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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명제 정착 이끈 YS정부 ‘경제通’ [고인을 기리며]

입력 : 2021-10-18 01:00:00 수정 : 2021-10-17 22: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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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식 前 부총리 별세

김영삼정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한국은행 총재를 지낸 이경식씨가 향년 88세의 나이로 지난 15일 별세했다.

 

1933년 경북 의성 출신인 그는 1957년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1981년 미국 미네소타대 대학원을 수료했다. 1997년 세종대에서 명예 경제학박사 학위도 받았다.

 

1957년 한은 조사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해 경제기획원 기획국장(1971년), 체신부 차관(1976∼1979년)을 거쳐 대우자동차 사장(1987년), 한국가스공사사장(1991년) 등 민간·공기업 대표도 역임했다.

 

김영삼정부 출범 후 초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1993년)에 취임했고, 한은 총재(1995∼1998년)까지 맡아 김영삼정부의 대표적 경제 관료로 꼽힌다.

 

부총리 시절에는 한은 입행 동기였던 당시 김명호 한은 총재와 함께 금융실명제 도입, 정착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김영삼정부에서 중용된 경제관료인 만큼 ‘외환위기’의 풍파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이 전 총재는 외환위기 당시 1997년 12월 임창렬 당시 경제 부총리와 함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지원서에 서명했다.

 

1999년 국회 IMF 환란 조사특위에 한은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따르면, 이 전 총재가 이끌던 한은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앞서 8개월 전인 1997년 3월 외환위기의 조짐을 느끼고 IMF 긴급자금의 필요성을 정부에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는 한은의 독립성과 금융감독 체계 개편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은이 가진 은행감독 기능을 은행감독원에 보내는 대신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편안을 강경식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함께 마련했다. 당시 한은 내부의 반발이 컸지만 이 결정은 훗날 한은의 통화정책 독립성의 초석이 됐다.

 

김대중정부가 들어선 뒤 이 전 총재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탠퍼드대 초빙연구원을 지냈다. 귀국 후 2009년부터 지금까지는 경제인들의 친목단체인 21세기 경영인클럽 회장을 맡아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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