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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의 사진작가’가 전하는 13가지 인생의 지혜

입력 : 2021-12-26 20:57:52 수정 : 2021-12-26 20:5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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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사울레이터:인 노 그레이트 허리

빗방울 맺힌 유리창을 찍는 것이
유명인의 촬영 보다 좋다는 작가
흑백사진이 대세이던 1950년대
뉴욕의 일상 컬러로 담는 실험
지극히 담담하게 삶을 말하지만
60년간 쌓아온 예술관 깊은 감동
평범한 일상을 담은 사진만으로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준 사울 레이터는 “세상의 근사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느끼라”고 말한다. Saul Leiter Foundation 제공

“세상 모든 것은 사진으로 찍힐 만해요. 사진의 좋은 점은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겁니다. 온갖 것을 음미할 수 있게 해주죠.”

‘컬러사진의 선구자’, ‘뉴욕의 전설’, ‘거리 사진의 대가’ 사울 레이터의 말이다.

사울 레이터는 카르티에 브레송, 로버트 카파 등 흑백사진이 대세를 이루던 1950년대에 뉴욕의 일상을 컬러 사진으로 담아냈다. 컬러사진이 아직 예술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대부터 어느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평생 고수한 사진작가다.

생계를 위해 20여 년간 ‘하퍼스 바자’ 등 패션전문지에서 촬영을 했지만, 지난 60년 동안 살아온 뉴욕 로어 이스트사이드 빌리지 주변 일상의 모습을 매일 포착했다.

유명해지는 데에 무관심했던 그는 인화조차 하지 못한 필름 박스들을 아파트에 쌓아 두고 산다.

“인생 대부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지냈어요. 그래도 늘 만족했죠. 드러나지 않는 것은 커다란 특권이거든요.”

80년대에 들어서야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에게 ‘은둔의 사진가’라는 별칭이 추가된 이유다. 그는 늘 주변의 평범한 풍경에 주목했다. 동네를 서성이며 뉴욕의 고가철도,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 신호등이 걸린 사거리, 눈 내리는 날,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원 등 날마다 보이는 일상을 즐겨 찍었다.

그의 사진은 우리에게 몹시 친근하다. 때론 너무도 익숙하다. 그의 사진들이 미술, 음악, 무용, 디자인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준 원천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영상광고, 간판, 쇼윈도, 잡지의 표지 등에는 그의 사진 기법과 문법이 깃들어 있다.

“빗방울이 맺힌 유리창이 나한테는 유명인을 찍은 사진보다 훨씬 흥미로워요. 빗방울은 뭔가 오묘하잖아요.”

작품 ‘빨간 우산’(1955)이나 ‘젖은 창문’(1960) 등을 보면 그가 전한 ‘영감’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다큐멘터리 ‘사울 레이터 : 인 노 그레이트 허리’는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스크린 한가득 풀어놓는다. 영국의 영화 제작자이자 촬영 감독인 토머스 리치가 메가폰을 잡았다. 아디다스, BMW, BBC 등 상업광고 감독으로도 일한 그는 “사울 레이터에게 말이라도 걸어 보고 싶어 무작정 뉴욕으로 갔다”며 “1년 반이 지나서야 촬영을 승낙하는 듯 보였고, 지난 3년간 사울과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들려준다.

캐롤 브라운

“이렇게 특별한 눈을 가진 사진작가가 어떻게 오랫동안 숨겨져 있었는지 믿을 수 없었다”는 리치 감독은 “놀라울 만큼 뛰어난 색채와 프레임 감각을 지닌 그의 작품들은 오늘날 찍은 것이라 해도 믿을 만큼 세련된 것들인데 무려 70년 전 촬영한 사진들”이라면서 “왜 그는 더 일찍 유명해지지 않았던 걸까 등의 해답을 듣는다”고 연출의도를 밝힌다.

“평생 유대인을 직업 삼아 살긴 싫다고 아버지에게 심한 말을 했죠. 탈무드 학자셨는데.”

1923년 미국 피츠버그의 독실한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울은 뒤를 잇길 바랐던 아버지의 뜻을 거부하고 20대에 뉴욕으로 이주해 줄곧 살아왔다.

“난 그저 남의 집 창문이나 찍는 사람이예요. … 나름대로 괜찮은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걸로 잘난 척하면 안 돼죠. 근사한 작품을 만든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데 … 난 남들이 추켜세운다고 혹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겸손을 앞세우는 사울이 훌륭한 사진작가로 워커 에번스, 외젠 앗제, 앙드레 케르테츠 등을 꼽았지만 뉴욕현대미술관은 ‘언제나 젊은 이방인’이란 제목으로 그의 작품들을 전시한 바 있다. 영화는 우리가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할아버지처럼 친숙한 노작가의 회고에서는 삶의 경험도 묻어난다.

“물건이란 한때 내 것이었다가 다른 사람한테 가는 거예요. 죽을 때 가져갈 수 없잖아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뭘 갖느냐가 아니라 뭘 버리느냐 입니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들도 실은 그리 걱정할 게 아니에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찾는 게 중요해요. 세상의 근사한 것들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거요. 변명하지 말고 당당하게 즐겨야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삶과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는 이미 거인이 되어 있다.

지나가는 버스, 상점의 쇼윈도, 이정표 등 거리의 표정을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영상 또한 그의 사진 스타일과 결을 맞춘다.

영화는 ‘사울 레이터의 인생에서 배우는 13가지’라는 부제를 달고 카메라, 컬러사진, 후대에 남길 것, 신에게 이르는 길, 사진을 진지하게 대하다, 가만히 있기, 길 위의 사진가, 그저 열심히, 기분좋은 혼란, 왼쪽 귀 간지럽히기, 예술을 나누다, 서두를 것 없어, 아름다움을 찾아서 등 작은 제목으로 나누지만 굳이 이 같은 구분을 의식하며 볼 필요는 없다.

그의 사진은 이미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지구촌 곳곳에서 사랑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남산 전시공간 피크닉이 내년 3월27일까지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란 주제 아래 관람객을 맞고 있다. 국내 전시는 처음이다. 미공개 슬라이드 필름과 50∼70년대 패션 화보, 그림 등 다양한 영역을 오간 그의 예술적 시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 29일 개봉.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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