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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벌어 사는데 소득감소 증명하라니…” 위기가구의 눈물 [심층기획-긴급생계지원금 실효성 논란]

입력 : 2020-12-01 06:00:00 수정 : 2020-12-01 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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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위소득 75% 이하 저소득 가구 지원
‘소득 25% 이상 급감’ 증빙 까다로워
초기 신청률 10%대… 3차례 기간 연장

소득 단 1원만 줄어도 받게 기준 완화
증빙 절차도 통장·자술서만으로 ‘OK’
정부, 지자체들에 “대상 발굴” 독촉까지

공무원, 인력시장·노점상 찾아 신청 독려
신청률 전남 133% 서울 49% ‘들쭉날쭉’
“선별지급 시스템 미비, 사각지대 야기”

#1. 대구 서구 한 재래시장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모(64)씨는 지난 10월 27일 정부의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금’(2차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러 동 주민센터를 찾았다가 아쉬움만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기준 중위소득 40% 이하로 기초생활보장제 의료급여 대상자에 해당하지만, 지원금 지급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소득이 25% 이상 감소했다는 증빙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우리 같은 노점상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월별 매출이나 이런 건 잘 집계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신청 기준이 완화된 지난 13일 동 주민센터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신청을 마쳤다.

 

#2. 부산 동래구에서 일용직 근로자로 일하는 최모(59)씨는 지난 10월 30일 해당 사업장 대표의 허위 소득신고로 소득감소를 증명할 수 없게 되자 결국 긴급생계지원금 신청을 포기했다. 이후 그는 최근 동 주민주민센터 직원의 설명을 듣고 근로복지공단에 소득정정 신고를 요청해 지원금 신청을 완료했다. 최씨는 “일부에서 사회보험 미가입 등 불법적인 사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주를 보호하기 위해 실제 소득이 감소했더라도 신청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귀띔했다.

 

◆뒤늦게 ‘부랴부랴’ 기한 늦추고 보완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득이 감소한 저소득 위기가구에 지급하는 정부의 ‘위기가구 긴급생계지원금’을 놓고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소득 감소 25%’라는 모호한 기준에다, 은행 대출보다 복잡한 증빙 절차, 홍보 부족 등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서둘러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30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부는 예산 3509억여원을 들여 애초 코로나19로 소득이 25% 이상 감소했거나, 소득이 기준 중위소득 75% 이하인 약 55만가구(전체 가구의 3%)에 생계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지원금액은 40만원(1인가구)에서 최대 100만원(4인가구 이상)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 지원자, 긴급복지 대상자, 긴급고용안정지원금 등 8가지 정부 코로나19 맞춤형 지원사업 자금을 받은 사람은 제외된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0월 19일부터 30일까지 지원금 신청을 받았다. 하지만 신청률이 전국에서 10% 대로 저조해지자 지원 대상 기준을 대폭 완화하고, 신청 마감 기한을 이달 6일까지 늦추는 등 보완책을 마련했다. 정부는 기존 소득이 25% 이하로 감소한 가구도 지원금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고, 국세청 발행 소득증빙서류 외에 통장 거래명세서나 신청인이 작성한 소득감소 신고서도 증빙자료로 제출할 수 있게 했다. 충남의 경우 중위소득 75% 이하 가구 중 7~9월 소득이 올해 상반기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단 ‘1원’이라도 줄었으면 신청을 모두 받았다.

 

이후 보건복지부가 지난 7~20일, 21~30일 등 세 차례 신청 기간을 연장하면서 신청률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예산 부처에서 25%로 기준을 정해 신청 대상이 많이 축소한 데다 긴급생계지원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저소득층 가정이 많아 초기 신청률이 낮았다”고 설명했다.

◆‘할당량 채워라’… 신청률 지역별 천차만별

 

