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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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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21 22:51:42 수정 : 2021-05-21 22: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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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영화감독 회고전 뇌리에
죽음으로부터 삶으로의 전환
작고 미미한 것들의 묘한 감동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깨달음

종로3가와 청계천 사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지금 이란의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2016년 세상을 떠난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대표작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1987),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1992), ‘올리브나무 사이로’(1994) 등 소위 ‘지그재그 3부작’을 비롯하여 1997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체리향기’ 같은 영화들이 상영되고 있다. 덕분에 보고 싶었던 영화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1999)를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내 영화의 잔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첫 장면부터 압도적이다. 구불구불한 도로 이미지가 지나가면 낡은 SUV를 운전하는 한 남자의 시선으로 흙과 나무, 그리고 띄엄띄엄 ‘노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포착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로 익숙해진 이란의 산야 풍경이다. 남자는 지금 한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쿠르드의 전통 장례식을 취재하러 가는 길이다. 그런데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도착하고 보니 위독하다던 할머니는 오히려 점차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고 남자와 동료들의 체류는 기약 없다. 방송국에서는 연신 일정을 재촉하는 전화가 걸려오고, 남자는 이 전화를 받기 위해서 휴대전화가 ‘터지는’ 유일한 장소인 마을 외곽 언덕까지 달려가야만 한다. 우리는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전화기를 든 남자가 다급하게 끊지 말라고 소리치며, 차에 시동을 걸고, 부리나케 ‘지그재그’ 모양으로 난 언덕길을 차로 올라가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게 된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우리 도시인의 ‘일’이란 게 온통 저 모양 아닐까. 곡식을 나르고 아이를 키우며 빨래를 너는 ‘진짜 일’과 비교할 때 이 행위는 일 축에도 들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휴대전화를 들고 전전긍긍하는 남자의 모습은 단순히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라 측은해 보이는 측면도 없지 않다. 감독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는 남자를 점차 전화선으로부터 떼어내 다른 삶의 진경 속으로 밀어 넣는다. 전화만 잡고 있던 남자가 자신도 모르게 마을 사람들의 삶의 디테일을 하나하나 알아차리게 되는 것은 이때부터다. ‘죽음’을 기다리던 남자에게 ‘생’이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죽음으로부터 삶으로의 전환, 어쩌면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는 이 말로 많은 것을 대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먹먹한 삶의 이미지가 도처에서 출렁인다. 낯선 외지인 남자와는 눈도 마주치지 않는 마을의 여인들, 그녀들의 검은 옷과 오랜 침묵들, 언덕 정상에서 묘를 파고 있던 청년의 약혼자가 우유를 짜던 지하의 어둠, 그 어둠을 밝히는 한줄기 불빛, 남루한 옷을 입고 남자에게 빵을 가져다주던 소년, 무엇보다도 머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어야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문을 지나 마을의 집들 사이를 몇 번이고 오르내리다 보면 마치 보석처럼 우연히 드러나는 미네스트럴 색깔의 창문, 그리고 그 창가에 놓여 있는 화분, 그런 것들!

느리게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던 마을에서 새롭게 포착한 삶의 징후는 이처럼 작고 미미한 것들뿐이지만 그 생생한 삶의 구체성은 묘한 감동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 일상의 흔적들 사이로 아이가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는다.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죽음은 삶 속에 똬리를 틀고 있고 삶은 언제나 죽음 앞에 겸허하다.

영화의 마지막, 우리는 바람 부는 밀밭 사잇길로 노의사(그는 삶과 죽음의 주재자다)와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온통 황금빛이다. 꿈결 같다. 이 환각을 영화의 것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산다는 게 다 이와 같지 않을까. 발코니에서, 또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남자가 점차 표정이 달라지던 장면을 좀처럼 잊지 못하겠다. 그는 살아있다는 게 얼마나 충만한 일인지 알아차린 듯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깨달음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삶이든 반짝반짝 빛나지 않는 삶이란 없는 법이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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