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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이 친구 되고, 친구가 동생 되게 생겼다"… 예비 학부모 '멘붕' [뉴스+]

, 이슈팀

입력 : 2022-08-01 07:00:00 수정 : 2022-08-01 08: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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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만 5세 초등 입학 추진…76년만 첫 학제개편
학부모들 “대입·취직까지 연쇄적으로 영향 줘” 반발
OECD 취학연령 대부분 만 6살…5살 이하 4개국뿐
한국교육개발원 “취학연령 하향 대부분 선호 안 해”
전문가들 “막대한 재정 투입·사회적 비용 고려해야”

정부가 2025학년도부터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살 낮추기로 하면서 아이를 둔 부모들 사이에 당황과 불만의 기색이 역력하다. 특히 정책 시행 과도기에 자녀를 입학시켜야 하는 부모들의 반발이 커지는 모양새다. 교육단체도 반대하는 등 윤 정부의 갑작스런 교육 정책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70년간 유지된 대한민국의 학제가 이르면 2025년부터는 모든 아이가 1년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교육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유보통합)하고 초등학교 진입을 현행보다 1년 앞당기는 학제 개편 방안을 포함한 새 정부 교육부 업무계획을 29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사진은 지난 2021년 3월 2일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생이 학부모의 손을 잡고 입학식 포토존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자녀가 2019년 2월생인 직장인 이모(43)씨는 “아이가 2018년생과 함께 학교에 가면 지금 다니는 어린이집 형님들이 동급생이 되고, 같은 반 친구들은 다 동생이 되게 생겼다”며 “아내는 내년부터 당장 영어를 가르쳐야 하냐고 걱정하는데 대체 이런 대책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고 탄식했다. 아이 셋을 둔 조모(45)씨는 “교육부 정책은 현실을 모르는 처사”라며 “현재도 초등학교 1학년의 경우, 한글을 늦게 깨치는 아이들이 있는데, 1년 입학을 앞당기면 한글을 비롯해 학력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사회적 양극화를 막기 위해 조기 초등 교육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입학하고 졸업한 뒤 취업할 때까지 더 거센 경쟁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현실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취학연령 1년 낮추면 2025년 초등 입학생, 8만여명 더 늘어 경쟁 심화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일단 정부의 개편안에 따라 취학하는 학생들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치열한 입시·취업 경쟁에 몰리게 된다.

 

31일 통계청의 출생아 수 통계를 보면 학제개편 대상인 2018∼2021년 출생아의 경우 한해 26만∼33만명 안팎이다. 올해 출생아 수는 25만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교육부의 학제개편안 대로라면 일부 학생들은 한 학년이 40만명 안팎인 상황에서 학교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교육부는 교원 수급이나 학교 공간 등의 한계를 고려해 4년간 25%씩 입학 연도를 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5년부터 학제가 개편된다면 2025년에는 2018년 1월∼2019년 3월생, 2026년에는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에는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에는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이 입학하는 것이다.

 

통계청 통계에 따른 출생아가 모두 초등학교에 들어간다고 가정할 경우 2025학년도 취학 대상은 2018년생 32만6822명과 2019년 1∼3월생 8만3030명을 합친 40만9852명이다. 2학년에 올라가는 2017년생(35만7771명)보다 5만2000명가량 많다. 2026학년도 취학 대상은 36만1504명, 2027학년도 취학 대상은 33만3355명이 된다. 올해도 분기마다 지난해와 같은 비율로 아이들이 태어난다고 가정할 경우 2028학년도 취학 대상은 31만714명이다. 이에 비해 학제개편이 끝나는 2029학년도에는 역으로 초등학교 취학 대상이 30만명 밑으로 떨어지면서 가파른 ‘학령인구 절벽’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학년보다 많은 인원이 함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진학·졸업·취업 등 20대 중반까지 더 거센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을 겪어야 하고, 이는 생애 전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 2년 뒤 2024년 하반기에 사립초등학교 추첨 경쟁률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2022학년도 서울지역 사립초교 평균 경쟁률은 11.7대 1이었다. 경쟁률이 20대 1을 넘는 곳도 6곳이나 됐다. 사립초교 경쟁률은 그간 2대 1 수준이었지만 중복 지원이 가능해지면서 지난해부터 크게 높아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사립초교가 공립초교보다 더 적극적으로 학습결손에 대처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학부모 선호도가 높아진 상황이다.

 

박순애 교육부 장관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에서 교육부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OECD 38개국 중 34개국, 만 6세 넘어야 초등 입학

 

세계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도 만 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경우는 드물다. 일부 우리나라보다 빠른 국가가 있지만 대부분은 같거나 오히려 늦다.

