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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용’ 기회 박탈 절망… “제발 ‘공정’만이라도 지켜달라” [‘변화의 중심’ 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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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24 22:00:00 수정 : 2021-04-25 00: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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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불공정에 분노하는 세대

온라인 ‘공정’ 키워드 2018년 86만건
2020년엔 하루 4300건… 80% 이상 급증

여성들 고용·임금 등 성차별 구조 비판
남성들은 취업·군대 부담… 역차별 성토

인국공 사태 등 ‘절차적 공정’ 몰두 논란
전문가 “진정한 공정은 소수자 우대”

(중) 소비·투자 주체로 부상

유튜브·SNS 통해 투자 정보 쉽게 취득
2020년 상장사 주식 보유 20대 전년比 180%↑
2020년 3월 이후 증시 신규 진입 54%가 ‘2030’

더 나은 수익률 찾아 해외주식 매입 예사
목돈 마련 위해 ‘빚투’까지 마다하지 않아

부자들의 전유물 미술품 투자 ‘큰손’ 부상
한정판 운동화 ‘리셀’ 스니커테크도 인기
“원가 처분 가능… 가장 안정적 재테크 수단”

재테크 목적, 절반이상 “집마련·노후대비”
요행 노리고 무리한 투자… 빚더미 앉기도

(하) 세대론 뛰어넘어야

청년세대 내부 자산불평등 ‘심각’ 79%
고용불평등 72%·주거불평등 71% 응답
10명 중 8명 “향후 10년간 더욱 커질 것”
남성보다 여성, 20대보다 30대 더 강해

과거 88만원세대·삼포세대·N포세대
사회경제적 어려움 처한 상황에 기반
최근 연구는 “세대 불평등 실재 않아”
전문가 “MZ세대, 사회 도전과제로”

“양극화나 불평등은 당장 해결할 수 없잖아요. 제발 ‘공정’만이라도 지켜달라는 거죠.”

취업준비생 조성준(28)씨에게 공정은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앞으로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는 일찌감치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는 옛이야기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는 “예전엔 성실하게 회사 다니며 월급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20∼30년 동안 일해도 내 집을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졌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같은 불공정 사태에 큰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김정석(28)씨에게도 공정은 중요한 가치다. 그는 “지금 사회는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실상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과거에는 다소 불공정한 일이 있어도 다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회 위치에 대한 불안감이 적었는데 지금은 계층 유동성이 무너졌잖아요. 차선으로 공정에 매달리게 된 것 같습니다.”

공정, 젠더, 합리성, 스몰럭셔리, 공유 문화…. ‘MZ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친 MZ세대는 최근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 지형에까지 충격파를 던지며 사회의 중심에 섰다. 디지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익숙한, 이전 세대와는 다른 ‘DNA’를 가진 이들이 몰려오면서 한국 사회는 또 한번 급변의 기로에 놓였다. 사회·경제 연구소에서는 이들을 분석한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MZ세대는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세계일보는 3회에 걸쳐 이들에 대해 분석해봤다.

◆MZ세대 “우리 사회는 불공정”…공정은 ‘기본권’

공정은 MZ세대를 대표하는 핵심 가치다. 18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SNS와 포털사이트 등에서 ‘공정’이 언급된 횟수는 총 157만1036건에 달한다. 2018년(86만4442건)보다 80% 이상 급증한 수치로, 공정을 논하는 게시물이 하루 평균 4300여건 올라온다는 의미다. SNS의 주된 사용자인 MZ세대에게 공정이 하나의 화두로 자리 잡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MZ세대가 한국사회의 불공정에 좌절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7월 서울에 거주하는 20∼39세 청년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는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는 문항에 동의한 응답자는 14.3%에 불과했다.

실제 SNS 등에서 공정 언급량이 급증한 시기는 사회에서 불공정 이슈가 불거진 시점과 일치한다. LH 사태가 불거진 지난달 ‘공정’ 언급량은 10만3209건으로, 전달(5만7127건)보다 2배가량 늘었다. 최근 3년 사이에 ‘공정’이 가장 많이 언급된 달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한 2019년 9월(28만7591건)이었다. 임명 당일(9월9일) 하루에만 2만9379건 등장했다.

