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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시설 파괴·과학자 암살… 핵무기 개발 저지 ‘그림자 전쟁’ [심층기획-이스라엘, 이란 핵개발 억제 총력전]

입력 : 2021-05-04 06:00:00 수정 : 2021-05-04 06:5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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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 이란 핵시설 존재 드러나
2010년엔 해킹 통해 원심분리기 파괴
작년엔 ‘핵 개발 아버지’ 암살당하기도

1급 비밀 핵시설·과학자 피해 지속에
이란 언론 “집안 단속부터 해야” 비판
일각 “이스라엘 공작 시간벌기” 지적
미국 상업위성사진 기업 플래닛 랩스가 지난달 촬영한 이란 나탄즈 핵시설 위성사진.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달 11일 이란 중부 나탄즈의 우라늄 농축시설. 이란이 핵무기를 만드는 곳이라는 의혹을 받는 이곳에서 갑작스럽게 사고가 발생했다. 전기 공급이 끊기면서 우라늄을 농축하던 원심분리기들이 통제력을 잃고 파괴됐다. 이보다 5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27일 테헤란 인근에서는 ‘이란 핵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던 모센 파크리자데가 암살됐다. 일련의 사고에 이란 정부는 “명백한 테러”라며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했다.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벌이는 ‘그림자 전쟁’의 한 단면이다.

◆이란 핵 개발 저지하려 ‘위험한 개입’

이스라엘은 ‘그림자 전쟁’으로 이란 핵개발을 억제하려 하고 있다. 이란이 핵무장을 완료하는 시기를 최대한 늦추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란은 북한과 달리 핵실험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핵무기를 만들지는 못한 상태다.

핵시설 파괴, 과학자 암살, 사이버 테러를 포함해 다양하게 이뤄진 이스라엘의 ‘그림자 전쟁’ 핵심 표적은 우라늄을 농축하는 고성능 원심분리기가 설치된 나탄즈 핵시설이다. 이곳 지하에 있는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우라늄 농도를 90%로 끌어올리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나탄즈 핵시설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것은 2002년 8월. 이란 반정부단체 국민저항위원회(NCRI)가 기자회견을 열어 나탄즈 핵시설의 존재를 폭로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가 관련 정보를 제공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2007년 이곳에서 전기 공급장치 폭발사고가 발생했는데, 이스라엘이 배후로 추정됐다.

2010년 이스라엘은 미국과 함께 스턱스넷(Stuxnet)이라는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나탄즈 핵시설 컴퓨터에 침투시켜, 원심분리기 1000기를 파괴했다. 지난해 8월에도 다수의 고성능 원심분리기를 연결한 캐스케이드(연결구조)가 폭발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이 2021년 4월 10일(현지시간) ‘핵기술의 날’을 맞아 테헤란에서 열린 이란의 새로운 핵 성과 전시회에서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원자력청장으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이란은 이날 나탄즈 지하 핵시설에서 개량형 원심분리기 IR-5·IR-6 가동을 시작했으나, 이튿날 이스라엘 소행으로 추정되는 사이버 공격을 받아 정전 사태가 빚어졌다. 이란 대통령실 제공, AP연합뉴스

핵 과학자에 대한 공격도 끊이지 않고 있다. 모센 파크리자데에 앞서 2012년 나탄즈 시설 부소장인 무스타파 아스마디 로샨이 출근길에 암살됐다. 복면을 한 요원 2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로샨이 탄 차에 접근해 자석 형태의 플라스틱 폭탄을 부착한 뒤 사라졌다. 9초 후 폭탄이 터졌고 로샨은 즉사했다. 2007년부터 이어진 이스라엘의 암살 공작으로 추정되는 원인불명의 사건으로 숨진 이란 핵 과학자와 군인은 7명에 달한다.

미 중앙정보국(CIA), 영국 비밀정보국(MI6)과 더불어 제3국에서의 공작도 벌어졌다. 이스라엘은 동유럽에 세운 유령회사를 통해 이란에 불량 설비를 판매, 핵시설 가동을 방해했다. 이란에 판매한 설비에 폭발물을 몰래 부착, 설비가 가동되면 폭발하도록 하는 방법을 썼다.

이 같은 노력에도 이란의 핵무기 개발 억제 노력이 실패하면 이스라엘은 핵시설 파괴도 불사할 태세다. 미 CNBC 등 외신은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과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독일, 영국에 핵 합의 압박 △이란에 제재와 외교를 병행하는 경고 △사이버전을 포함해 전쟁 직전 단계의 공격 △이란 핵시설 공습 △이란의 정권 교체 시도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란과 시리아를 오가는 유조선도 공격 대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19년 말부터 시리아로 가는 선박 10여척을 공격했는데, 대부분 이란산 석유를 운반하던 유조선이었다. 지난달 말에도 시리아 해안에서 이란 유조선 1척이 정체불명의 공격을 받았다.

