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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은 왜 우크라로 가야 했나… 해병대 출신 기자가 본 ‘기수열외’ [이슈+]

입력 : 2022-03-29 22:00:00 수정 : 2022-03-29 17: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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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너 이런식이면 기수 열외된다. 감당할수 있겠어?”

 

2006년 2월 해병대에 입대한 전 낯선 군 생활 속에 선임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타군에 비해 강도 높은 병영문화와 기수문화, 각 계급마다 할수 있는게 정해진 해병대의 병영 생활은 당시 20살 대학생 새내기인 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다행히 빨리 군 생활에 적응해 무탈하게 제대를 했지만 해병대 동기들과 만나 군 생활을 이야기할 때면 그때의 기억이 악몽 처럼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 선배가 말한 기수 열외는 계급과 기수로 나눠져 행동 제약이 많은 해병대원에겐 최악의 상황입니다. 후배들이 선배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각 직급과 기수마다 정해져있는 내무생활에서 완전히 배제되기 때문이죠.

 

강산이 변한다는 10년하고도 6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해병대는 크게 바뀌지 않았나봅니다. 우크라이나로 떠난 해병대원은 28일 방송된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군대 내에서 부조리를 당했다고 폭로했습니다. 전입 초반 선임병사들에게 인정을 받았지만 부사관을 준비하면서 부조리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무래도 병사들한테는 부사관 이미지가 좋지 않으니까, 그때부터 ‘너는 우리의 주적이니까 그냥 말도 걸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 지난 22일 이뤄진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의용군 지원을 결심한 배경에 대해 병영 부조리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마음의 편지’를 썼는데 가해자에게 경위서 한번 쓰게 하고 끝나더라”면서 “선임을 ‘찔렀다’는 이유로 오히려 더 혼나고 욕을 많이 먹었다”고 했죠. 이어 “우크라이나로 오게 된 것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부대에 남아 선임 병사들에게 혼날 것을 생각하니 싫더라”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바에 죽어도 의미 있는 죽음을 하자는 생각으로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에서 해병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주관으로 진행된 서북도서방어훈련에서 해병대 6여단 장병들이 적 침투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며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사관과 장교를 존중하고 의지하는 타군에 비해 해병대는 부사관들을 배척하는 ‘병 중심의 문화’가 있습니다. 해병대는 해‘병’의 것이라는 거죠. 특히 우크라이나로 떠난 해병처럼 병사에서 간부가 되려는 이른바 ‘기리까이’(바꾸기라는 뜻의 일본어로 사병에서 간부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군대 은어)의 경우에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아는체 조차 하지 않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시키는 것과 다름 없는 이런 상황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나봅니다.

 

물론 제가 있었을 2006년에 비해 현재 해병대는 많은 변화를 이뤘을 겁니다. 선진병영이 도입돼 휴대전화를 소지할 수 있고, 부조리함을 겪는 많은 해병들이 해병대 사령부와 국방부 등 군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할 수 있는 방법도 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병사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변화는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해 9월에도 해병대 1사단에서 선임병 4명이 후임병을 대상으로 정강이 걷어차기, 복부 가격, 방망이로 구타, 뺨 가격, 인격 모독, 차량에 있는 시가잭으로 팔 지지기 등 가혹행위를 해 군사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적이 있죠.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당섬부두 인근에서 연평부대원이 경계작전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로 향한 해병은 자신이 겪은 부조리와 관련해 “처음에는 마음의 편지도 썼었지만, 간부들이 덮었다”며 “기수열외 시킨 선임과 다른 선임들에게 온갖 욕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내가 그렇게 신고했을 때 들은 체도 안하던 해병대 수사관들이 (출국을 하니까) 바로 찾아와 깜짝 놀랐다”라며 “그런 건(신고했던 건) 도와주지도 않고 이렇게 무작정 오니까 좀 이상하기는 하더라”고 밝혔죠.

 

해병대측은 향후 이 해병이 귀국 하는 대로 가해자에 대한 추가 조사를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해병대 관계자는 “군무이탈자 해병은 지난 2월 초 본인이 욕설을 당했다고 신고하여 조사 및 수사를 진행했고, 본인의 요구에 따라 타부대로 전출했다. 관련자는 적법하게 조치할 예정”이라며 “본인이 귀국해 추가 진술시 관련 내용을 수사하여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설명했습니다.

 

누구나 해병이 될수 있었다면 나는 해병이 되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해병대. 해병대의 자부심 만큼이나 조직의 내부 부조리에도 발빠르게 대처할 순 없었을까요.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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