 

불공정한 사회에서 최소한의 기회조차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청년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취업준비생 박모(26)씨는 “MZ세대는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라면서 “빈부 격차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청년들을 불안하게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김모(28)씨는 “능력에 맞게 성과를 얻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가 돼야 하지만 현실은 소수만 특권을 행사하고, 다수는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토로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는 “열심히 노력하면 결실을 얻어야 하는데 시스템 격차가 너무 커져서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MZ세대는 노력에 따른 보상 체제가 갖춰진다면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조차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도, 남성도 “성차별 받고 있다”

 

공정에 대한 열망은 젠더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MZ세대 여성들은 최근 수년간 불거진 젠더 이슈를 통해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반면 남성들은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제도적 지원이 여성에 집중된다며 ‘역차별론’을 펴기도 한다.

 

여성 박모(26)씨는 “‘n번방’ 사건은 나와 지인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젠더 이슈가 추상적 담론이 아닌 우리 세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인식했다”며 “성평등 의식이 전과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은비(23)씨도 “고용이나 임금에서도 성별 격차가 해소되지 않아 가정과 일터 모두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남성들은 오히려 정부 정책에서 청년 남성이 배제된다고 말한다. 남성 강모(27)씨는 “우리를 과도하게 차별하는 주체로 몰아가고 잠재적 피의자 취급하는 것 같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모(28)씨도 “고용 등에서 여성 비율을 할당하는 경우가 늘었는데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자든 여자든 학교에서 똑같이 교육받고 실력을 기를 수 있는 시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인식은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 비율은 74.6에 달했지만, 남성은 18.6에 그쳤다.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비율 역시 남성 51.7, 여성 7.7로 극과 극이었다. 각자 자신의 성별이 불평등에 시달린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과)는 정치권의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가 ‘여성우대정책’이란 단어를 남발해서 남성들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우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성 입장에서는 실체가 없다”며 “여성들은 현실에서 바뀌는 것이 없으니 분노하고, 남성들도 취업과 군대 등의 부담이 큰데 사회에서 계속 ‘여성 우대’를 말하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치권과 언론이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공정 만능론’은 경계해야… 자성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MZ세대가 협소한 의미의 공정만 강조해, 차별적 구조의 개선이나 사회적 연대는 간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 산정 기준 논란이나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에서 보듯 ‘절차적 공정’에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것이다. MZ세대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생 김서하(20)씨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야 공정한 사회”라면서 “제대로 경쟁할 수 없는 약자에게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MZ세대가 말하는 공정성의 기반에는 능력주의가 있다”면서 “기성세대가 MZ세대의 문제 제기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각자도생하자는 식으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가게 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도 “진정한 의미의 공정은 소수자에 대한 우대인데 능력주의에 따른 차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공정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일인 지난 7일 직장인들이 서울 중구문화원에 마련된 투표소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내년 대선서 ‘캐스팅 보트’ 주목

 

여당의 참패, 야당의 압승으로 요약되는 4·7 재보궐선거에서 20∼30대를 일컫는 ‘MZ세대’는 가장 주목받은 유권자층이다. 그동안 민주·진보 진영 핵심 지지층으로 여겨졌으나 이번 선거에서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20대는 남녀 간 극명히 엇갈린 표심을 드러내며 정치권의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이 세대 유권자들이 내년 대선에서도 ‘캐스팅 보트’가 될지 주목된다.

 

선거 당일이었던 지난 7일 방송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서울 20대 남성 유권자의 72.5%는 국민의힘 오세훈 당시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오 후보에 투표했다는 20대 남성 비율은 50대 남성(52.4%)은 물론, 보수 성향이 뚜렷한 60세 이상 남성(70.2%)보다도 높았다. 30대 남성 역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32.6%)의 두 배에 육박하는 63.8%가 오 후보를 뽑았다고 답했다. 30대 여성에서도 오 후보를 찍었다는 응답(50.6%)이 박 후보(43.7%)를 앞질렀다. 반면 20대 여성에선 오 후보(40.9%)보다 박 후보(44.0%) 지지율이 높았다. 박 후보가 오 후보를 이긴 건 전 연령대·성별을 통틀어 40대 남성과 20대 여성뿐이다.

