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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보다 못사는 최초 세대”… ‘노오력의 배신’에 절망 [‘변화의 중심’ MZ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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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4-18 23:00:00 수정 : 2021-04-18 22: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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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불공정에 분노하는 세대

‘개천용’ 기회 박탈 절망 청년, 공정에 매달리다

2020년 SNS 등 ‘공정’ 언급 157만건
조국·LH 등 불공정 이슈 때 폭발
14%만 “노력 따른 정당 대가 받아”
무한 경쟁 속 ‘젠더 갈등’ 비화도

온라인 ‘공정’ 키워드 2018년 86만건
2020년엔 하루 4300건… 80% 이상 급증

여성들 고용·임금 등 성차별 구조 비판
남성들은 취업·군대 부담… 역차별 성토

인국공 사태 등 ‘절차적 공정’ 몰두 논란
전문가 “진정한 공정은 소수자 우대”

“양극화나 불평등은 당장 해결할 수 없잖아요. 제발 ‘공정’만이라도 지켜달라는 거죠.”

 

취업준비생 조성준(28)씨에게 공정은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앞으로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아직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는 일찌감치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이제는 옛이야기로만 느껴질 뿐이다. 그는 “예전엔 성실하게 회사 다니며 월급 모으면 집을 살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20∼30년 동안 일해도 내 집을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최근 불거졌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 같은 불공정 사태에 큰 박탈감을 느끼는 이유다.

 

김정석(28)씨에게도 공정은 중요한 가치다. 그는 “지금 사회는 ‘계층 이동 사다리’가 사실상 붕괴됐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과거에는 다소 불공정한 일이 있어도 다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회 위치에 대한 불안감이 적었는데 지금은 계층 유동성이 무너졌잖아요. 차선으로 공정에 매달리게 된 것 같습니다.”

 

공정, 젠더, 합리성, 스몰럭셔리, 공유 문화…. ‘MZ 세대’를 표현하는 단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합친 MZ세대는 최근 사회문화는 물론 정치 지형에까지 충격파를 던지며 사회의 중심에 섰다. 디지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익숙한, 이전 세대와는 다른 ‘DNA’를 가진 이들이 몰려오면서 한국 사회는 또 한번 급변의 기로에 놓였다. 사회·경제 연구소에서는 이들을 분석한 보고서가 쏟아지고 있다. MZ세대는 이전 세대와 어떻게 다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 세계일보는 3회에 걸쳐 이들에 대해 분석해봤다.

 

◆MZ세대 “우리 사회는 불공정”…공정은 ‘기본권’

 

공정은 MZ세대를 대표하는 핵심 가치다. 18일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SNS와 포털사이트 등에서 ‘공정’이 언급된 횟수는 총 157만1036건에 달한다. 2018년(86만4442건)보다 80% 이상 급증한 수치로, 공정을 논하는 게시물이 하루 평균 4300여건 올라온다는 의미다. SNS의 주된 사용자인 MZ세대에게 공정이 하나의 화두로 자리 잡았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MZ세대가 한국사회의 불공정에 좌절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7월 서울에 거주하는 20∼39세 청년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우리 사회는 노력에 따른 공정한 대가가 제공되고 있다’는 문항에 동의한 응답자는 14.3%에 불과했다.

 

실제 SNS 등에서 공정 언급량이 급증한 시기는 사회에서 불공정 이슈가 불거진 시점과 일치한다. LH 사태가 불거진 지난달 ‘공정’ 언급량은 10만3209건으로, 전달(5만7127건)보다 2배가량 늘었다. 최근 3년 사이에 ‘공정’이 가장 많이 언급된 달은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한 2019년 9월(28만7591건)이었다. 임명 당일(9월9일) 하루에만 2만9379건 등장했다.

 

불공정한 사회에서 최소한의 기회조차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청년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취업준비생 박모(26)씨는 “MZ세대는 부모보다 못 사는 최초의 세대”라면서 “빈부 격차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절망감이 청년들을 불안하게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 김모(28)씨는 “능력에 맞게 성과를 얻고, 실력으로 승부하는 사회가 돼야 하지만 현실은 소수만 특권을 행사하고, 다수는 기회를 박탈당한다”고 토로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과)는 “열심히 노력하면 결실을 얻어야 하는데 시스템 격차가 너무 커져서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커졌다”며 “MZ세대는 노력에 따른 보상 체제가 갖춰진다면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조차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성도, 남성도 “성차별 받고 있다”

 

공정에 대한 열망은 젠더 갈등으로도 이어진다. MZ세대 여성들은 최근 수년간 불거진 젠더 이슈를 통해 성차별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왔다. 반면 남성들은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인정하면서도 제도적 지원이 여성에 집중된다며 ‘역차별론’을 펴기도 한다.

 

여성 박모(26)씨는 “‘n번방’ 사건은 나와 지인도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젠더 이슈가 추상적 담론이 아닌 우리 세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인식했다”며 “성평등 의식이 전과 달라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것 같다”고 말했다. 신은비(23)씨도 “고용이나 임금에서도 성별 격차가 해소되지 않아 가정과 일터 모두 여성에게 불리한 구조라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남성들은 오히려 정부 정책에서 청년 남성이 배제된다고 말한다. 남성 강모(27)씨는 “우리를 과도하게 차별하는 주체로 몰아가고 잠재적 피의자 취급하는 것 같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김모(28)씨도 “고용 등에서 여성 비율을 할당하는 경우가 늘었는데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남자든 여자든 학교에서 똑같이 교육받고 실력을 기를 수 있는 시대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런 인식은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청년의 생애과정에 대한 성인지적 분석과 미래 전망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여성 비율은 74.6에 달했지만, 남성은 18.6에 그쳤다. 우리 사회가 남성에게 불평등하다고 생각하는 비율 역시 남성 51.7, 여성 7.7로 극과 극이었다. 각자 자신의 성별이 불평등에 시달린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과)는 정치권의 탓이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가 ‘여성우대정책’이란 단어를 남발해서 남성들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우대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성 입장에서는 실체가 없다”며 “여성들은 현실에서 바뀌는 것이 없으니 분노하고, 남성들도 취업과 군대 등의 부담이 큰데 사회에서 계속 ‘여성 우대’를 말하니 분노할 수밖에 없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정치권과 언론이 서로 대립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공정 만능론’은 경계해야… 자성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MZ세대가 협소한 의미의 공정만 강조해, 차별적 구조의 개선이나 사회적 연대는 간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대기업의 성과급 산정 기준 논란이나 지난해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에서 보듯 ‘절차적 공정’에 지나치게 몰두한다는 것이다. MZ세대 내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생 김서하(20)씨는 “모두가 같은 출발선에 서서 시작할 수 있게 만들어야 공정한 사회”라면서 “제대로 경쟁할 수 없는 약자에게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는 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과)는 “MZ세대가 말하는 공정성의 기반에는 능력주의가 있다”면서 “기성세대가 MZ세대의 문제 제기를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거나 각자도생하자는 식으로 극단적인 개인주의로 가게 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도 “진정한 의미의 공정은 소수자에 대한 우대인데 능력주의에 따른 차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공정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유지혜·이종민·구현모·김병관·이정한 기자 kee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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