지원금 신청이 접수 초기 예상보다 저조해지자, 정부가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에 대상 발굴을 독려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경북은 대상자 발굴을 위해 위기가구 생계지원팀과 23개 시·군에 전담팀을 꾸린 데 이어 경기 수원은 지역 이·통장을 활용해 ‘찾아가는 서비스’를 고안했다. 부산은 시장 상인회와 직업소개소, 아파트단지 등에 홍보 전단을 배부하고, 취업정보센터 구직 등록자를 대상으로 안내 문자를 발송했다. 자술서 형식으로 소득 감소 증빙 서류가 느슨해지면서 충북, 전북, 경북 등 농촌지역은 개인별 문자메시지 발송과 마을 방송을 통해 농민들을 불러 모아 지원금 신청을 안내하기도 했다. 신청 독려 공무원들은 추후 결격 사유가 나올 가능성도 크지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관련 부서도 아닌데 요즘 영업사원이 된 기분"이라며 “실적을 채우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이나 노점상은 물론 친·인척이나 지인까지 동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원금 신청 접수 시작 후 한 달가량 더 기간을 연장하고 나서야 전국 평균 신청률이 70%를 넘었다. 전국 광역 지자체에 따르면 전남은 애초 신청대상을 3만8093가구로 추정했으나, 25일 기준 5만669가구(133%)가 신청해 목표 가구를 초과했다. 경북(108%), 전북(108%)도 비슷하다. 반면, 서울(49.5%), 대전(46%), 인천(41%)은 목표 가구의 절반도 넘지 못했다. 경북도 관계자는 “신청 대상자 기준이 완화돼 영세상인이나 자영업자가 많은 도시보다는 종사자가 많은 농·축·수산업 가구 위주로 소득이 줄어든 대상자를 포함하니 신청률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2~5월 코로나19로 가장 피해를 본 대구는 애초 신청대상을 2만7456가구로 추정했으나, 76.9% 수준인 2만1117가구가 신청했다.

서울 성동구 성수1가 제1동 주민센터 긴급생계지원금 현장 접수처

◆소득 ‘’감소 시점 따라 사각지대 발생 불가피

 

정부는 코로나19 재확산 시기에 소득과 매출이 급감한 것을 증빙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지원 대상과 금액을 정한다는 방침을 정한 가운데, 사각지대가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대비 매출 감소를 기준으로 하면 코로나19 유행 이후 창업한 자영업자는 지원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매출 감소 비율에 따른 선별지급 시 지난해 연 매출이 1억원이었으나 올해 1000만원만 벌게 된 경우와 매출이 지난해 5000만원에서 올해 500만원으로 줄어든 경우를 똑같이 지원하는 게 맞느냐는 형평성 논란도 나올 수 있다. 현금 거래가 많은 자영업자는 정부가 매출 감소를 기준으로 삼으면 이를 입증해 지원금을 받기 어렵다. 특수고용직 종사자와 프리랜서도 소득 정보 파악이 어려워 사각지대 발생이 불가피하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1차 긴급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지급했지만 그 이후라도 추가 선별지급을 위해서는 소득 파악 등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했어야 했다”며 “선별지급 방안은 업종 간과 업종 내, 소상공인과 저소득 근로자 사이 등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3차 재난지원금 지급 공방… “선별해야” vs “전 국민에”

 

코로나19 3차 유행으로 직격탄을 맞게 되면서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정부의 ‘3차 재난지원금’ 지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성탄절과 송년모임 등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지난 9월 겪은 ‘악몽’이 다시 시작됐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3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24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서비스업종의 영업 제한이 현실화됐다. 클럽·단란주점 등 유흥시설의 집합이 금지되고, 음식점은 오후 9시부터, 카페는 영업시간 내 포장·배달만 가능하다. 지방도 예외가 아니다. 경남은 제주 연수를 다녀온 진주 이·통장 관련 확진자를 비롯해 지역감염이 급속히 확산하자 26일 정오부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1.5단계로 격상했다. 앞서 거리두기 2단계가 적용된 진주시와 하동군에 대한 거리두기 단계도 그대로 유지됐다.

 

이러한 제한 조치에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2차 재난이 시작됐다”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한식업을 하고 있는 이모(67·여)씨는 “이번 주에 예약했던 단체 예약이 줄줄이 취소됐고, 아마도 다음 달 초 예약자들까지 모조리 취소 연락이 올 것 같다”면서 “이달에도 보름 넘게 문을 닫다시피 했는데, 기대마저 사라졌다”며 애꿎은 마스크만 매만졌다.

 

이런 어려움은 자연스럽게 3차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로 연결된다. 정부는 올해 들어 2차례에 걸쳐 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지난 5월에는 전 국민에 가구당 최대 100만원을 지급했고, 9~10월에는 소상공인과 고용 취약계층,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최대 200만원을 지급한 바 있다.

류종우 영남대 사회교육원 교수(경영학)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경제활동의 중단은 영세 자영업자 등에게 소득 상실과 임대료 체납, 빚의 증가를 의미한다”며 “이들에 대해 일부 지원정책이 시행되고 있지만 (정작 그 지원에 있어서) 선별할 수 있는 체계가 기존에 갖춰져 있지 않다 보니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데에 많은 혼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호 기본소득당 대변인은 “빠지는 사람도, 절차가 복잡해 포기하는 사람도 없는 보편적인 코로나19 극복지원금을 지급하면 된다”면서 “정부는 지금이라도 선별 지원의 환상을 깨고 모든 국민을 위한 정책을 추진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대구·부산=김덕용·오성택 기자, 전국종합 kimd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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