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劍에 바친 청춘… 37년의 집념으로 ‘鐵의 역사’ 되살리다 [나의 삶 나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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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1-23 21:00:00 수정 : 2021-01-27 14: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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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전통제철 도검장’ 이은철
이은철 고대제철 기능전승자(도검장)는 일제강점기 때 명맥이 끊긴 우리 고유의 전통 철 제작방식을 복원한 장인이다. 직접 철광석을 제련하고 정련해 도검을 만든다. 삼한시대부터 이어져온 우리의 제철 기술을 계승하기 위해 전통제철문화박물관 건립을 꿈꾼다. 그의 작품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과 충북 음성 철박물관, 충남 부여 백제역사관 등에 전시돼 있다. 여주=이재문 기자

“한 해에 세 번 철을 뽑아 냅니다. 세계적 브랜드가 된 일본도를 만드는 장인들에게 먼저 공급하고 있어요. 이곳 타타라(제철소)에는 6세기 무렵 백제로부터 제철기술이 들어왔습니다. 지난 1500년 동안 백제의 기술 그대로 만들어진 철이 일본 전역에 공급됐는데, 이는 일본 문명과 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일본 시마네현 타타라의 제철장인 기하라 아키라(85)의 말이다.

손으로 도검을 만드는 기술은 본디 우리 선조가 지녔던 뛰어난 능력이었지만 국내에선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고, 일본으로 건너가 부흥한 지 오래다. 국내에는 현대식 제철소에서 제련된 특수강으로 칼과 검을 만드는 도검장(刀劍匠) 예닐곱 명이 있을 뿐이다. 특수강이 아닌, 전통방식으로 철을 제련하고 정련해 수공으로만 도검을 만들어 내는 이는 이은철(64)씨가 유일하다. 그를 단순한 ‘도검장’이 아닌 ‘전통제철 도검장’이라 부르는 이유다.

농가 주택을 작업장으로 개조해 쇠와 불을 다루며 37년째 외길을 걸어온 그를 만나러 경기도 여주를 찾았다. 한국전통철문화연구소 ‘대장간’ 문을 밀고 들어서자 머리에 수건을 질끈 동여맨 그가 손풀무로 바람을 넣어가며 숯불을 피우고 철을 제련해 내기 시작한다. 철광석에서 쇠를 뽑는 것을 제련, 그 쇠에서 이물질을 없애는 작업을 정련이라 한다.

“현대강은 코크스(cokes)로 제련하기 때문에 황과 인의 함유율이 전통강보다 열 배나 높습니다. 숯으로 녹여내는 전통철은 화학적으로 깨끗해서 녹이 더디게 슬어요. 전통철로 만든 칼에는 다양한 무늬들이 나타납니다. 현대강은 압연으로 빼내기 때문에 칼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생기지 않아 공예적 가치를 부여할 수 없어요.”

쇠를 두드려 길쭉하게 편 뒤 다시 접어 두드려 펴는 작업(접쇠)을 스무 번쯤 되풀이해 도검의 형태를 갖춘다. 이를 거치면 쇠 조직이 치밀해지면서 질기고 강해진다. 이물질도 배출돼 순수한 강철(백련강)만 남는다. 다음은 담금질. 도신(칼의 몸체)을 단단하게 만들고, 12단계의 숫돌 연마로 날을 세운다. 이때 철 조직과 담금질 흔적이 만든 문양(인문)이 드러난다. 도검을 아는 이들은 이 문양을 예술품으로 감상한다.

“칼날을 불빛에 비춰 보세요. 구름이 보이나요? 노을 같기도 하고 지평선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떻게 연마하느냐에 따라 소나무, 느티나무 같은 문양들이 나타나요. 지금은 일본의 명장들이 이 분야에선 독보적이죠. 우리가 백제 때 일본에 전수했던 이런 기막힌 칼 만드는 능력을 이제 되찾았어요. 차갑고 빛나기만 하는 현대 특수강으론 복원할 수 없습니다. 검 날에 발현된 무늬는 바로 우리 선조의 기상이자 혼백이에요.”

선굵게 확연히 드러나는 일본도의 문양보다 장검의 날부분 0.8㎜ 간격 안에 발현시키기가 더 힘들다. 일본 장인들도 그의 도검해 대해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운다.

충남 당진에서 유년기를 보낸 그는 일곱 살 때부터 외양간에서 쇠죽을 끓이고 남은 숯으로 쇠못을 달궈 망치로 두들기며 놀았다. 그가 쇠의 성질을 잘 아는 이유다. 그와 전통철의 운명적 만남은 1984년에 다가왔다. 당시 이종석 문화재전문위원이 ‘계간미술’에 쓴 글 ‘비법을 잃고 장구화한 장도’를 읽은 뒤 전통제철 방식으로 검을 만드는 일에 일생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화가를 꿈꾸던 20대 때였죠, ‘외국인들이 은장도를 많이 찾아 은장도를 만드는 장인은 있는데, 그 쇠를 철광석에서 추출하는 기술은 모두 사라졌다’고 한탄하는 글이었어요. 순간 뭔가가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도검이나 철 분야와 아무런 인연이 없었지만 이후 10년 동안 낮에는 철을 다루는 공장에 다니면서 밤에는 관련 책을 봤어요. 공대생이던 동생이 책을 많이 구해줬고요, 아내는 일본어를 모르던 나를 위해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다 자신감이 붙자, 2001년 용광로를 만들어 철광석을 녹여 얻은 쇠로 칼을 만들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2004년 마침내 그는 국내에서 사라지고 없었던 전통제련방식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 일제강점기 때 명맥이 끊긴 우리 고유의 전통 철 제작방식을 복원한 것이다. 쇠에 미쳐 부상을 마다하지 않고 생계조차 팽개친 채 집념으로 매달린 지 20년 걸려 이룬 ‘장한 일’이었다.