 

31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 2021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38개 회원국 중 한국을 포함한 26개국(68.4%)의 초교 입학연령이 만 6세다. 핀란드·에스토니아 등 8개국은 7세, 호주·아일랜드 등 3개국은 5세, 1개국(영국)은 4∼5세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연령도 대부분 나라에서 6세지만, 프랑스나 이스라엘, 헝가리, 멕시코(이상 3세)처럼 유치원부터 의무교육으로 지정하는 나라도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 입학연령이나 의무교육 시작 연령이 다른 국가들에 견줘 특별히 늦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대학교에 입학하거나 취업을 할 수 있는 후기 중등교육 종료 시점도 비슷한 수준이어서 초중등교육 시기 탓에 입직연령이 늦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한국에서 고등학교 마지막 학년을 시작할 때 연령은 17세로, 다른 OECD 18개 회원국과 같다. 15개국은 18세, 2개국은 19세, 2개국은 16세에 후기 중등교육 마지막 학년이 시작된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내놓은 이슈페이퍼 ‘학습자 삶 중심의 학제개편’에서 “취학연령 하향화가 개인의 선택에 따라 조기 입학의 방식으로 허용되고 있음에도 대부분 선호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나, 일반 국민의 인식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초등학교 조기 입학 아동의 수는 2009년 9707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계속 줄어 2019년 651명, 2020년 521명으로 뚝 떨어졌다. 취학 유예자도 수만 명에 달했지만 2010년 이후 줄어 2019년 660명, 2020년 812명에 그치는 등 대부분 어린이가 적령에 입학하고 있다.

 

초등교육을 앞당기기보다 유아교육을 학제화하는 것이 낫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치원 과정이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3∼5세 유아교육·보육기관 취학률이 93%로, OECD 평균 83%를 상회한다. 3∼5세 유아의 경우, 절반 이상 국가에서 인구의 90% 이상 참여를 일컫는 ‘완전 취학’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3세 미만 영아 교육·보육기관 취학률도 65%로, OECD 평균(25%)을 크게 웃돈다. 이 비율은 2015년 이후 4년 사이 13%포인트 높아졌는데, 이는 이 기간 OECD 회원국 중 가장 큰 상승폭이다.

 

이처럼 유아교육·보육기관 취학률이 높은 만큼 학교에 유치부 과정을 추가하거나 유아교육을 의무교육화·학제화하는 등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학제개편과 함께 유보통합(유아교육과 보육의 통합)도 추진한다. 정의당은 29일 정책논평을 통해 “학제개편은 다른 방향이어야 한다”며 “유보통합과 연계한 유아교육 학제화도 있고, 학생들 상황을 고려한 초중 9년제 통합운영도 있다. 출발선상의 교육 격차를 해소할 요량이면 유아 1년 또는 3년 무상의무교육이 더 적절하다”고 제언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도 비판 목소리…“강행 아닌 사회적 합의 필요”

 

교육부는 앞으로 대국민 토론회, 공청회 등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공감대를 이뤄나가겠다고 했지만, 그동안 대통령 공약에도 없던 학제개편 이슈가 갑자기 등장한 것을 두고 학부모는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맘카페 등에서는 “화장실 뒷처리도 잘 못하는 애들을 선생님이 따라다니다 하루 다 간다”, “학교보내면 엄마들 더 바쁘다. 차라리 유치원을 8살까지 보내고 싶은데”, “아이들 학원 다니는 시기가 더 앞당겨지겠다”, “태어나자마자 조기교육 시켜야 할 판”, “입시 문제까지 염두에 두고 개편해야 하는데 그것까지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교육부가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과 국정과제에도 없는 학제개편안을 들고나온 것 자체에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교육부가 졸속행정에 길들여졌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아이를 둔 부모들은 이 정책이 거둘 수 있는 효과에 대해 이해하거나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학제개편은 특정 시점의 학생이 두 배까지 늘 수 있다는 점에서 교사 수급의 대폭 확대, 교실 확충, 막대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며 “이들이 입시, 취업 등에서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는 등 이해관계의 충돌·갈등까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많은 공립초등학교가 오후 1시 전후로 저학년 학생들을 하교시키는 상황에서 더 어린 연령을 초등학교로 편입시키면 맞벌이 가정 등의 돌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초등학교는 맞벌이 부부를 위한 돌봄 체계가 유치원에 비해 미흡하다”며 “초등학교에 돌봄 기능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돌봄서비스를 준비 없이 급하게 초등학교에서 떠넘기듯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정책인지 생각해볼 일”이라고 지적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는 “청소년들을 직업 전선에 1년이라도 빨리 내보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시장과 기업의 가치에 매몰된 국정운영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령별 발달과정에 맞지 않는 교육 환경과 이에 적응하지 못해 받게 될 아이들의 교육적 부작용,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유아들의 인지·정서발달 특성상 부적절하며 입시경쟁과 사교육의 시기를 앞당기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어 “학부모들이 의무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을 본격적인 학습의 시기로 인지해 조기 취학에 대비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더 이른 시기인 영유아 단계부터 선행학습을 시작해 과잉 사교육 열풍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제개편에 따른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사립 유치원들도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는 “교육 현장과 실질적인 이용자인 학부모, 예비교사를 대상으로 한 정교하고 지속적인 의견 수렴 과정과 연구 과정 없이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정책을 느닷없이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 5세 유아는 전체 유치원 유아의 40∼5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유치원의 주요 교육 대상”이라며 “강경 추진한다면 정권 초기의 엉뚱하고 다급한 발상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5세 아이들의 지적 발달 수준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경쟁이 심화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유치원 등의 반발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곧 출범하는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 전문가 집단이 아동 발달단계의 특징과 교육과정 등을 고려해서 연착륙 시스템을 만들어야 학부모 불안감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전 대구교육감)은 “시행하는 데는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면서도 “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입직 연령을 낮추기 위해 취학연령을 낮추는 일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교육 시대이고 지식 정보가 워낙 빠르게 변하는데 중등교육·고등학교에 학생들을 너무 오래 잡아두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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