 

이 같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정치권 안팎에선 2030 세대가 ‘젊음=진보’라는 인식을 깨고 거센 불만을 표출한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극심한 취업난, 집값 급등으로 ‘내 집 마련’의 꿈이 멀어진 상황에서 불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조국(전 법무부 장관) 사태’와 ‘인천국제공항 사태’ 등 잇단 공정성 논란에 여권 인사들의 ‘내로남불’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누적된 분노가 폭발했다는 것이다.

정치평론가인 신율 명지대 교수는 18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20∼30대는 정치권력의 폐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대”라며 “이 세대는 이념 성향이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반발심이 강한 것이 특징인데, 이번에 그런 성향이 도드라졌다”고 설명했다.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이번 선거에 나타난 2030 표심에는 LH 사태의 영향이 특히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다만 20대는 같은 세대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남녀의 표심이 크게 엇갈렸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문재인정부 들어 극심해진 젠더 갈등이 그 원인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번 서울시장 보선이 치러지게 된 이유인 민주당 소속 고(故) 박원순 전 시장의 성추문을 20대 남성들은 또 하나의 내로남불로, 20대 여성들은 남성 권력의 문제로 받아들였다는 분석이다. 오 후보 캠프에서 뉴미디어본부장을 맡았던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이준석 전 최고위원이 선거 후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여성주의 운동에만 올인했으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평가한 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페미니즘을 둘러싼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성계에선 20대 여성 표의 15.1%가 거대 양당이 아닌 페미니즘을 표방한 군소정당 후보들에게 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 교수는 “일종의 페미니즘 투표라고 할 수 있는데, 만약 그 표가 오 후보에게 갔다면 20대 남녀도 다른 세대와 비슷한 비율을 보였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정치권에선 여야를 막론하고 부랴부랴 MZ세대에 대한 구애를 펴고 있다.

◆ 급등한 집값에 ‘화들짝’… 주식·가상화폐 등에 과감하게 ‘베팅’ 

 

MZ세대는 요즘 ‘재테크’에 꽂혀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욜로(YOLO: 인생은 한 번뿐이다)’족의 행복한 소비가 대세인 듯했지만 급등한 집값 등에 생존 위기를 느끼면서 확 달라졌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증시가 급락하자 주식투자에 입문해 ‘동학개미’ 붐을 주도했고, 가상화폐 투자에도 나섰다. 기성세대가 부동산이나 주식, 금 등에 투자한다면 MZ세대는 주식뿐 아니라 가상화폐, 그림, 게임, 스니커즈 등 투자 대상이 훨씬 다양하다.

 

온라인으로 정보를 수집·소통, 빠르게 반응하고, 재미를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다. 코인 투자에서 보여주듯 과감한 투자도 MZ세대의 특징이다. 취업난과 부동산 급등 속에서 미래를 도모하기 위한 그들의 선택이 투자 흐름을 바꾸고 있다.

 

◆주식 투자의 새 흐름 MZ세대

 

한국예탁결제원의 ‘2020년 12월 결산 상장법인 개인소유자 보유금액 현황’에 따르면 상장사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20대는 2019년 38만2000여명에서 107만1000여명으로 180.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이들의 보유 금액도 5조7000억여원에서 12조6000억여원으로 120.9% 늘었다. 30대의 상장사 소유자는 107만2000여명에서 181만2000여명(69.1%), 보유금액은 26조8000억여원에서 51조6000억여원(92.6%) 늘어났다.

 

2030세대의 주식투자 증가로 증시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커졌다. 지난해 2월까지만 해도 증시에서 MZ세대의 비중은 약 31%였다. 하지만 지난해 3월 이후 증시에 새로 진입한 연령을 보면 절반 이상인 54%가 2030세대였다.

특히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투자 관련 정보가 넘쳐나면서, 젊은 세대가 투자에 더 쉽게 뛰어들 수 있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직장인 김모(34)씨는 “과거에 주식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고 가상화폐는 다 사기며, 오로지 적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난해부터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 단체 채팅방에서 재테크 성공사례를 보고 난 뒤 마음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들 세대는 재테크 수익률을 위해서라면 국내 증시는 물론, 해외 주식과 가상화폐 등을 가리지 않는다. 해외주식의 경우 수익에 대해 과세 부담이 있고 가상화폐 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의 리스크가 있지만 더 나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면 감내할 수 있다는 반응이다.

