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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로봇슈트 입고 뚜벅뚜벅… ‘아이언맨의 꿈’ 한국이 연다

입력 : 2020-11-15 20:23:44 수정 : 2020-11-15 22:4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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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팀 ‘사이배슬론’ 금·동메달
로봇 의수·전동휠체어 등 6개 종목 경연
2번째 대회 20개국 53개팀 비대면 출전

첫 대회 동메달 하반신 마비 김병욱 선수
피나는 재활 끝 웨어러블 로봇 종목 金
“4년간 기술 발전 체감… 걸음 더 빨라져”

자동차 구동하듯 조작 ‘워크온슈트 4.0’
착용자 걸음습관 등 맞춰 세팅 최적화
韓기술력, 스위스·미국 꺾고 정상 과시
“걷기 간절한 장애인에 희망 주고 싶어”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EXO 종목에서 김병욱 선수의 금메달과 이주현 선수의 동메달이 확정된 후 공병철 교수가 이끄는 앤젤로보틱스팀이 환호하고 있다. 카이스트 제공

“가자!”

 

지난 13일 대전 카이스트(KAIST)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진행된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 EXO(웨어러블 로봇·Powered Exoskeleton Race) 종목에 출전한 엔젤로보틱스팀의 김병욱(47) 선수가 우렁찬 기합과 함께 출발선을 나섰다. 몸통부터 하지에 이르는 신체 외부에 로봇을 착용하고, 양팔로는 로봇 조작 장치가 부착된 목발 형태의 크러치를 쥔 채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하반신 마비인 김씨는 양쪽 다리에 전혀 감각이 없다. 착용한 로봇을 통해 다리를 움직이고 크러치로 양팔을 움직여 균형을 잡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이다.

 

◆4년 전 대회 3위 김병욱, 올해 세계 정상

 

EXO 종목의 6가지 과제 중 첫 관문은 앉았다가 일어서기. 의자에 앉았다가 일어선 뒤 탁자에 놓인 컵 5개를 쌓아 자체적으로 얼마나 상반신을 움직일 수 있는지도 보기 위해서다. 로봇의 골격을 통해 사람의 골반과 무릎의 움직임을 제대로 구현해야 통과할 수 있다.

지난 13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에서 EXO 종목에 출전한 김병욱 선수가 계단 오르기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카이스트 제공

심판이 첫 과제를 성공적으로 통과했음을 알리기 위해 녹색기를 들어 올리자 두 번째 과제인 지그재그 구간이 다가왔다. 옷걸이와 3개의 탁자로 구성된 4개의 장애물 구간을 지그재그로 통과해야 한다. 선수의 주변으로 경호원처럼 팀원 3명이 둘러싼 채 함께 이동했다. 혹시라도 로봇 조작이나 운용에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선수가 쓰러져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김씨는 걸음마다 “하나, 둘”을 외치며 빠르게 두 번째 과제를 완수했다.

 

세 번째는 평지 위에 나무토막이 가로, 세로, 대각선 등으로 배열돼 울퉁불퉁하게 조성된 험지 구간을 걸어서 통과하는 과제다. 이 과제는 울퉁불퉁한 지면을 딛는 발바닥에 가해지는 다양한 압력과 그에 따른 몸의 기울어짐, 보폭 등을 감지하면서 잘 걸을 수 있는지, 결국 로봇이 잘 구동되는지를 보기 위한 것이다.

 

험지 다음은 계단 오르내리기로, 관절의 움직임과 그 과정에서 걸음의 정확성을 평가하는 과제다. 김씨는 6개의 계단을 올라 잠깐 평지를 지난 뒤 안전하게 다시 6개의 계단을 내려갔다.

 

다섯 번째는 옆으로 기울어진 경사로(경사 약 20도)를 통과하는 과제다. 로봇의 균형잡기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으로 참가 팀들이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고, 포기하는 경우도 속출한다. 주위 팀원들이 좀 더 가까이 다가섰고, 김씨의 이마에도 더 많은 땀방울이 맺혔다. 하지만 통과에는 문제가 없었다.

 

마지막은 경사로 통과. 계단이 아닌 경사로를 오를 때는 무릎과 골반 외에 발바닥과 몸 전체의 기울어짐을 함께 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발바닥의 압력감지, 발목 관절의 움직임과 관련한 로봇의 능력도 중요하다. 이와 함께 선수가 옆의 난간을 잡고 자신의 힘도 함께 쓰며 종합적임 움직임을 통해 과제를 수행한다. 오르막의 끝부분에서 김씨의 얼굴에 잠시 힘겨운 기색이 스쳤다. 그러나 그는 “자, 마지막이다! 올라가자!”라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미션을 완수했다.

