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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 사라진 美 전쟁영웅, 77년 만에 수면 위 떠오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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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22 06:00:00 수정 : 2021-04-22 09: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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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해군 입대한 ‘추장님’
절체절명의 위기에 ‘살신성인’… 美 해군 구했다
군함 침몰 77년 만에 수심 6.4㎞ 해저에서 발견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 해군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한 어니스트 에반스(1908∼1944) 중령. 아메리카 원주민 최초의 명예훈장 수훈자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미국 국방부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해군과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전사한 전쟁영웅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이 영웅은 1944년 10월 미·일 해군이 필리핀의 명운을 걸고 격돌한 레이테만 해전 당시 그가 지휘한 구축함과 함께 침몰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 그 배가 심해에서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발견됐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해군 입대한 ‘추장님’

 

21일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따르면 어니스트 에반스(1908∼1944) 해군 중령은 미국에서 군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에 해당하는 명예훈장 수훈자다. 오클라호마가 고향인 그는 아메리칸 원주민 출신인데, 당시 미국 사회의 극심한 인종차별을 딛고 아나폴리스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31년 소위로 임관했다. 동기생들은 에반스한테 ‘추장님’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미국과 일본 간의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0월 에반스는 새로 취역한 구축함 존스턴(Johnston)호의 함장이 됐다. 이 배는 1944년 10월 25일 필리핀 해역에서의 사마르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다. 사마르 해전은 2차대전에서 미 해군이 일본 해군을 거의 궤멸시킨 레이테만 해전(1944년 10월 23~26일)의 일부다.

 

당시 미 해군은 주력 함대가 일본 함대의 유인 전술에 휘말려 필리핀 해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필리핀 상륙작전을 위해 레이테만 일대에 집결해 있던 미 육군 등 기타 부대들이 방어가 허약한 틈을 탄 일본 해군의 기습을 받는 경우 미국의 필리핀 탈환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943년 10월 취역 당시의 구축함 존스턴 모습. 어니스트 에반스 중령이 함장을 맡아 지휘했다. 오른쪽에 배 고유 번호 ‘557’이 표시돼 있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절체절명의 위기에 ‘살신성인’… 美 해군 구했다

 

일본 함대의 주력 전함들이 레이테만 쪽으로 이동하자 당시 사마르섬 부근에서 대기 중이던 구축함 존스턴이 나섰다. 존스턴은 길이 115m, 무게 2700톤의 구축함으로 일본 함대의 주력 전함에 비하면 덩치도 작고 무장 또한 빈약했다. 함장 에반스의 진두지휘 하에 존스턴은 그야말로 적 함포에 맞아 박살이 날 각오를 하고 일본 전함 쪽으로 근접해 포탄과 어뢰를 발사했다.

 

레이테만 해전 전사를 보면 존스턴은 불과 5분 동안 200여 발의 포탄와 어뢰를 쏘며 일본 해군의 시선을 끌었다. 존스턴의 발빠른 공세로 일본 함대는 중순양함 2척이 큰 피해를 입어 대열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었다. 미군의 주력이 일본 함대와 제대로 맞서 싸울 채비를 할 수 있게끔 시간을 벌어준 셈이다.

 

하지만 존스턴은 곧장 일본 해군의 표적이 되었다. 배를 향해 적의 포탄과 어뢰가 집중적으로 날아들었다. 존스턴은 바닷속으로 침몰하기 시작했고 승조원들은 함장 에반스의 명령에 따라 배를 빠져나갔다. 다만 적의 포화가 워낙 심했고 배도 이미 많이 파손된 상태여서 전체 승조원 327명 중 141명만 탈출에 성공하고 186명은 실종됐다. 함장 에반스도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그를 포함한 실종자 전원은 배와 함께 침몰해 전사한 것으로 추정됐다.

최근 필리핀 사마르섬 앞바다의 수심 6456m 해저에서 발견된 구축함 존스턴 선체. 1944년 10월 25일 침몰 후 거의 77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배 고유 번호 ‘557’표시가 선명하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군함 침몰 77년 만에 수심 6.4㎞ 해저에서 발견

 

일본이 항복하고 난 뒤인 1945년 9월 28일 미 정부는 사관생도 시절을 포함해 17년간 해군에 복무한 공로, 그리고 사마르 해전에서 보여준 영웅적 활약상을 기려 에반스한테 명예훈장을 추서했다. 이는 아메리카 원주민으로선 최초다. 2차대전 당시 명예훈장을 받은 미 해군 구축함 함장이 에반스를 포함해 단 둘뿐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 알 수 있다.

 

훈장 수여식엔 고인을 대신해 부인과 두 아들, 그리고 어머니가 참석했다. 유족은 배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한 고인을 추모했다.

 

그런데 최근 에반스의 유해나 유품을 수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필리핀 사마르섬 앞바다 수심 2만1180피트(약 6456m) 지점에서 구축함 존스턴의 선체가 발견된 것이다. 이제껏 해저에서 발견된 침몰 선박 중 가장 깊은 수심 기록에 해당한다. 선체에는 존스턴의 고유 번호인 ‘557’이란 숫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배를 찾아낸 심해 탐사업체 측은 “두 개의 5인치 함포 포탑과 포신을 올려놓은 여러 개의 받침도 상태가 온전했다”고 전했다.

 

현존하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존스턴을 과연 인양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다만 탐사업체 대표는 “선박 손실로 영원히 피해를 입은 존스턴호, 그 승조원 및 가족들에게 명확성, 그리고 의구심 해소를 제공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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