해외 주식과 가상화폐 투자로 2억여원을 번 박모(35)씨는 “리스크를 감내하지 않으면 큰돈을 모으지 못한다”며 “해외 주식과 가상화폐를 절반씩 나누어서 투자했다. 수익을 냈으니 망정이지 손실을 입었으면 빚더미에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MZ세대는 목돈 마련의 기회를 잡기 위해 ‘빚투’(빚내어 투자)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전 세대는 빚이 있으면 가장 먼저 대출 상환을 목표로 하고 그를 위해 저축을 했으며 투자는 선택사항이었다. 하지만 MZ세대는 빚이 있어도 가능하면 대출을 더 일으켜 투자한다.

 

대기업에 다니는 윤모(35)씨도 이미 전세자금대출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초 아내와 함께 신용대출 수천만원을 더 받아 주식을 시작했다. 윤씨는 “단기간 목돈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무조건 돈을 불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 시기를 놓칠 수 없었다”면서 “대출이자가 저렴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 데다 그보다 많은 수익을 얻고 있어 다시 생각해도 잘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MZ세대의 과감한 빚투는 지난해 사상 최대 가계대출 증가에 기여했다.

 

한국은행 지난해 말 발표한 ‘2020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2030 청년층 가계대출은 전년 동기대비 8.5% 늘어 다른 연령층 증가율(6.5%)을 웃돌았다.

◆그림·운동화에도 투자… MZ세대 재테크 수단 된 ‘리셀’

 

MZ세대들은 과거 부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미술품 투자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누구나 돈만 있으면 가질 수 있는 데다 ‘짝퉁’이 판치는 명품 아이템에 비해 미술품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취향을 드러낼 수 있고, 잘만 하면 ‘리셀’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을 되파는 ‘아트테크’(아트+재테크)다.

 

스위스 바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미술장터인 ‘아트바젤’과 이를 후원하는 금융기업 UBS가 발표한 ‘2021 미술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중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 10개국에서 미술품을 구매한 자산 100만달러(약 11억원) 이상 수집가 2569명 중 52%는 밀레니얼 세대, 4%는 Z세대였다.

 

미술품보다 더 접근성이 쉬운 ‘리셀’ 아이템은 한정판 운동화다. 구매경쟁이 치열해서 그렇지 품목에 따라 구매만 해낸다면 1000%의 수익도 가능한 게 바로 ‘스니커테크’(스니커즈+테크)다. 이 때문에 불과 10년 전만 해도 운동화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던 스니커테크는 이제 MZ세대들의 대세 재테크 수단으로 떠올랐다.

한정판 운동화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리셀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코언앤드코’는 2019년 전 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을 20억달러 규모로 추산했는데, 2025년에는 60억달러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MZ세대에게 저렴한 한정판 운동화는 10만원대의 돈만 있으면 구매할 수 있어 그야말로 ‘하이 리턴, 로 리스크’의 재테크로 통한다. 스니커테크를 부업으로 한 달 평균 200만원대의 수익을 올린다는 직장인 이모(36)씨는 “주식이나 가상화폐는 위험성이 상당히 있지만, 신발 리셀은 못해도 원가 처분은 가능하기 때문에 가장 안정적인 재테크 수단이라 자부한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과 강남 일대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MZ세대 재테크도 목적은 내집 마련·은퇴자금

 

2030세대의 궁극적인 재테크 목적은 무엇일까. 많은 돈을 벌어 일찍 은퇴하는 이른바 ‘파이어족’을 희망하는 사람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내집 마련과 은퇴자산 축적 두 가지로 나타났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가 전국 25∼39세 남녀 7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복수응답)한 결과 이들 세대가 꼽는 재테크 이유로는 주택구입 재원 마련(61%)과 은퇴자산 축적(50%)이었다.

