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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요즘 군대’와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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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5 22:44:57 수정 : 2021-10-15 22:4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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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군대 좋아졌대. 걱정하지 말고 다녀와.”

2011년 2월, 주변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를 등에 업고 입대했다. 후반기 교육을 마친 뒤 자대에 도착했을 때 일이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면회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무리의 선임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들어오더니 차례대로 기자와 동기들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후에도 오랫동안 기자와 동기들은 선임들로부터 폭언과 구타, 각종 부조리에 시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왜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맞서지 않았는지 후회도 된다. 하지만 그때는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철저하게 고립된, 촘촘히 설계된 이 조직 안에서 개인의 용기는 집단의 보복이 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그저 힘든 시간이 금방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버텼던 기억이 난다.

구윤모 외교안보부 기자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D.P.’가 큰 인기를 끌었다. ‘윤 일병 사건’이 발생한 2014년을 배경으로 그려진 이 드라마는 군 가혹 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군필자들은 물론 전 세대에서 호응을 이끌어냈다.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요즘 군대’를 놓고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여전히 군대 내 부조리와 가혹 행위가 만연하다는 군필자들의 경험담이 쏟아져 나오면서 사회의 시선이 국방부로 향했다.

그러자 국방부는 “지금까지 국방부와 각 군에서는 폭행, 가혹 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면서 “일과 이후 휴대전화 사용 등으로 악성 사고가 은폐될 수 없는 병영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해명에 나섰다. 국방부 설명대로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된 이후 장병들의 복무 환경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국방부가 병영 환경 개선을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군 생활을 하는 장병들이 많아졌음은 분명하다. 일반적인 사회적 시각도 이와 다르지 않다. 10년 전 기자가 입대했던 때처럼 말이다.

공교롭게도 국방부가 해명을 내놓은 다음날 해군 강감찬함에서 선임들의 괴롭힘 끝에 정모 일병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사건이 뒤늦게 밝혀졌다. 지난 5월에는 성추행과 조직적인 2차 가해를 당해 세상을 등진 공군 이모 중사 사건도 알려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장병들의 휴대전화로 전국 각 부대에서 일어나는 군내 부조리가 끊임없이 폭로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군을 관장하는 국방부까지 다 ‘요즘 군대’가 좋아졌다고 할 때 어딘가에는 지옥 같은 하루를 견디고 있는 장병들이 여전히 많다는 게 현실로 증명된 셈이다.

‘D.P.’의 김보통 작가는 자신의 SNS를 통해 “‘D.P.’는 ‘(군대가) 이제는 좋아졌다’는 망각의 유령과 싸우기 위해 만들었다”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해 나가는 분들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요즘 군대’도 군대다. 우리 사회가 ‘요즘 군대는 그럴 리 없다’는 안이한 인식에 사로잡혀 이면을 보지 못하는 순간 또 다른 공군 이 중사, 해군 정 일병을 떠나 보내야 할지 모른다. ‘D.P.’라는 드라마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요즘 군대’를 견디고 있는 전국의 장병들에게 고마운 마음과 응원을 전한다.


구윤모 외교안보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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