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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태흥영화사로 보는 한국 영화 역사의 단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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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16 14:00:00 수정 : 2022-04-15 19: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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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상자료원.

 

오랜만에 퀴즈로 시작해 보겠다.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1990)과 ‘서편제’(1993),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터미네이터’(1984), 존 맥티어난 감독의 ‘다이하드’(1988)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두 영화의 국적, 감독, 제작연도, 장르 등은 모두 다르지만, ‘서편제’를 제작하고, ‘터미네이터’를 수입한 영화사는 태흥영화사이다. 오늘은 태흥영화사 이야기를 대표적인 제작 영화, 수입 영화와 더불어 좀 해볼까 한다. 

 

태흥영화사를 떠올리게 한 건 한국영화박물관의 전시 소식이었다. 2022년 4월 22일부터 9월 25일까지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 1984-2004’ 전시가 상암동 한국영화박물관에서 개최된다고 한다. 이 전시는 2021년 10월 24일 세상을 떠난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를 추모하면서 태흥영화사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사실 태흥영화사의 발자취는 1980~1990년대 한국 영화계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태흥영화사는 1987에 시작된 미국영화 직배 전후 한국 영화계가 맞았던 변화를 고스란히 겪어내면서,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1986년 영화법 개정으로 1987년에 시작된 미국영화 직배는 국내에서 영화를 제작하거나 수입해온 이들에겐 큰 위기 상황을 가져다주었다.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가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자신들의 영화를 직접 배급하게 되었으니, 한국영화 제작사는 더 많은 메이저 미국영화와 경쟁하게 되었다. 수입사는 큰 매출을 얻을 수 있는 메이저급 미국영화 수입 길이 막혀버렸다. 미국영화 직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려면 몇 년이 걸렸지만, 한국 영화계가 갑작스레 맞이한 큰 변화인 건 분명했다. (이태원 대표는 직배에 반대하는 24개 영화사와 1989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를 결성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2021년 국내 박스오피스를 보면, 전체 흥행 1위를 기록한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감독 존 왓츠)은 소니픽쳐스가 직배한 영화이고, 3위와 4위를 기록한 ‘이터널스’(감독 클로이 자오)와 ‘블랙 위도우’(감독 케이트 쇼트랜드)는 월트디즈니가 직배한 영화다.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흥행을 기록한 미국영화가 대부분 직배 영화인지는 꽤 됐다. 

 

태흥영화사가 수입한 ‘다이하드’는 20세기폭스 제작 영화로, 20세기폭스사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직배를 시작하기 직전이라 수입할 수 있는 영화였다. ‘다이하드’는 1988년 국내 개봉 영화 중 흥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태흥영화사는 1983년 설립 이후 외화 수입과 더불어 이장호 감독의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이두용 감독의 ‘돌아이’(1985), ‘뽕’(1986) 등 한국영화 제작도 꾸준히 했다. 그러나 직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국영화 제작에 좀 더 힘을 싣기 시작했고, 보다 큰 흥행 기록도 기록하기 시작했다. 

 

1990년 임권택 감독의 ‘장군의 아들’은 역대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고, 이어 시리즈 제작으로 이어졌다. 1993년에는 ‘서편제’가 한국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장군의 아들’의 최고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한국영화 흥행 기록을 세우고, 경신해내며 한국영화도 대규모 흥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태흥영화사는 임권택 감독이 소위 ‘국민 영화감독’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임권택 감독과는 2004년 ‘취화선’까지 11편을 함께 했고,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칸 영화제 감독상 등의 수상 결과도 만들어냈다. 해외 영화제 수상으로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겠으나, 감독을 중심으로 해외 영화제까지 염두 한 영화 제작이라는 시스템을 제시했다.  

 

또한, 배창호 감독의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이규형 감독의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이명세 감독의 데뷔작 ‘개그맨’(1988) 등처럼 젊은 감독과의 작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배창호 감독과 이명세 감독은 이후 한국영화계의 주요 감독으로 성장했다. 

 

태흥영화사는 1985년부터 25차례에 걸쳐 총 1,279점의 자료를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중 85점이 최초로 공개된다고 한다. 태흥영화사가 제작한 영화 36편의 포스터와 전단지도 볼 수 있고, 제작한 영화의 주요 장면을 편집한 특별 영상도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극장 운영으로 시작해, 외화 수입, 한국영화 제작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증명한 태흥영화사와 이태원 대표의 발자취를 보며, 한국 영화 역사의 일면도 확인해보기를 바란다. 

 

한편, 태흥영화사 회고전도 열린다.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개최되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진행될 예정인데, 8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태원 대표와 태흥영화사, 그리고 그 시기 한국 영화계가 더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재평가되길 기대해 본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 외부 필진의 칼럼으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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