 

다양한 방식으로 과감히 투자하는 MZ세대 재테크 성공담은 이제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모든 MZ세대가 그런 것은 아니다. 큰 기회에는 큰 위험이 따른다. 여윳돈이 많지 않아도 꼼꼼히 분석하고 투자해 돈을 불려가는 청년이 있는 반면,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불법 주식리딩방에 가입하고 무리하게 ‘빚투’를 하다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큰 손실을 본 사례도 적지 않다.

 

서민금융진흥원의 한 상담 관계자는 “10만원, 20만원쯤은 아무렇지 않게 결제하고 빌리다가 불법대출에 손을 대 사회생활도 시작하기 전에 큰 빚을 지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면서 “장기적으로 보면 큰 손해이며, 그 규모가 늘어나면 감당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청년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0년 전 국민 금융 이해력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국내 성인의 금융 이해력 점수는 66.8점이었으나, 29세 이하 청년층의 금융 이해력은 64.7점으로 60대(65.8점)보다 낮았다.

◆ 직장서 당당히 내 몫 요구… 기업문화도 바꾼다

 

“동종업계 대비 월급이 야박하다는 불만이 나오는데, 높은 분들은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를 위해서 함께 노력하자는 말을 하니 답답하죠.”

 

대기업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직장인 김모(32)씨는 다른 회사로 이직이나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4년 전 능력을 인정받아 중견기업에서 연봉이 높은 현재 회사로 옮겼지만, 김씨가 생각하는 회사 분위기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실질적으로 일하는 시간을 환산하면 월급이 전혀 많은 수준이 아니라”며 “지방으로 출장 가기 위해서 새벽 6시부터 출근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주말에도 고객들이 수시로 걸어오는 전화를 감당하느라 내 삶이 없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차장이나 부장들은 ‘나 때는 그 정도는 다 했다’고 말하는데 전혀 공감되지 않는다”며 “열정을 명분으로 노동을 ‘착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럴 바에야 돈을 적게 받더라도 내 일상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 일을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MZ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면서 기업문화를 바꾸고 있다. 수직적 조직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거침이 없다. 이들은 소위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고, 공정과 평등에 민감하다 보니 회사 관행이 조금이라도 불공정하다고 생각되면 개선을 요구하거나 미련없이 그만둔다. MZ세대의 이 같은 특징은 최근 성과급·임금 논란과 사무직 노조 설립 등에 반영됐다.

 

19일 재계 등에 따르면 SK하이닉스에서 불거진 ‘성과급 논란’은 대기업 전반으로 확산했다.

 

지난 1월 SK하이닉스 입사 4년차 직원이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전 구성원에게 공개적으로 ‘성과급 지급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항의 이메일을 보낸 것이 시초였다. LG전자에서는 사무직 직원들을 중심으로 동일업종 대비 낮은 연봉을 두고 익명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불만이 커졌고, 결국 사무직 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다.

 

최근 현대자동차그룹에서 사무·연구직 직원들이 주축이 돼 노조 설립을 검토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재직 기간이 8년 미만인 젊은 직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타이어도 지난 7일 사무직 노조를 설립했다. 공정한 성과 측정과 보상을 요구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그간 생산직이 주축이 된 임금 및 단체협약에 젊은 직원들의 요구 사항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불만이 쌓인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서는 경영 일선에 MZ세대의 문화를 반영하려는 움직임 뚜렷하다. 주요 기업 구성원의 대다수가 MZ세대로, 이들과 소통이 곧 기업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3월 사내 직원들과 격 없이 얘기를 나누는 타운홀 미팅을 가졌다. 그룹의 현안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SK하이닉스에서 불거진 성과급 논란 당시에도 회사는 내부소통 강화를 약속하고, 성과급 체계 개편에 신속하게 착수했다. 현대오일뱅크와 LG유플러스 등 주요 기업들은 ‘리버스멘토링’을 도입했다. 리버스 멘토링은 MZ세대인 젊은 직원들이 임원들의 멘토가 돼 소통하고 문화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세대 명칭만 붙일 게 아니라 ‘진짜 문제’ 해결에 역량을”

 

“20대의 특징을 하나로 단정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연령대에 따라 20대가 하나의 집단으로 묶일 순 있겠지만 사람마다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고 여러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단순히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묶어서 규정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20세 대학생 김서하씨)

