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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사퇴로 끝난 문재인 정부 · 윤석열 검찰 '막장극'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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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3-06 07:00:00 수정 : 2021-03-06 10: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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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우리 윤 총장님은 권력형 비리에 대해 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자세로 엄정하게 처리해 국민들 희망을 받았다”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문재인 대통령, 2019년 7월25일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저는 이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정의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검찰에서 제가 할 일은 여기까지다.”(윤석열 전 총장, 2021년 3월4일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부를 만큼 최고 권력자의 각별한 애정과 기대를 안고 검찰 수장 자리에 올랐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임기(2년) 4개월여를 남기고 물러났다. 문 대통령은 윤 전 총장이 사의를 표명하자 지체 없이 수용했다. 

윤 전 총장이 문재인정부의 ‘검찰 황태자’에서 ‘역적’으로 내몰리는 과정은 한 편의 막장극 시리즈를 방불케 했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가뜩이나 코로나19 사태에다 아파트 등 부동산 매매값과 전월세비 폭등, 실업난 등으로 살기 팍팍한 마당에 정부 여당과 검찰은 소모적인 대립과 감정싸움 양상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 윤석열을 ‘검찰 황태자’로 만들어…‘적폐청산’ 위해 윤석열 사단 중용

 

당초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은 화기애애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후 2017년 5월 정권을 잡은 문 대통령은 당시 차장검사급에 불과했던 윤 전 총장을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으로 파격 승진 발탁했다. 윤 전 총장으로선 박근혜정부 시절 역린을 건드린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를 했다가 좌천당한 후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장으로 재기 발판을 마련했고, 문재인정부가 부활의 날개를 화려하게 달아준 셈이다. 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검찰개혁’이 핵심공약이었지만 ‘적폐청산’을 명목으로 오히려 검찰 특수통 칼잡이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른바 ‘윤석열 사단’은 여권의 기대에 한껏 부응했다. 과거 이명박·박근혜정부를 겨냥한 적폐 수사를 몰아붙이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사법처리했다. 문재인정권과 지지층은 환호했고 윤 전 총장의 공을 높이 사 문무일 검찰총장의 바통을 그에게 넘겨줬다. 전임 총장보다 5기수나 아래인 윤 전 총장을 발탁하고 “우리 윤 총장님”이라고 할 만큼 문 대통령은 각별한 애정을 표시했다. 민주당도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정의로운 검사”라거나 “검찰개혁의 적임자”라는 등의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 서 윤 전 총장을 지지하고, 윤 전 총장 장모와 아내 관련 의혹 등을 제기한 야당의 공세에서 윤 전 총장을 보호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윤 전 총장을 검찰총장 후보로 검증한 책임자가 조국 민정수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 면직안을 재가한 5일 서울 서초구 윤 전 총장 자택 앞에 지지자가 보낸 벚꽃 나무가 놓여 있다. 뉴스1

문 대통령은 임명과 동시에 검찰 인사의 전권을 윤 전 총장에게 주면서 한동훈 검사장 등 윤석열 사단 검사들을 요직에 중용했다. 

 

◆윤석열, ‘포스트 문재인’ 조국 수사 계기로 문재인 정권의 ‘역적’ 내몰려…‘과잉 수사’ 논란 자초도 

 

그러나 얼마 후 문 대통령이 조 수석을 새 법무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고 조 후보자 본인과 가족 관련 각종 도덕성 논란이나 비리 의혹이 잇따르면서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검찰 간 이상기류가 흘렀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칼잡이로 잘 알려진 윤 전 총장이 ‘포스트 문재인’으로까지 불리며 여권 지지층의 스타였던 조국을 정면으로 겨냥했기 때문이다. 윤 전 총장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대해서도 눈치보지 말고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대로 한 것인데 여권에선 이를 문 대통령에 대한 배신과 정권 흠집내기로 받아들였다. 조 전 장관이 자신과 가족을 둘러싼 각종 비위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항변할수록 윤 전 총장은 수사 강도를 더 높였다. ‘조로남불’(조국이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회자될 만큼 조 전 장관 일가의 비위 혐의가 컸다고 해도 특수통 정예 검사들을 무더기로 투입해 전방위로 뒤지고 먼지 하나까지 탈탈 턴 것은 정교하지 못한 ‘과잉 수사’로도 비쳐졌다.