그는 여러 매체를 통해 ‘칼 만드는 사람’으로 알려지곤 했는데 사실 ‘전통철 만드는 사람’이 더 가까운 표현이다. 굳이 도검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예로부터 당대 첨단 기술은 무기에 적용했어요. 농기구는 강함이나 견고함에서 도검 등에 밀립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강하면서 부러지지 않는 쇠로 무기를 만들어야 했을 테죠. 칼과 검은 철이 낳은 최고의 예술품입니다. 전통 제철기술의 핵심이 담겨 있어요. 이를 재현하기 위해 도검을 연구하고 만듭니다.”

한반도에서는 기원전 4세기부터 철기를 사용했다. 삼한시대의 변한이나 가야 등은 우수한 철기를 생산해 일본 등 주변국에 수출했다. 일본의 국보 15호 칠지도(七支刀)는 백제가 야마토국에 하사한 보검이다. 일본 나라현 덴리시(天理市) 이소노카미 신궁(石上神宮)에 전해져 오는 철제 검이다.

“칠지도 외에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된 ‘칠성검’과 ‘병자초림검’ 그리고 ‘일월호신검’ ‘병모괴림검’ ‘파적검’ 등의 보검들이 함께 전해졌어요. 일본 장인들이 경배하고 칭송합니다. 이들 보검에 대해서만이라도 국내 학자나 전문가들이 관심을 가져야 해요. 특히 백제사를 연구하는 학도들이 나서주길 바랍니다. 저는 이 보검들을 복원해서 관심을 이끌어낼 겁니다. 병모괴림검의 경우는 실체가 사라졌지만 일본의 ‘본조군기고’에 그림이 남아 있어요.”

그는 이 대목에서 보다 결연해지며 또렷하게 말을 잇는다.

“일본의 우파들은 ‘칠지도’까지 왜곡합니다. 오히려 일본이 한반도에 전한 신검이라는 거죠. 또는 단조가 아닌 주조로 만들어졌다며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우리도 기술을 갖췄기 때문에 반박하고 바로잡아야 해요. 장인과 학자가 한뜻으로 하나되어 복원에 나설 때입니다. 단순한 복원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학술적으로도 정리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전통제철복원연구단에서 활동 중인 그는 “동아시아 고대 철문화 비교는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일본이 고대 철의 역사마저 뒤바꾸고 있는데, 칼 문화에 대한 원조싸움은 동북아의 소리없는 전쟁”이라고 경고한다.

이제는 후계자가 중요하다. 수익이 없다 보니 버티지 못하고 떠나가 버린다. 우리 것을 복원하는 일은 개인이 유지하기엔 한계가 있다. 관계 기관과 기업, 지자체 등이 나서서 계승을 도와야 한다.

“제 스스로가 적이다고 경계하며 살아왔습니다. 외부의 적은 일본에 있어요. 국내 유일이기 때문이죠. 일본엔 국보급 장인 10여명과 300여명의 고수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경쟁자인 거죠. 장인은 끝없이 작품의 격을 높여 나가야 하는데 꾸준한 연마만이 답이에요. 그런데 슬슬 나이가 부담됩니다. 보통 20∼30년 걸려야 이룰 수 있어요.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전수할 수 있는 아카데미 시스템을 갖추겠습니다. 고대사에서 철기문화는 중국 유입설에 대한 부담이 없어요. 한반도에서 자생해 크게 융성했습니다. 제철소도 많았고 일본에도 전승했어요. 위대한 한반도 철기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품은 채 이를 계승할 청년들을 기다립니다.”

 

여주=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이은철 도검장은… ●1957년 충남 당진생 ●1984년 철 공예기술 입문 ●1986년 고대제철, 전통도검 연구 시작 ●2000∼2015년 김해 가야시대 고대제철 시연 ●2008년 겨레과학 응용개발사업(국립중앙과학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2009∼2011년 칠지도 제작연구 ●2014~2017년 한국연구재단 제철 복원연구 ●2014~2019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백제제철 연구 자문위원 ●2016~2021년 조선시대 울산쇠부리 복원연구사업 ●김해 가야문화축제, 울산 쇠부리축제, 고령 대가야축제, 공주 대백제전, 여주 세종문화제 제철시연 ●여주시립박물관 특별기획전 ‘여주의 도검장전’ ●한국철문화연구회 특별회원 ●대한민국 고유 기능전승자(고대제철, 노동부) ●울산 북구 명예구민 1호 ●경기으뜸이 선정 ●한국전통야철문화연구소 대표 ●한국백련도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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