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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 일 한다”는 북한, 평양의 셈법이 바뀐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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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9-18 06:00:00 수정 : 2021-09-18 09: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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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철도기동미사일연대 소속 열차 발사대에서 KN-23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북한은 15일 철도기동미사일연대 검열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히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노동신문·뉴스1

“북남 관계 개선의 기회를 제 손으로 날려 보내고 우리의 선의에 적대행위로 대답한 대가에 대해 똑바로 알게 해줘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중단 없이 진행해나갈 것이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은 지난달 11일 담화에서 후반기 한미 연합지휘소 훈련을 이유로 남북 통신연락선을 단절하면서 남한을 위협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11~12일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이 1500㎞를 비행한 사실을 공개했다. 

 

15일에는 평안남도 양덕 일대서 열차 탑재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쐈다. 북한은 이날 발사를 소개하면서 철도기동미사일연대 창설을 처음 공개했다.

 

핵실험을 단행했던 북한이 실질적인 전투수행능력 강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옛소련이 개발한 RT-23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열차에서 발사되는 방식을 갖고 있다. 위키피디아

◆북한 미사일 기술 출처는

 

북한 순항미사일과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 체계의 기술 출처로는 옛소련 국가들이 지목된다.

 

북한은 한국군 현무-3C(사거리 1500㎞)과 맞먹는 수준의 순항미사일에 관심을 보여 왔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1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2000년대 초부터 그들이 그런 미사일을 개발한다는 동향은 알고 있었다”며 “축적된 기술을 통해 신형 순항미사일 개발을 본격화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옛소련이 1970년대 개발한 kh-55 순항미사일(사거리 3000㎞) 관련 기술을 확보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냉전 종식 후 우크라이나가 갖고 있던 kh-55는 2001년 이란에 12발, 중국에 6발이 팔렸다. 이란은 kh-55를 기반으로 2019년 사거리 1300㎞의 호베이제 순항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2005년 일본은 우크라이나가 이란에 수출한 kh-55 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의혹을 갖고 우크라이나 정부에 사실 관계를 조회했다. 

 

조회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북한은 이란의 샤하브 탄도미사일 개발에 협력한 바 있어 미사일 기술 교류가 이뤄졌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크라이나는 북한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등에 탑재된 액체연료 엔진과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 기술 유출 근거지로도 지목된다.

 

화성-12형에 쓰인 백두산 엔진은 성능과 외형 등에서 우크라이나 유즈마쉬에서 만들었던 RD-250 엔진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부인하지만, 유즈마쉬가 2015년 파산 위기를 겪은 만큼 불법적인 경로로 북한에 판매됐을 수 있다. RD-250 재고가 러시아에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러시아를 통해 유출됐을 가능성도 있다.

 

열차 탑재 탄도미사일은 옛소련의 ‘핵열차’와 비슷하다. 옛소련은 1980년대 우크라이나 유즈노예 설계국이 개발한 고체연료 3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RT-23을 운용했다. 

 

북한군 철도기동미사일연대 소속 열차 발사대에서 지붕이 열리면서 KN-23 탄도미사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은 15일 철도기동미사일연대 검열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히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뉴시스

열차를 개조한 이동식 발사대에 탑재된 RT-23은 2000년대까지 러시아에서 쓰였다.

 

2011년 북한인들이 우크라이나에서 ICBM 기술 등 기밀자료를 탈취하려다 현지 경찰에 체포됐는데, 이들이 빼내려던 정보 중에 RT-23이 있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다. 

 

토마호크 기술이 반입됐을 가능성도 있다. 2001년 아프간 전쟁 당시 아프간으로 발사된 수백발의 미군 토마호크 중 일부가 기기 고장이나 기상 이변 등으로 파키스탄 영토에 추락했다.

 

파키스탄은 이를 토대로 2000년대 중반 바부르 순항미사일을 개발했다. 중국도 파키스탄과 아프간에서 토마호크 불발탄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파키스탄에 노동미사일 기술을 판매하는 등 군사교류가 이뤄진 적이 있고, 중국과도 교류가 활발했다.

 

미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이 성능검증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레이시온 제공

◆갖출 건 다 갖춘 북한의 순항미사일

 

북한이 공개한 순항미사일 사진에는 지형 대응 유도방식(TERCOM)과 디지털 영상유도장치(DSMAC) 조합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포착됐다.

 

지형 대응 유도방식은 관성항법(INS)으로 미사일 위치를 파악한 뒤 전파고도계로 측정한 고도와 사전에 입력된 등고선 정보를 비교하면서 목표로 날아간다. 

