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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사 지낸 파키스탄 외교관 딸, 피살 참변… 희생자 추모 집회 확산

입력 : 2021-07-30 23:00:00 수정 : 2021-07-30 21:4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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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피해자 어릴 때 친구… 청혼 거절 이유로 살해한 듯
대도시 등서 여성 인권 존중·희생자 추모 집회 이어져
누르 무카담 피살 사건과 관련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진행된 촛불 추모 집회. AP연합뉴스

파키스탄에서 20대 여성이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남성으로부터 살해된 사건이 발생하자 가해자를 규탄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가 확산하고 있다. 성폭력을 여성 탓으로 돌리며 명예살인이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파키스탄 사회에서 이 사건이 기폭제가 돼 여성 인권 증진을 위한 계기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30일 외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27세 여성 누르 무카담은 지난 20일 수도 이슬라마바드 부유층 주거지에서 머리가 잘려 숨진 채로 발견됐다.

 

경찰은 사건 발생 직후 부유층 가문 출신인 자히르 자페르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기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자페르는 무카담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인 후 이틀간 감금하고 흉기를 사용해 심하게 폭행했다.

 

무카담은 자페르의 청혼을 거절한 후 잔인하게 공격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언론은 이번 사건이 발생하자 연일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다. 상류 사회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이처럼 끔찍한 범죄가 발생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페르는 파키스탄에서 손꼽히는 유명 사업가 집안 출신이고, 무카담은 한국, 카자흐스탄 등에서 대사를 역임한 외교관 샤우카트 알리 무카담의 딸이라는 점도 언론의 관심을 끌었다.

25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누아르를 비롯한 가정폭력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 도중 최근 참혹하게 살해된 누아르 무카담의 사진 옆에 촛불과 꽃을 놓고 있다. AP연합뉴스

온라인에서는 ‘누르에게 정의를’(#JusticeForNoor)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범인을 규탄하고 보수적인 사회 문화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파리알 말리크는 자신의 트위터에 “누르의 사진을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제는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파키스탄에서 여성 살해를 제발 멈춰달라”고 썼다.

 

남부 카라치, 이슬라마바드 등 대도시에서는 여성 인권을 존중하고 범인을 강력하게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시위도 계속됐다.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도 이어졌다.

 

촛불 집회에 참석한 암나 살만 부트는 “나에게도 딸이 있는데 내 딸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봐 밤이며 낮이며 걱정한다”고 말했다. 가수 미샤 사피는 이 사건을 트위터에 태그하며 “또 다른 나날. 다른 여성이 끔찍하게 살해된다. 또 해시태크가 달린다. 또 다른 트라우마. (아마도) 해결되지 않는 또 다른 사건”이라며 무카담을 추모했다.

 

국교가 이슬람교인 파키스탄에서는 보수적이며 편향된 여성관이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성별 격차를 지수화한 성 격차 지수(GGI·Gender Gap Index)에서 올해 156개 나라 가운데 153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차별이 심각한 나라로 꼽힌다.

 

이런 분위기 속에 해마다 1000명에 가까운 여성이 ‘명예살인’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예살인은 다른 종파나 계급의 이성과 사귀거나 개방적인 행동을 한 여성이 가족 구성원에 의해 목숨을 잃는 일을 말한다.

파키스탄 여성 인권 운동가들이 지난 24일 파키스탄 라호르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규탄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여성에 대한 성폭력도 끊이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에는 북동부 라호르 인근 고속도로에서 한 여성이 자녀들 앞에서 집단 성폭행을 당한 일이 발생했다.

 

아울러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달 성폭력 증가의 원인을 여성의 노출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당시 그는 여성이 옷을 거의 입지 않는다면 남성들이 로봇이 아닌 이상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것은 상식”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무카담의 죽음으로 인해 지난 2013년 누더기로 통과됐던 가정폭력 관련 법률안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파키스탄 내에서 다시 커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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