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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 저성장·고물가 위기… 親中·親러 노선 부메랑으로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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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7-02 13:00:00 수정 : 2022-07-02 11: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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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유럽의 병자’로 회귀하나

메르켈 전 총리 집권 초 실업률 무려 11%
금융·유로존 위기 재정개혁으로 잘 극복
제조업 경쟁력 강화… ‘유럽 슈퍼스타’ 변신
제조업 비중 높아 코로나 초기에는 유리
사태 장기화로 물류난 심화… 오히려 발목

의존도 높은 中 ‘제로 코로나’로 공급망 차질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1위도 악영향
우크라사태 후 수입 급감… ‘경고’ 단계 상향
對러시아 제재·물가 안정 사이서 딜레마
인플레 반세기 만에 최고… 푸드뱅크 긴 줄
독일의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7.9% 올라 1973년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CPI는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해 상승세는 소폭 완화했으나 유류세 인하 등 인플레이션 대응책이 8월 말 종료되면 지수가 반등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진은 지난 6월 1일 유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독일 뮌헨의 한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차에 주유하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유럽 최대 경제강국 독일이 저성장·고물가 위기에 몰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 경제의 부활을 이끌었던 친중·친러 노선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대중 투자·무역 확대와 저렴한 러시아산 에너지에 의존해 성장을 구가하던 상황에서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장기화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이 상태로는 통일 후유증으로 인해 저성장·고실업으로 신음하던 20년 전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대중·대러 의존 부메랑으로

 

독일은 1990년 통독 후 2000년대 중반까지 ‘유럽의 병자’라 불렸다.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정권을 잡은 2005년 실업률은 11.3%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메르켈 전 총리는 노동개혁과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답이 있다고 판단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2009년 유로존(유로화 사용국, 현재 19개국) 재정위기를 재정개혁으로 극복하고, 2012년 ‘인더스트리 4.0전략’을 내세워 제조업 경쟁력을 키웠다. 이후 독일은 ‘유럽의 슈퍼스타’로 거듭났다.

 

독일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6%로 이탈리아(16%) 등 남유럽 국가보다 높다. 이런 산업 구조 덕분에 코로나19 사태 초기엔 관광업에 크게 기댄 남유럽보다 경제상황이 훨씬 유리했다. 문제는 사태 장기화로 물류난이 심화하면서 제조업 비중이 높은 독일을 흔들었다.

특히 독일 기업의 지나친 중국 의존이 발목을 잡고 있다. 중국이 지난 3월부터 ‘제로 코로나’ 정책에 돌입하면서 공장 문을 닫아 독일 제조업체는 공급망 문제에 부딪혔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6년 연속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기준 독일의 대중 수출입 총액은 2457억유로(약 334조1520억원)이다. 독일의 전체 수출액 중 대중 수출 규모는 8%에 달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독일 시가총액 상위 15개 기업 중 10개사가 매출액의 10분의 1 이상을 중국 시장에 기대고 있다. 독일 3대 완성차 기업인 폴크스바겐·BMW·다임러는 중국을 가장 큰 시장으로 삼고 있다. 자동차부품 업체 보슈의 경우 중국에서 직원 6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독일산업연맹(BDI) 지크프리트 루스부름 회장은 지난달 1일(현지시간)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장관과 회담 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결합해 올해는 ‘극도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러시아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 악영향을 주고 있다. 독일은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입 1위 국가로 가스 공급량의 55%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사태 발발 후 러시아산 가스 수입량을 25%까지 줄였으나, 독일 정부가 위기를 선언할 만큼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달 23일에는 가장 높은 단계부터 비상-경고-경보 3단계로 이뤄진 천연가스비상공급계획경보를 기존 ‘경보’에서 ‘경고’로 상향했다. 하베크 부총리는 경보 상향 발표를 하면서 “우리는 가스 위기에 빠졌다”며 “이미 물가가 높지만 국민은 추가 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독일은 대러 제재와 물가안정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졌다.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를 버티면서 오히려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어 독일은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셈이다.