 

디지털 영상유도장치는 디지털 영상정보를 미사일 컴퓨터의 대용량 메모리에 저장하여, 이를 미사일 외부에 달린 카메라로 찍은 영상과 대조하는 방식이다. 지형 대응 유도방식과 조합하면 높은 수준의 정확도를 확보할 수 있다.

 

북한이 새로 개발했다고 밝힌 순항미사일 터보팬 엔진은 알려진 것이 없다. 

 

kh-55 순항미사일에 쓰이는 우크라이나 모터 시치의 R95-300 터보팬 엔진 모형. 위키피디아

단서는 북한이 밝힌 데이터다. 북한은 미사일이 1500㎞를 7580초간 비행했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속도는 마하 0.5~0.7 안팎으로 추정된다. kh-55는 마하 0.44~0.77, 토마호크는 마하 0.71이다.  

 

냉전 시절 kh-55는 우크라이나 모터시치 JSC R95-300 터보팬 엔진을 사용했다. 모터시치는 한때 중국이 인수를 시도했을 정도로 항공기 및 로켓 엔진 기술이 뛰어난 기업이다. 

 

우크라이나에서 kh-55를 들여온 이란이 북한에 kh-55 기술을 이전한 의혹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이 이란을 통해 순항미사일 엔진 문제를 해결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의 모터 시치사는 항공기 및 로켓 엔진을 다수 개발해 생산한 경험을 지닌 회사다. AP통신

토마호크는 윌리엄스 인터내셔널이 만든 F107-WR-402 터보팬과 고체연료 부스터를 사용한다. 아프간 전쟁 당시 파키스탄 등에 추락한 토마호크 불발탄에 있던 엔진에서 확보된 기술이 제3국을 거쳐 북한에 유입됐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우크라이나, 이란, 중국, 파키스탄 등에서 확보한 기술에 최신 운용개념을 접목한 순항미사일을 만들어낸 셈이다. 한국과 일본을 겨냥한 북한의 칼이 더욱 예리해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전쟁수행능력 강화 행보…상시적 대남 도발 위험

 

한 나라의 군사력을 분류하는 기준은 억제력과 전쟁수행능력이다. 

 

전쟁을 하면 더 큰 피해를 입는다고 상대를 위협해 전쟁을 막는 것이 억제력이라면, 전쟁수행능력은 개전 후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제한적인 승리를 얻는 데 초점을 맞춘다.

 

북한군 철도기동미사일연대 소속 열차 발사대에서 KN-23 탄도미사일이 발사되고 있다. 북한은 15일 철도기동미사일연대 검열사격 훈련을 진행했다고 밝히면서 관련 사진을 공개했다. 조선중앙TV·뉴시스

북한은 그동안 핵무기를 통한 억제력 확보에 초점을 맞춰왔다.

 

6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화성-14,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는 미국 영토에 핵미사일을 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함으로서 억제력을 얻겠다는 의도가 강했다.

 

반면 순항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은 한반도 남부를 겨냥한 것으로 전쟁수행능력 강화에 해당한다. 

 

한동안 미국만 주시하며 핵 능력 강화에 주력하던 북한이 눈길을 돌려 남한을 상대로 하는 실전 능력을 효율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핵보유국을 자처하는 북한에 한미가 함부로 전쟁을 시도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 재래식 도발을 쉽게 생각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군 초대형 방사포가 가상 표적을 향해 발사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9.19 군사합의로 휴전선 일대에서의 무력충돌 가능성은 낮아졌다. 하지만 남한을 사정권에 두는 미사일을 계속 쏘아올리면 전쟁수행능력 강화라는 내부 목적과 상시적 도발에 의한 긴장 유지라는 대남 전략을 함께 추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순항미사일과 단거리 탄도미사일의 기술적 신뢰성을 확보, 실전배치가 본격화되면 남한을 위협하는 미사일이 휴전선 일대부터 북중 국경 지역에 이르는 북한 전역에 배치된다. 한미 연합군의 대화력전이 쉽지 않게 되는 대목이다.

 

하노이 노딜 이후 남북관계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최강의 국방력 구축’을 국정운영의 최우선 기조로 했다. 미사일 도발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대목이다.

 

북한의 이같은 행보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남북간 군비경쟁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북한 미사일 소식에 직면한 남한이 다른 길을 찾아낼 수 있을까. 남한을 겨냥한 미사일 위협에 직면한 국가의 우울한 현실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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