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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사고에 고개 숙인 MBC… 공영방송 품격 어디로?

입력 : 2021-07-26 20:00:00 수정 : 2021-07-26 18: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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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제 사장 “머리 숙여 사죄” 대국민 사과
우크라이나·루마니아 대사관에 사과 서한
공영방송 공적 책무 다하겠다 밝혔지만
잃어버린 국민 신뢰 되찾기 쉽지 않을 듯
박성제 MBC 사장이 26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경영센터에서 올림픽 방송사고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MBC가 2020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에서 연이어 논란에 휘말린 가운데 외신과 국민의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러나 13년 전인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도쿄올림픽에서도 반복해서 유사한 실수로 물의를 빚고 있는 만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고개 숙인 박성제 사장… 피해국들에 사과문

 

박성제 MBC 사장은 26일 마포구 상암동 MBC 경영센터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열고 올림픽 중계 과정에서 생긴 여러 논란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박 사장은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지구인의 우정과 연대, 화합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방송을 했다”며 “신중하지 못한 방송, 참가국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방송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해당 국가 국민들과 실망하신 시청자들께 MBC 콘텐츠 최고 책임자로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대사관에 사과 서한을 전달했으며 오늘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한 외신들에도 사과문과 영상을 보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이티의 경우 국내에서 대사관이 철수해 아직 서한을 전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사진=MBC 방송화면 캡처

그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난 주말은 MBC 사장 취임 후 가장 고통스럽고 참담한 시간이었다”며 “1차 경위를 파악해보니 특정 제작진을 징계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기본적인 규범 인식과 콘텐츠 검수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근본 원인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고 참가국을 존중하지 못한 규범적 인식의 미비에 있다고 본다. 이를 시스템적으로 걸러내지 못한 것을 일차적인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개회식 ‘무례한 소개’ 이어 상대팀 선수 조롱

 

MBC는 지난 23일 ‘2020 도쿄올림픽 개막식’을 중계하며 무례한 참가국 소개 자막과 그래픽으로 비난을 샀다. 엘살바도르 선수단 소개 사진에 비트코인을, 이탈리아는 피자, 노르웨이는 연어 사진을 넣고 아이티 선수단 소개에는 ‘대통령 암살로 정국은 안갯속’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가장 큰 논란이 된 우크라이나 소개에는 체르노빌 사진을 썼다. 이 같은 사실이 영국 가디언과 미국 CNN·NYT 등 외신에도 알려지며 ‘무의미하고 이상하다’, ‘올림픽 개최식에 찬물을 끼얹었다’는 국제적 비판이 이어졌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난 25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B조 루마니아와의 2차전 중계에서 자책골을 넣은 상대팀 선수를 조롱하는 듯한 자막을 넣어 또다시 빈축을 샀다. MBC는 중계방송 중 중간광고 시간에 상단 자막으로 ‘“고마워요 마린” 자책골’이라는 문구를 내보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연대와 존중이라는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루마니아 축구협회는 트위터를 통해 “한국 공영방송 MBC가 자막으로 마린의 부끄러운 순간을 조롱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 목소리를 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증발한 공영방송의 품격… “국가 망신” 비판

 

‘공영방송’은 방송의 목적을 영리에 두지 않고 공공의 복지를 위해 행하는 방송으로 이에 걸맞은 공공성과 품격을 유지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MBC가 도쿄올림픽 중계방송에서 보여준 자막·그래픽 사고는 이 같은 공영방송의 책무를 다 하지 못한 행위이자 ‘국가 망신’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대한민국이 그간 대외적으로 호감 있는 국가로 인식됐는데 그 이미지를 상당히 깎아 먹은 측면이 있다”며 “이제는 소셜미디어 때문에 사고가 나도 숨길 수가 없고 전 세계에 퍼진다. MBC가 공영방송으로서 철저한 관리와 운영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올림픽 중계를 선거방송 경쟁하듯 쉽고 재밌게, 확실하게 기억에 남게만 준비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엘리트 의식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잘 모를 테니 무조건 쉽게 접근해야지’ 하는 어쭙잖은 고민으로 접근하다 보니 부작용이 나타난 것”이라고 비판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도 “국가 망신”이라거나 “올림픽 정신을 위배한 부끄러운 사건”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미국 CNN이 MBC 올림픽 개막식 논란 기사를 자사 홈페이지 맨 위에 올렸다. CNN 홈페이지 캡처

◆13년 전에도 같은 실수… 국민 신뢰 회복 미지수

 

MBC는 지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도 국가 소개를 하며 일부 국가에 대한 비하 자막을 사용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바 있다. 당시 MBC는 개회식 중계에서 카리브해 케이맨제도를 ‘역외펀드를 설립하는 조세회피지로 유명’하다고 소개하거나 차드를 ‘아프리카의 죽은 심장’으로 소개하고 짐바브웨 소개에는 ‘살인적 인플레이션’, 키리바시 소개에는 ‘지구온난화로 섬이 가라앉고 있음’이라고 쓰는 등 올림픽과 무관하고 배려 없는 자막을 사용해 물의를 빚었다. 이에 같은 해 9월 방심위는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를 내렸다.

 

박성제 사장은 이날 대국민사과 기자회견에서 다시 한 번 재발 방지 의지를 다졌다. 그는 “철저하게 원인과 책임을 파악하고 대대적인 쇄신 작업을 하겠다. 방송강령과 사규, 내부 심의규정을 강화하고 윤리위원회, 콘텐츠 적정성 심사 시스템도 만들어 사고 재발을 막겠다”고 했지만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이날 MBC 시청자 상담실 게시판에는 박 사장의 사과 이후로도 시청자의 비판글이 끝없이 이어졌다. ‘관련 제작진을 모두 해고하라’거나 ‘박 사장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국가 망신 그만 시키고 중계를 그만두라’는 등 강한 수위의 비판글이 연이어 올라와 MBC의 국민 신뢰 회복은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지원 기자 g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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