지난 6월 21일 독일 루브민에 있는 노르트스트림1의 파이프라인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국영 가스프롬은 최근 독일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해저파이프라인인 노르트스트림1의 가동능력을 40%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더해 11일부터 열흘간은 유지보수를 위해 잠정폐쇄를 예고한 상태다. 이 때문에 노르트스트림1이 영구폐쇄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지난 5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친중·친러 기조는 독일을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경제대국으로 만들었지만, 거기에는 치러야 할 비싼 계산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 자리에서 “독일은 이제 공급망과 수출 시장을 시급히 다변화해야 한다”며 “기업들은 종종 경영대학원에서 기본 원리로 배우는 것, 즉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고 대중·대러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숄츠 정권에서는 독일의 대중·대러 관계가 재설정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폴크스바겐과 BMW는 전쟁 발발 며칠 뒤인 3월 초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을 중단한다고 발표하고 대러 수출을 중단했다”며 “지정학적 위험이 긴밀한 사업 관계를 얼마나 빠르게 깰 수 있는지를 엄연히 상기시킨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만약 이들 기업이 중국에서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면 그 파장은 훨씬 더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업 현장에서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외르크 부트케 중국 주재 유럽연합(EU) 상공회의소 소장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 등으로 중국에 대한 독일 업체의 사랑이 식은 상태”라고 밝혔다. 볼프강 니더마르크 BDI 이사도 “독일 사업체들의 리쇼어링(국내 복귀)이 일부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살인적 물가에 길어지는 ‘푸드뱅크’ 줄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독일의 GDP 성장률 전망치는 1.6%다. 유로존 19개국 중 발트해의 소국 에스토니아(1.0%)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인 18위다.

 

네덜란드 은행인 ABN암로의 알리너 스하윌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독일은 재앙적인 경제 상황에 부닥쳐 있다”며 “정부가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고 진단했다.

 

독일 ifo(정보·연구)경제연구소도 지난달 15일 올해 독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1%에서 2.5%로 하향 조정했다. 독일 킬세계경제연구소(IfW)는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를 유지했으나 2023년 전망치를 3.5%에서 3.3%로 낮추고,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5.8%에서 7.4%로 상향 조정했다.

 

독일의 인플레이션율은 반세기 만의 최고치 수준이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7.9% 상승해 1973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달 CPI는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해 상승세가 소폭 완화했으나 유류세 인하, 대중교통 요금 할인 등이 8월 말 종료되면 지수는 반등할 수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극심한 인플레이션 영향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식료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푸드뱅크 줄도 길어지고 있다. 독일에서 160만명 이상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푸드뱅크 타펠 측은 “연초부터 푸드뱅크 수요가 전국적으로 상당히 증가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두 배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부받은 식료품이지만 전기료 등 운영비가 올라 일부 품목 가격을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베를린 북동쪽 베르나우에 거주하는 가브리엘 와샤(65)는 “가끔 슈퍼에서 장을 볼 여유가 없어 거의 울먹이며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AFP와 인터뷰에서 토로했다. 연금 생활자인 그는 푸드뱅크에서 빵, 버터 등 30유로(4만800원)어치를 사면서 “이 소시지는 얼마 전엔 0.99유로(1346원)였는데 지금은 2유로(2720원)가 넘는다”고 했다.

 

노동조합은 인플레이션을 감당할 수 없다며 임금인상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380만명이 가입한 독일 최대 산별노조인 IG메탈은 지난달 15일 북서부지역 철강노동자 8만8000명의 연봉을 6.5% 인상하는 데 성공했다. 30년 만에 가장 큰 인상 폭이다.

 

전자부문 노동자들도 임금인상 목소리를 내고 있다. IG메탈의 금속·전자부문 노동자들은 9월부터 시작되는 임금협상에서 연 7~8% 인상안을 제시했다. 외르크 호프만 IG메탈 조합장은 성명에서 생활비 부담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며 “기업들은 잘 지내고 있지만, 마트에서 영수증을 받아 든 직원들은 잘 지내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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