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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수치심… ‘레깅스 몰카’ 범죄 맞다”

입력 : 2021-01-07 06:00:00 수정 : 2021-01-06 21: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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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원심 파기환송… ‘성적 자유’ 의미 구체화 첫 판시
1심 성범죄 유죄… 항소심선 무죄
“노출을 성적대상기준 삼아선 안돼
타인의사 반해 촬영할 권한 없어”
법조계 “자기결정권 인정 판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2018년 5월 밤중에 버스에서 내리려던 여성 A씨는 문득 이상한 느낌을 받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화들짝 놀랐다. 출입문 맞은편에 있던 남성 B씨의 스마트폰 카메라가 자신을 향해 있음을 알아챈 것.

“저기요, 휴대전화 좀 보여주세요.” “내려서 바로 지울게요. 한번만 봐 주세요.”


화가 난 A씨의 말에 곧바로 촬영 사실을 인정하고 용서를 빈 B씨. 그러나 그는 불법 촬영 현행범으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8초가량 A씨 하반신을 찍은 사실이 탄로난 이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피해자의 얼굴이 예쁘고, 전반적인 몸매도 예뻐 보여서 촬영했다”고 털어놨다.

그 이후 B씨는 어떻게 됐을까. 몰카 범죄자가 붙잡힌 단순 사건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이 사건을 두고 법원 판단은 제각각이었다. 1심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B씨의 죄를 인정하고 벌금 70만원과 24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명령을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몰래 촬영이 피해자에게 불쾌감을 유발한 것은 분명하지만 성적 수치심을 줬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당시 입고 있던 검은색 레깅스가 일상복으로 활용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레깅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 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피해 여성은 당시 엉덩이 위까지 내려오는 헐렁한 운동복 상의와 검은색 레깅스 하의를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외부로 직접 노출되는 부위는 목과 손, 발목이 전부였다.

이 ‘레깅스 몰카 사건’은 우리 사회에 ‘그렇다면 몰카 성범죄가 과연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대법원은 “자기 의사에 반해 이뤄진다면 범죄가 맞다”는 대답을 내놨다. 그동안 모호하게 여겨지던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야 된다는 취지로, 향후 법원의 성범죄 판결에 작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B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죄 취지로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신체 일부를 드러냈더라도 다른 사람이 이를 함부로 촬영할 권한은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레깅스를 입어 둔부와 허벅지의 굴곡이 드러나는 경우에도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즉, 몰카 성범죄 대상을 반드시 ‘노출된 신체’로 한정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일상복과 다름없는 레깅스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선 이번 판결이 ‘성적 수치심’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시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본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와 달리 “기분이 더럽고,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나, 왜 사나 하는 생각을 했다”는 피해자 진술도 성적 수치심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성적 수치심이 비단 부끄럽고 창피한 감정만이 아님을 확인한 셈이다.

장다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범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사회적 잣대가 아닌 ‘자기의사에 반해 이뤄지는 행위’에 두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성적 자기결정권은 헌법상 행복추구권에 기초한 자기운명결정권에 근거해서 나온 것인데, ‘의사에 반하는 행위’의 본질적 의미를 법원이 보다 구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몰카 범죄의 보호법익인 ‘성적 자유’를 ‘자기 의사에 반하여 성적 대상화가 되지 않을 자유’라고 구체화한 최초의 판시”라고 강조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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