 

모든 과제에서 만점(총점 100점)을 받은 김씨는 세 번째 시도에서 3분47초의 기록으로 이번 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8년 불의의 뺑소니 교통사고로 장애를 떠안은 뒤 2016년 카이스트 공경철 교수(기계공학)의 엔젤로보틱스팀에 연구에 참여하며 훈련과 재활을 병행한 피나는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4년 전 스위스에서 열린 1회 대회에서 동메달을 따냈던 그는 “걷기를 희망하는 모든 사람, 마비환자들을 위해 더 편안한 로봇을 개발해내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13일 대전 카이스트에서 열린 사이배슬론 2020 국제대회에서 EXO 종목에 출전한 이주현 선수가 험지 걷기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카이스트 제공

김씨와 함께 같은 팀 소속으로 출전한 이주현(20·여) 선수는 5분51초의 기록으로 스위스 트와이스팀의 실케 판(4분40초)에 이어 동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이씨는 지난해 6월 공 교수 연구팀에 합류하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올해 초 김씨와 함께 최종 선수에 선발됐고, 대학 합격의 겹경사를 맞이했으나 학업과 훈련의 고된 시간을 잘 극복해낸 순간이었다.

 

◆스포츠·첨단기술·의학의 결합체, 사이배슬론

 

사이배슬론은 인조인간을 뜻하는 사이보그(cyborg)와 경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애슬론(athlon)의 합성어이다. 신체의 일부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로봇과 같은 생체공학 보조장치를 착용하고 겨루기 때문에 ‘아이언맨’ 대회로도 불린다. 1회 대회는 2016년 10월 스위스에서 열렸고, 2회인 올해 대회 또한 지난 5월 스위스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대유행 상황 탓에 연기되며 각국에서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자 나라에서 경기를 진행하며 이를 영상으로 촬영해 대회 본부에 보내는 방식이었다.

사이배슬론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전기 자극 자전거 △로봇 의수 △로봇 의족 △EXO △전동 휠체어의 6개 종목으로 구성된다. 올해 대회에는 6개 종목에 20개국의 53개 팀이 도전장을 냈다. 엔젤로보틱스팀이 출전한 EXO 종목에는 8개국 12명의 선수가 기량을 겨뤘다. 중앙대 신동준 교수(기계공학)가 이끄는 비어겐팀은 이번 대회 FES 종목에 참가해 김영훈 선수가 5위를 기록했다.

 

사이배슬론 대회 진행은 스포츠처럼 보이지만, 로봇 제어 기술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최첨단 로봇기술이 총동원된다. 여기에 선수의 재활과 관련한 의료 분야의 역량도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팀을 구성하기 위해 로봇공학자와 재활의학 관련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모인다.

 

엔젤로보틱스가 이번 대회를 위해 개발한 장비는 ‘워크온슈트 4.0’으로 장비 무게가 30㎏에 이른다. 하지의 감각이 전혀 없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자동차를 조작하는 것처럼 장비를 움직여 걸음을 내딛게 된다.

단순히 로봇을 잘 만드는 것 외에 소프트웨어적으로 이를 잘 구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훈련 과정은 기본적으로 로봇과 관련 시스템을 구축한 뒤 선수가 이를 착용해 최적화하는 과정이 더해진다. 엔젤로보틱스팀의 최정수 영남대 교수(로봇기계공학)는 “보통 60걸음 정도를 걸으면 착용자에게 맞는 기초적인 세팅이 완성된다”며 “이후 훈련을 통해 착용자의 운동능력이나 걸음걸이 습관과 관련해 걸음마다 발바닥에 가해지는 충격량과 압력, 몸의 기울어지는 각도 등의 빅데이터가 쌓인 뒤 머신러닝되며 최적화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EXO 종목에서 5분 내의 기록이면 세계 정상권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의 경쟁자로는 스위스공대(ETH)가 이끄는 스위스팀과 미국항공우주연구소(NASA)의 지원을 받는 미국팀 등이 꼽힌다. 이들 모두 점수로는 만점을 받았기 때문에 시간 순서대로 순위를 가렸다. 김씨와 이씨는 1차 시도에 이미 4분46초와 6분11초의 기록으로 메달권에 들었다.

 

다양한 분야의 역량이 결집되는 만큼 대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남다르다. 선수들이 한 걸음을 뗄 때마다 가족과 장애인, 개발자, 의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주먹을 꼭 쥐거나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김씨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어머니 손병원(74)씨가 다가가 “잘 했어 아들, 정말 고생했어”라며 아들을 꼭 껴안았다. 휠체어를 타고 함께 경기를 지켜보던 척수장애인 김승환(32)씨도 감격에 눈물을 보였다. 김승환씨 또한 지난해 앤젤로보틱스팀의 선수 후보에 올라 훈련을 함께 진행했으나 건강 상태 탓에 최종 선발되지는 못했다. 그는 “4년 전보다 걸음이 더 빨라지고, 우리나라 기술이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느꼈다”며 “빠짐없이 코스를 통과하는 것을 보며 저뿐 아니라 많은 장애인이 희망을 가지면 좋겠다”고 기대를 전했다.

 

대전=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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