’, ‘엔드리스 러브’.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 중에는 꽁지머리 화가도 있고, 작가도 있으며, 옛 추억을 되살리러 오는 노부부도 있는데 모두 한결같이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 없이 기다란 소파에 앉아 창밖의 흘러가는 세상을 쳐다본다.
노인이 지나가고, 멋진 여인이 지나가고, 허름한 노동자가 지나가고,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아이가 지나가고…. 그렇게 어디론가 흘러가는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마치 다큐멘터리 무성영화를 보는 것만 같다.
달랏은 거창한 볼거리는 없지만 곳곳에 숨어 있는 자연을 감상하고 음식을 즐기며 가끔 소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여행의 작은 즐거움’이 가득한 매력적인 도시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달랏에서 머물던 며칠 동안 아침마다 가던 쌀국수집이 있었다. 하노이에서 왔다는 나이 든 주인은 늘 꼭두새벽부터 미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를 닮은 베트남 가수 ‘엘비스 퐁’의 노래를 틀어 놓았다. ‘짝퉁’ 가수 엘비스 퐁은 엘비스 프레슬리 노래뿐만 아니라 올드 팝송과 샹송들을 불러댔다. 황제의 여름궁전이나 폭포보다도 이른 아침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쌀국수와 엘비스 퐁의 흘러간 팝송이 베트남이란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쌀국수집으로 달려갔고, 대머리인 주인 사내는 허허거리며 반겨주었다. 눈치로 보아 내 국수 값을 ‘조금’ 더 비싸게 받는 것 같았지만, 증거도 없었고 그리 큰 바가지도 아니어서 넘어갈 만했다.
쌀국수도 좋았지만 쌀국수를 늘 조심스럽게 나르는 10대 소녀의 공손함과 수줍은 미소는 더욱 좋았다. 어느 날 산책하러 이른 아침에 호숫가로 나갈 때 쌀국수집으로 출근하던 몸집 작은 그 소녀는 길거리에서 나와 마주치자 또 수줍게 미소를 지었는데 그 모습이 슬프게 다가왔다. 일하러 간다는 것은 당당하고 즐거운 일일 텐데…. 아마도 소녀가 한창 공부해야 하는 학생의 나이여서 그랬던 같다. 다시 달랏에 간다면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그 쌀국수집의 어린 소녀다.

여행정보

호찌민시에서 가는 가장 편한 방법은 여행자 숙소가 모여 있는 데탐 거리에서 달랏행 ‘오픈 투어 버스’를 타는 것이다. 오픈 투어 버스는 각 여행사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주요 관광도시 몇 곳을 연결하는데, 호찌민시에 달랏까지가 5달러 정도다. 그 외에도 호찌민∼달랏∼나짱∼호이안∼훼∼하노이까지 한번에 표를 끊은 뒤 계속 중간에 내려 며칠 동안 구경하다가 갈아 타면서 하노이까지 갈 수 있다. 하노이까지 27달러 정도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용하고 있다. 호찌민시에서 달랏까지는 약 8시간 걸린다.
달랏의 교외를 돌기 위해 운전사가 딸린 오토바이를 탈 수도 있는데, 요금은 가는 곳과 시간에 따라 흥정하기 나름이다. 보통 10달러 정도지만 20달러를 요구하는 이들도 있고, 몇 군데 안 돌면 5달러 정도에도 가능하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