5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 연합뉴스

이에 여권은 토사구팽하듯 윤석열을 버리고 조국 수호에 올인했다. 한껏 띄워줬던 윤 전 총장이 자기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순간 청문회 당시 자신들이 “전혀 문제될 게 없던 사안”이라고 했던 윤 전 총장 가족 의혹 등을 끄집어내 윤 전 총장 제거에 나섰다. 문 대통령이 윤 전 총장 임명 시 당부한 말은 정말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단순한 덕담이었던 것으로 비쳐질 정도였다. 이 과정에서 보수진영은 문 대통령과 대척점에 선 윤 전 총장을 지리멸렬한 보수 야권의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럴수록 민주당과 강성 여권 지지층은 윤 전 총장에게 십자포화를 퍼부었고, 야권 지지층은 윤 전 총장에게 환호를 보내면서 나라가 두 동강 날 지경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사퇴한 뒤 검찰 청사를 떠나며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민주당, 윤석열 상대 안 되는 조국 대신 추미애를 대타로 투입

 

윤 전 총장이 버티자 청와대와 민주당은 ‘조국으론 윤석열 상대가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조 전 장관을 내리고 막강한 대타를 내세웠다. 당 대표 출신의 추미애 카드를 내민 것이다. 웬만한 정치인보다 정치적 야망이 큰 추미애 전 장관은 법무부장관을 야망 실현의 도약대로 삼으려는 듯 인사권과 지휘권을 마구 휘두르며 윤 전 총장을 식물총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윤석열 사단 검사들을 대거 좌천시키고, 대검의 윤 전 총장 참모진과 서울중앙지검 등 검찰과 법무부 요직 대부분에 문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등 친정부 성향 검사들로 포진시킨 것이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의 친구인 울산시장의 선거에 청와대가 개입한 의혹과 월성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를 위한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권·언 유착’ 의혹 등 여권 비위 의혹 사건 수사도 제동이 걸리거나 지지부진했다. 추 전 장관은 마치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추진에 힘을 보탰던 ‘원죄’를 씻고 당을 장악한 친문(친문재인)계와 강성 친문 지지층의 지지를 노린 것처럼 보이는 행보를 밀어붙였다. 실제로 추 전 장관이 윤 전 총장을 찍어내려고 온갖 무리수를 둘 때마다 여권의 강성 지지층은 ‘추다르크’를 연호하며 힘을 실어줬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추미애,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징계 무리수 두다 낙마…피고인 황운하·최강욱, 검찰 수사권 폐지 추진

 

그래도 윤 전 총장이 버티면서 문재인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멈추지 않자 추 전 장관은 급기야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감찰 및 징계 사태까지 불사하며 윤 전 총장 제거에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번번이 절차적 정당성 등의 문제로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고, 결국 추 전 장관은 문 대통령에게 부담만 더 안긴 채 법무장관직을 내려놔야 했다. 이후 윤 전 총장은 권력 핵심부를 겨냥한 비리 의혹 수사를 직접 챙기며 속도를 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윤 전 총장과 검찰에 특히 적대적인 여권의 강경파 의원 중심으로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빼앗는 내용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법 제정이 추진됐다. 이를 주도한 민주당 황운하·김남국·김용민 의원과 열린민주당 최강욱 의원은 ‘친조국 인사’다. 특히 황 의원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의 피고인이고, 최 의원은 조 전 장관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를 발급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여기에 조국, 추미애 전 장관을 비롯해 강성 지지층이 중수청 설치를 압박하자 민주당 지도부까지 힘을 보탰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민주당, 문 대통령의 속도조절 주문·공수처장 등 각계 우려에도 중대범죄수사청 졸속 추진

 

문 대통령의 검찰개혁 핵심 공약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이 올해 처음 도입돼 제자리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형사사법시스템을 크게 흔들 수 있는 중수청 설치를 강행키로 한 것이다. 더욱이 국민의 공감대를 구할 노력도 하지 않고 문 대통령마저 속도조절을 주문하고 김진욱 공수처장 등 각계에서 졸속 추진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는데도 오로지 ‘검수완박’(검찰의 수사권 완전 박탈)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혹시나 윤 전 총장이 대권 도전에 나설까봐 이른바 ‘윤석열 출마 방지법’까지 추진할 태세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25일 청와대에서 윤석열 당시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여론전과 정치적 행보 서슴지 않아…여권 ‘정치 검사’ 비판

 

윤 전 총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중수청 반대를 지렛대로 노련한 정치인처럼 여론전을 펼치며 정치적 메시지와 행보를 서슴지 않았다. 역대 이런 검찰총장은 없었다. 윤 전 총장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세간에선 정치에 뛰어들어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여권은 윤 전 총장이 개인 영달을 위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완전히 팽개쳤다며 무책임한 정치 검사라고 맹비난했다. 어찌됐든 양 측의 장기간에 걸쳐 이전투구를 하느라 정작 검찰개혁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가고, 검찰 조직은 개혁되긴커녕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그나마 윤 전 총장의 사퇴로 권력과 검찰 간 막장극을 더 이상 안 볼 수 있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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