 

”성급한 일반화는 조심해야 하는 것 같아요. 소위 밀레니얼 세대는 디지털에 친숙하고, 개인의 이익과 행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평가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개인도 분명 존재하니깐요. 매번 세대별 잣대로 개인을 구분 짓고 평가하는 건 주의해야 한다고 봐요.”(26세 취업준비생 박모씨)

 

이는 ‘MZ세대’라는 또 하나의 세대론을 경계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다. 최근 정치권과 시장이 일제히 공정, 젠더, 합리성, 스몰럭셔리(비교적 작은 제품으로 사치를 부리는 것), 공유문화 등 특성을 뭉뚱그려 MZ세대를 호명하고 있는 가운데 거창한 세대론 속에서 정작 청년 개개인이 소외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단순히 MZ세대라는 이름으로 청년을 선동하거나 갈등을 조장하는 데 치중할 것이 아니라 세대론 너머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청년세대는 ‘하나’가 아니다

 

실제 많은 청년이 본인 세대를 단일한 집단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특히 사회경제적으로 심각한 격차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서울 청년 10명 중 7명 이상이 자산·고용·주거 부문에서 청년세대 내부 불평등이 심각하다고 본다는 조사결과가 최근 나오기도 했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7월 서울에 거주하는 만 20∼39세 청년 1000명 대상으로 진행한 ‘서울 청년 불평등 인식 조사’에 따르면 청년세대 내부 자산 불평등과 관련해 ‘심각하다’(매우 심각하다+약간 심각하다)고 답한 비율은 78.8%나 됐다. 고용 불평등의 경우 71.8%, 주거는 71.0%였다. 소득 또한 69.1%로 70%에 근접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대개 이런 세대 내 불평등이 지난 10년간 더욱 심각해졌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년간 청년세대 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했다고 인식하는 비율이 75.2%였다. 이런 생각은 남성(69.7%)보다 여성(80.5%)이, 20대(73.1%)보다 30대(77.2%)가 더 많이 하는 모습이었다. 

 

앞으로 10년간도 청년세대 내 불평등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80% 가까운 77.1%가 향후 10년간 청년세대 내부의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남성(71.3%)보다 여성(82.7%)이, 20대(74.5%)보다 30대(79.6%)가 더 많이 이같이 인식하고 있었다.

◆MZ세대라는 ‘과제’

 

MZ세대는 청년세대의 ‘첫 이름’이 아니다. 88만원세대(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는 세대), 삼포세대(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는 세대), N포세대(취업이나 결혼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하는 세대), G세대(1988년 서울올림픽 전후로 태어나 국제 감각을 갖추고 자라난 세대) 등이 MZ세대 이전에 있었다. 

 

이들 중 88만원세대, 삼포세대, N포세대는 청년세대가 기성세대와 비교할 때 이전보다 더 심각한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인식에 기반해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이런 식으로 심화하는 ‘세대 간 불평등’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학술저널 ‘한국사회학’에 게재된 논문 ‘세대 불평등은 증가하였는가? 세대 내, 세대 간 불평등 변화 요인 분석’(김창환·김태호)에 따르면 1999∼2019년 가계동향조사를 개인 단위 노동시장 소득 자료로 전환해 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끼치는 세대 간 소득 격차 효과를 분석한 결과 세대 간 불평등이 증가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연구진은 “25∼59세 핵심노동인구를 분석 대상으로 제한하면 노동시장에서 세대 간 불평등은 증가하지 않는다”며 “전체노동인구를 대상으로 분석할 때 나타나는 세대 간 불평등의 증가는 연령의 분포효과 때문이지 연령층 간 소득격차가 확대됐기 때문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언뜻 증가한 듯 보이는 세대 간 불평등은 고령인구 증가에 따른 착시라는 설명이다. 

