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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박정희 ‘긴급조치 9호’ 국가가 배상”… 7년 만에 뒤집었다

입력 : 2022-08-31 06:00:00 수정 : 2022-08-30 23: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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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기존 판례 변경… 국가 손해배상 책임 첫 인정

“불법 행위… 국민 기본권 침해돼
대통령·사법 개인 책임은 불인정”
‘피해자 71명 패소’ 원심 파기 환송

유신헌법 반대자 영장 없이 수감
헌재, 2013년 ‘위헌·무효’ 판단 후
그동안 민사상 책임은 인정 안해
구속 피해 800여명… 추가소송 예고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발령한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은 2015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은 정치적 행위로 국민에게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본 기존 판례를 7년 만에 뒤집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긴급조치 9호 피해자 A씨 등 71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취소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긴급조치 피해자 모임인 사단법인 '긴급조치 사람들'을 비롯한 사건 대리 변호사 등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긴급조치 9호'의 피해자들과 '박정희 유신시대 긴급조치 발령의 불법성에 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스1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의 발령과 적용·집행에 관한 국가 작용 및 이에 관여한 공무원들의 직무수행은 법치국가 원리에 반하여 유신헌법 제8조가 정하는 국가의 기본권 보장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서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정당성을 결여하였다고 평가된다”며 “그렇다면 개별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어 현실화된 손해에 대하여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특히 “이 사건과 같이 광범위한 다수 공무원이 관여한 일련의 국가작용에 의한 기본권 침해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 성립이 문제 되는 경우에는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 위반이 인정되면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긴급조치 9호 발령과 적용, 집행하는 과정이 전체적으로 불법행위를 구성하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이나 수사기관 개인, 법관 개인의 불법행위 책임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은 1975년 5월 유신헌법에 따라 긴급조치 9호를 발표했다. 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고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A씨 등은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수감 생활을 했다.

 

헌법재판소는 2013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긴급조치 9호를 위헌 결정했다. 같은 해 대법원도 “긴급조치 9호는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하거나 침해한 것으로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도 위반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피해자들은 이와 별도로 국가를 상대로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소송도 제기했다.

 

대법원의 기존 입장은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대법원은 2015년 “긴급조치 9호 발령은 위헌·무효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수는 있어도, 국가가 국민 개개인에 대해 민사상 불법 행위에 따른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하급심에서도 긴급조치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연합뉴스

현재 긴급조치 9호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은 각각 대법원에서 24건, 하급심에서 약 9건이 진행 중이다. 해당 사건들도 이번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피해자들의 추가 소송도 이어질 전망이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4년 동안 구속된 피해자는 8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74년 발령된 긴급조치 1·4호 피해자들까지 합하면 소송 규모는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다만 이미 패소가 확정된 피해자들이 다시 소송을 내긴 어려울 전망이다. 전원합의체 판결은 소급효가 없어 선고 이후 사건들에 대해서만 효력이 있기 때문에 이미 확정된 판결에 대해서는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긴급조치변호단과 긴급조치 피해자 모임인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실로 만시지탄의 느낌을 금할 수 없다”며 “국가 폭력이나 위헌·위법 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인권규범을 뒤늦게나마 수용해 대법원이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라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박미영 기자 my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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