이란도 반격에 나섰다. 이란은 나탄즈 핵시설 사고 직후인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농도 60% 우라늄 농축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나탄즈 핵시설이 공격당했지만, 우라늄 농축에는 문제가 없다는 점을 과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스라엘 회사 소유의 화물선이 지난달 중순 걸프 해역에서 이란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공격을 받았다. 이란은 나탄즈 핵시설 폭발에 관여한 용의자 레자 카리미(43)의 신원을 공개하고 압송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등 ‘집안 단속’에도 나서고 있다.

◆유무형 피해 누적…한계도 뚜렷

이스라엘의 ‘그림자 전쟁’은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다. 이란의 1급 비밀인 핵시설과 과학자들이 피해를 입은 사실이 계속 공개되면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 자산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격이다. 이란에 이스라엘의 간첩망이 암약하고 있지만, 이란 정보기관과 방첩조직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아미르-호세인 가지자데 하셰미 이란 의회 부의장은 나탄즈 핵시설 사고와 관련, 현지 언론에 “이제 더는 이스라엘과 미국 탓만 할 수 없다. 이란은 집안청소부터 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의 공작으로 의심되는 공격이 계속되면 이란은 핵프로그램과 관련한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보안 점검, 핵시설 경비, 반입되는 설비·부품에 대한 검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이란 핵프로그램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이란 원자력청이 2019년 공개한 나탄즈 핵시설 내 원심분리기.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이란 핵개발을 근본적으로 차단하지 못한 채 갈등만 키운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란이 스스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이스라엘의 공작은 시간벌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란 핵시설 공습 효과는 전망이 엇갈린다. 이스라엘은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력발전소를, 2007년 시리아 핵시설을 공격해 파괴한 바 있다.

이란과 갈등을 빚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이나 사우디아라비아를 경유하면, 전투기로 이란 핵시설 공습이 가능하다. 반면 이란이 이라크와 시리아의 전례를 참고해 핵시설을 수십 곳에 분산했고, 산 아래 깊은 지하에 시설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공습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반박도 많다.

 

◆폐쇄 정책 北에 공작망 구성 어렵고 사이버공격도 한계

 

북한 영변 핵시설 단지. 연합뉴스

이란 핵개발을 저지하는 이스라엘의 공작이 계속 공개되면서 국내에서는 북한에 대해서도 이스라엘식 공작을 감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외교와 제재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모사드처럼 한·미 정보기관이 파괴 공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공작은 실효를 거두기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공작을 펼치려면 북한 내 간첩망과 공작 조직 구축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나 서방측 정보기관 요원이 북한에 침투해야 한다.

 

문제는 외국인 입국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은 대외 무역이 활발한 국가다. 신분을 감춘 ‘블랙’ 요원 투입이 가능하다. ‘블랙’ 요원에 포섭된 현지 인사를 제3국으로 출국시켜 정보를 빼낼 수도 있다.

 

반면 북한은 철저히 폐쇄적인 정책을 취한다. 외국과의 경제 교류는 매우 제한적이고, 외국인 출입국과 체류도 제약이 많다.

 

미 국무부 북한 여행경보에 따르면 북한을 방문한 외국인은 모든 행동이 감시 대상이다. 휴대전화, 태블릿PC, 인터넷 검색 기록 등은 모두 검열될 수 있다. 휴대전화는 북한 통신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작동되지 않고, 통화 기록도 노출된다. 허가를 받지 않은 국내 여행, 현지 주민과의 접촉, 환전, 사진 촬영, 음란물 반입, 외국인 전용 외의 상점에서 물건 구매, 정치구호물이나 지도자 사진 훼손 등은 모두 범법 행위다. 외교관이나 특파원 등 현지 주재원들도 행동의 폭이 매우 좁다. 평양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했던 해외 매체 관계자는 “대사관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그나마 이뤄지던 외국인 입국도 차단됐다. 북한 내 공작망 구성이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다.

 

사이버 공격도 한계가 있다. 외부 세계와 연결된 인터넷은 북한 정치·군사 지도층 엘리트들은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으나, 북한의 데이터 보안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를 추적하는 활동도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에서 사용되는 인트라넷은 외부에서의 해킹이 쉽지 않다. 핵시설에 쓰이는 컴퓨터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렵다. 정보수집은 도청이나 망명한 인사의 진술 등을 통해 이뤄질 수 있지만, 북한 내에 침투해 이뤄지는 공작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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