현실에 발 딛지 못한 담론은 그저 소비될 뿐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없다. 청년세대 담론을 분석한 논문 ‘한국 언론과 세대론 전쟁’(방희경·유수미)의 연구진은 “88만원 세대론과 삼포세대론은 ‘잉여’, ‘루저’, ‘찌질이’ 등 용어들과 엮이면서 절망의 시대를 표현하는 자조 섞인 명칭으로 사용된다”며 “특히 삼포세대론에서 불안과 공포만이 느껴지는 건 국가정책의 방향과 비전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구체성과 체계성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MZ세대 담론의 경우 특히 젠더 문제를 중심으로 정치권 이해에 따라 대안 없이 소비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평가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20대 남성과 여성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정치권이 서로 대립하게 하고 있다”며 “일부 정치인이 ‘여성주의에 오류가 있다’는 식으로 단정적인 결론을 내버리니까 싸움만 난다”고 말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20대 남성은 군대 문제 등으로 분노하고, 20대 여성은 스토킹이나 강력 사건으로 위협을 느낀다”며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 사회는 특정 성별에게 화살을 돌려 이대남과 이대녀가 싸우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MZ세대를 단순히 청년세대를 부르는 이름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새로운 도전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목소리를,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문제 제기로 인식하고 그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년에게 사회문제 해결의 기회 줘라”

 

“청년 세대담론의 가장 큰 문제는 청년들을 단순화된 특징으로 묶어 이름 붙이는 그 단계에서 논의가 끝난다는 점입니다. 근본 해결을 모색해야 세대를 분석하는 의미가 있는 건데 아직도 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수없이 많은 명칭을 붙여 이용할 뿐 진짜 문제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2019년 책 ‘청년팔이 사회’를 쓴 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은 19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MZ세대’를 비롯해 2030청년들을 부르는 세대화된 명칭이 범람하는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세대담론 그 자체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것이 오히려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객관화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김 연구원은 “실제로 현상이 있어서 명칭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명칭이나 설명 먼저 듣고 그 편견과 일부 맞는 부분이 보이면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믿게 되는 경우도 많다. 청년 세대론도 마찬가지”라며 세대담론의 명칭이 청년들에 대한 편견을 고착화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2030세대에 특정한 명칭을 붙이는 것보다 그들의 현재 상황을 야기한 진짜 문제 요인을 찾아 해결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대담론은 불쌍함, 좌절, 불공정에 대한 분노 등 감정적 차원에 머물러 정작 이성적 해결책을 찾는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테면 ‘88만원 세대’라는 명칭이 유행하면, 청년 수입이 낮아 불쌍하니까 돈 얼마를 쥐여주는 게 아니라 노동시장의 문제와 한국의 튼튼하지 못한 사회 안전망 등 근본 원인을 찾아 해결하려는 논의로 이어져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김 연구원은 과도하게 많이 생산된 청년 세대담론이 부정적 편견을 재생산해 갈등을 부추기는 측면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근에 이대남·이대녀 등의 이름을 붙이고 젠더 갈등이 심각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대남은 다 안티페미니스트고 이대녀는 다 페미니스트’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자체가 두 집단의 차이를 과장하고 왜곡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어떤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반응과 생각에는 여러 층위가 있는데 특정한 세대로 이름 붙여지면 개인별 차이는 무시된다. 어떤 특징을 청년들만의 문제로 치부하는 건 부정적 편견을 강화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청년 세대담론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배경으로 청년이 대상화된 현실을 꼽았다. 그는 “청년이라고 뭉뚱그려지는 사람들이 사회의 주체가 아닌 분석대상이고 사회적 발언권이 약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분석해 명칭을 붙여도 사회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유행하는 듯하다”며 “물론 다른 연령대에 대한 세대화도 있지만 청년들이 유독 쉽게 한 집단으로 묶이고 대상화되는 건 변론 기회도 없고 발언권이나 제도적 보완을 할 주체적 권한도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청년 세대담론의 한계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청년을 사회문제에 더 참여시키고 더 많이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년 정치·청년 참여 같은 얘기를 많이 하지만 정작 이들에게 부동산 정책 등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할지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이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불쌍한 세대’라며 이름 붙이기만 반복할 게 아니라 청년들이 객관적으로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의견을 더 말할 수 있게 해야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지혜·이종민·구현모·김병관·이정한·김주영·김준영·남정훈·김희원·김범수·남혜정·김승환·박지원·장한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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