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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시선] 체육계 폭력과 파르테논 신전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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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2-16 22:57:30 수정 : 2021-02-16 22: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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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려 천사 아이들 악마가 돼
‘학생 선수는 선수 이전에 학생’이란 사실 인정을

이재영·이다영. 예쁘고 강한 선수였다. 쌍둥이 자매였고 국가대표였다. 주목받던 스타였고 여자배구를 인기 종목으로 끌어올린 주인공이었다. 가끔씩 팀 내부에서 불화설이 새어 나왔다. 그마저도 예쁘게 느껴졌다. 또래끼리 경쟁하는데 시샘이 없을까. ‘질투는 나의 본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엉뚱하게도 학교 폭력이었다. 분노를 샀고 무기한 출전 정지로 마무리됐다. 회복하기 힘들어 보인다. 어쨌든 우리는 이재영·이다영을 잃었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이들은 중학교 시절 동료 선수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피해자의 주장은 섬뜩하다. 칼로 위협했고 부모를 비하하기까지 했다. 잠시 생각해 보자. 폭력은 중학생 시절 발생했다. 14살에서 16살까지의 아이들 사이에서다. 한창 바르고 밝아야 하지 않은가.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이 군기를 잡겠다고 규율을 세우겠다고 스파이크가 빗나갔다고 토스가 부정확했다고 서로를 헐뜯으며 다그치는 일을 예사로 삼은 것이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악마라고 하자. 돈을 뜯고 행패를 부린 악마다. 그렇다면 악마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우리는 또 무엇을 했는가. 운동하는 아이들의 세계에서 지도자는 지도자였을 뿐인가. 지도자는 교육자가 될 수 없는가. 학생 선수는 선수일 뿐 학생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학생 선수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기술과 체력뿐인가.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했던 것인가. 가해자를 향한 비난은 이미 충분하다. 무기한 출전 정지면 징계도 충분하다. 우리는 이제 그 무엇인가를 냉정히 짚어봐야 한다. 그것은 악마를 대상화하는 일이 아니라 도대체 왜 천사 같은 아이들이 악마가 되어야 했는지 무엇이 이들을 악마로 만들었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완하고 진보하는 것이다.

스포츠에선 고대 그리스가 고전이다. 신체와 정신의 균형, 신을 닮은 인간의 신체 형상을 가다듬는 그리스적 인간상을 스포츠는 이상적 인간으로 모델화한다. 그러나 유럽중심주의인 헬레니즘의 영향으로 우리는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것은 아테네의 영광이 역설적으로 아테네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리스 문명을 상징하는 아테네는 기원전 5세기 지중해의 패권국가로 등장하며 팍스 아테니엔시스(Pax Atheniensis)를 완성했지만 아테네는 문명의 절정을 이룬 바로 그 순간 몰락의 길로 접어들며 역사에서 사라졌다. 아테네인들이 번영의 상징으로 파르테논 신전을 건축했지만 오히려 신전을 위해 쓰인 방만한 재정이 아테네의 몰락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파르테논 신전의 교훈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스포츠는 이미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고 영광의 순간을 지난 듯하다. 초중고는 물론 대학에서도 운동부는 급속하게 해체되고 있다. 운동선수 감소는 인구 감소 폭을 상회한다. 체육계는 인권과 공정성이라는 시민사회의 가치를 수용하지 못해 외부로부터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되돌아보면 10여 년 전이다. 2013년부터 체육계는 유례없는 개혁을 요구 받아왔다.

하지만 최근에도 ‘맷값 폭행’의 장본인이 아이스하키협회장으로 선출됐고 컬링연맹은 내분에 휩싸여 국가대표 ‘팀킴’은 자비로 훈련하는 동호인 팀으로 전락했다. 체육개혁이 현재도 요원하다는 뜻이다. 투명한 지배구조, 인권과 공정성의 확립, 폐쇄적 구조의 개방, 재정 자립 등 체육개혁의 어젠다와 과제는 수없이 반복돼 왔고 준비돼 왔다. 그럼에도 개혁은 왜 요원한가. 체육인들은 “우리를 흔들지 마라”고 주장한다. 체육계 내부에선 개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2021년 대한체육회장선거에서 현 이기흥 회장이 ‘체육인의 자존심’을 내걸고 당선된 사실에서도 재확인된다. 학교 폭력은 단순히 학교운동부 내부의 문제가 아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이는 한국체육 문화의 문제이고 체육의 정신세계 문제이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 우리 모두는 정답을 알고 있다. ‘학생 선수는 선수이기 이전에 학생이다.’ 이 간단한 명제를 체육인이 인정할 때 그때서야 학교 폭력은 근절될 수 있을 것이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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