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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베스트셀러 소설은 이제 안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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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6-04 22:30:03 수정 : 2021-06-04 22: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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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한국문학사 쓰려면
대중소설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사회적 반향 불러일으켰으므로
사회적 연구방법론으로 접근을

호쇼 마사오 외 4인이 쓴 2권짜리 ‘일본 현대 문학사’에는 대중소설 작가로 유명한 기쿠치 간이 무려 32쪽에 걸쳐 20번 이상 다뤄지고 있다. 물론 ‘문예춘추’와 아쿠타가와상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지만 우리 같으면 대중소설 작가를 이렇게까지 비중 있게 다루지는 않는다. 즉, 일본은 우리와 달리 문학사에서 대중소설을 배제하지 않는다.

10권 정도 나와 있는 한국문학사 혹은 한국소설사를 보면 이상하게도 5명의 이름이 몽땅 빠져 있다. ‘마도의 향불’을 쓴 방인근(1899∼1975)이 안 보인다. 마도의 향불은 1932년 11월 5일부터 1933년 6월 12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된 통속적인 연애소설이다. 방인근은 1930년대에 ‘방랑의 가인’을, 1940년대에 ‘젊은 아내’를, 1950년대에 ‘인생극장’과 ‘청춘야화’를 펴냈다. 수십 편의 베스트셀러를 계속해서 내고서도 방인근은 한국문학사에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김말봉(1901∼1961)이 등장하였다. 1935년 동아일보에 ‘밀림’을 연재하여 인기를 얻자, 조선일보는 더 좋은 조건으로 연재를 부탁했으니 1937년에 나온 그 유명한 ‘찔레꽃’이다. 통속적인 재미를 유지하면서도 도덕적 건강성을 잃지 않으려고 한 작가의 노력이 건전한 연애 담론을 유도하였다. 1938년에 인문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 금방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한국 추리소설·탐정소설의 아버지인 김내성(1909∼1957)은 ‘유불란’이란 탐정을 내세워 사건을 해결, 홈스와 루팡 소설에 심취해 있던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어필하였다. 김내성은 그 뒤에 추리소설보다는 대중소설로 방향을 틀었다. 대중소설 범주에 드는 ‘청춘극장’ ‘쌍무지개 뜨는 언덕’ ‘실락원의 별’ 등이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1949년부터 쓰기 시작한 청춘극장은 한국전쟁 중에도 1만부가 팔렸고, 전 5권짜리가 15만질이나 팔렸다.

박계주(1913∼1966)의 ‘순애보’는 매일신보의 현상공모에 당선된 장편소설로, 1939년 신문연재 후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강간살해범이 나오는데 실제로는 육체적인 사랑을 멀리하고 정신적인 순수한 사랑을 이뤄가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주는 다분히 교육적인 소설이다.

전후에 서울의 종이값을 올린 이는 정비석(1911∼1991)이다. 대학교수 부인이 춤바람이 나는데 하필이면 남편의 제자인 젊은이가 파트너가 되었기에 소동이 벌어진다. 단행본 출간 이후 5만권이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들이 쓴 베스트셀러 소설은 문학사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효석은 순수문학작품을 썼지만 대중소설과의 경계에 서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저항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다수의 일본어 소설을 썼던 그의 경우, 김윤식·김현이 쓴 ‘한국문학사’에는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온다. 이효석이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는 것이, 통속적인 연애소설도 썼다는 것이 문학사에서 배제된 주된 이유였다.

혹자는 작품성이 있어야지만 문학사에서 다뤄지지 않겠냐고 말하겠지만 그 작품성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통속성이 이광수의 소설에는 없겠는가. 대중성이란 것은 염상섭의 소설에, 채만식의 소설에도 다 들어 있다.

감히 주장한다. 제대로 된 한국문학사를 쓰려면 대중소설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므로 사회적인 연구방법론으로 접근해야 할 소설들이다.

시도 마찬가지다. 문학사 편찬자는 류시화 이해인 용해원 원태연 이정하 같은 시인을 안정해 주지 않는다. 이들의 높낮이를 재보지 않고 시문학사를 쓰면 그건 잘못된 것이다. 정호승 도종환 김용택 최승자 안도현 같은 시인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다 누리고 있는 행복한 경우다. 후자 5명만이 아닌 전자 5명도 모두 문학사에 나와야 한다.

1970년대에 대중문학을 주도한 최인호 조해일 조선작 송영, 그리고 문제작을 다수 낸 황석영 이문열 김성동 등은 정통문학권 내에서의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이들의 시대에 와서야 베스트셀러를 내도 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비로소 문학사에서 다뤄질 수 있게 되었다. 즉, 그 전의 다섯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직도 문단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도 일본처럼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을 구분짓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이승하 시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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