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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건축문화기행 '브릭 로드' 가보니… 빨간 벽돌을 찾아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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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14 09:00:00 수정 : 2021-11-11 13: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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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당 인근 성바오로회수녀원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은 사람이다. 대구관광재단이 건축을 테마로 진행하는 대구 건축문화기행은 쉽게 지나치고 말았을 삶의 흔적들을 끄집어내 생기를 불어넣은 기획물이다. 화교(華僑) 건축 기술자와 친했던 프랑스 선교사로 인해 100여년 전 대구에 빨갛고 회색의 벽돌 건축물이 처음 들어섰는데, 이런 건물들을 ‘브릭(Brick) 로드’로 엮었다. 

 

◆‘빨간 벽돌’ 찾아 떠나는 대구 역사 여행

 

브릭 로드는 말 그대로 벽돌이라는 공통된 소재로 이어진 1900년대 대구의 근대 건축물을 둘러보는 코스다. 화교협회를 시작으로 계산성당, 선교사 주택, 계성중학교, 성유스티노신학교, 성모당 등 로마네스크와 고딕양식의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영어강사 출신으로 8년차 해설사인 이종국(57)씨는 “1900년대 국내 건축은 초가집이나 나무집이 전부였다”며 “당시 벽돌집은 우리 조상이 지은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당시 국내에는 벽돌을 찍어내는 것은 물론 쌓아올리는 기술이 없었고, 중국인들이 이런 벽돌 집을 짓게 됐다고 한다. 아울러 대구는 6·25전쟁 당시 피해가 적어 100년 이상 된 건물이 고스란히 남았다고 덧붙였다. 

 

계산성당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계산성당을 먼저 찾았다.

 

계산성당은 서울·평양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진, 고딕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양식 성당이다. 1899년 로베르 신부에 의해 한옥으로 처음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전소되자 이듬해 프랑스 프와넬 신부에 의해 다시 설계돼 지금의 건물이 됐다. 당시 명동성당을 지은 중국인 건축기술자 강의관 등이 이곳에서 다시 붉은 벽돌을 쌓아올렸다. 1911년 대구교구가 설정돼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배로 높이는 등 증축을 시작, 1918년 12월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됐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십자가 모양이고, 고딕양식의 우뚝 솟은 쌍탑이 특징이다. 100여년의 역사를 인정받아 사적 290호로 지정됐다. 성당 내부에 한복 입은 사람들이 스테인드글라스에 새겨져 있는데,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우리나라 성인들이다. 빨간 머플러를 한 성인은 최초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다. 계산성당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등 유명인사들이 결혼식을 올렸고, 1984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다.

 

대구화교협회 사무실로 쓰이는 화교협회 건물과 소학교 학생들이 만든 작품
대구 부호 서병국씨 자택

중구 종로에 있는 화교협회는 1929년에 지은 붉은 벽돌의 2층 서양식 주택이다. 국가등록문화재 252호로, 대구 지역 부호인 서병국씨가 당시 대구에서 활동하던 중국인 모문금에게 설계와 시공을 맡겼다. 모문금은 강의관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화교협회는 장방형의 평면구조로 중복도를 둔 좌우대칭의 건물이다. 대부호의 주택이라서인지 당시 벽돌은 평양에서 구워 오고, 나무는 금강산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한때 방첩대(HID) 건물이었고, 지금은 대구화교협회 사무실로 쓰인다.

 

선교사 스윗즈 주택
성유스티노신학교

◆선교사들의 담쟁이 언덕에도 붉은 벽돌집

 

브릭 로드의 핵심은 청라언덕에 몰려 있다. 청라언덕은 선교사들이 거주하며 담쟁이를 많이 심은 데서 유래했다. 대구 3·1만세운동길,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인 동무생각 노래비, 선교사와 가족의 묘지인 은혜정원 등이 있다.

 

특히 1910년대에 세워진 미국인 선교사 주택 10채 가운데 3채가 남았는데, 각각 선교·의료·교육박물관으로 쓰인다. 선교사들이 설계한 이 주택들은 대구지역에 처음으로 서양식 주거양식과 생활상을 소개한 근대건축 유산이다.

 

선교사 스윗즈 주택

스윗즈 주택은 마르타 스윗즈, 계성학교 5대 교장인 핸더슨, 계명대학장인 켐벨 등의 선교사들이 살았다. 서양식 주택에 한국식 서까래와 기와를 얹었다. 스윗즈는 여성으로서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접근하고자 집에 한식을 덧입혔다고 한다. 지금은 선교박물관이 된 스윗즈 주택 북쪽 정원에는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자손목이 있다. 1899년 동산병원 초대 원장인 존슨 선교사가 미국에서 3개 품종의 사과나무 72그루를 들여와 사택 뜰에 심어 키웠고, 이 중 미주리 품종만 자라 동산의료원 주변으로 보급한 것이 대구 사과나무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챔니스 주택은 당시 미국의 캘리포니아주 남부에서 유행한 방갈로 형태가 남아 있다. 챔니스 주택에는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피아노가 있다. 의료선교사 존슨 박사의 가족이 사용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인 선교사가 들여온 피아노는 1900년 3월 부산항에 도착해 이곳까지 옮겨졌다. 챔니스 주택은 1900년대 전후의 동서양 의료기기 등이 소장된 의료박물관으로 꾸며졌다.

 

성유스티노 신학교

선교사 주택들 중 가장 남쪽에 있는 블레어 주택은 붉은 벽돌로 지은 이층집이다. 지붕 위에 붉은 벽돌로 된 굴뚝이 있고, 건물 바닥은 마룻바닥이다. 현재는 조선시대 서당과 1960~70년대 초등학교 교실을 재현해 교육 및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된다.

 

선교사 주택들을 잘 살펴보면 중국 건축 기술자들이 주로 쓴 붉은 벽돌 외에 흰색 돌이 보인다. 오래전 대구읍성 성벽을 해체하고 나온 돌이 기반으로 쓰인 것이다.

 

계산성당
계산성당

1906년 설립된 계성중학교는 1919년 대구지역 3·1운동 지원지였고, 2003년 아듬스관과 헨더슨관, 맥퍼슨관이 유형문화재가 됐다. 성유스티노 신학교는 1914년 10월 개교한 교구 최초의 신학교로, 대구가톨릭대학교의 출발점이 된 건물이다. 드망주 주교가 신학교 설립을 위해 원조를 구했을 때 상하이에 거주하는 익명의 신자가 유스티노 성인을 모시는 조건으로 거액을 내놔 성유스티노 신학교가 됐다.

 

성모당은 1990년 12월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됐다. 프랑스 루르드 성모굴을 본떠서 만들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주교 성지이다. 앞쪽에 넓은 마당이 있고 북향으로 세운 붉은 벽돌구조 건축이다. 화강암 기초 위에 흑색 벽돌로 각 모서리의 버팀벽 등을 구성하고 나머지 벽면을 붉은 벽돌로 쌓았다. 성모당 인근 성바오로회 수녀원도 붉은 벽돌길에 포함된다.

 

성모당
성모당
성모당
성모당

대구관광재단은 브릭 로드 외에 도시재생을 통해 새롭게 탄생한 건축물들을 돌아보는 ‘대구 르네상스’ 코스, 대구의 고건축을 돌아보는 ‘천년대구’ 동구 코스와 달성군 코스 등에 대한 캠페인을 다음달 12일까지 진행한다. 모바일 앱 ‘워크온’을 통해 미션을 수행하면 여러 상품을 준다.


대구=글·사진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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