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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기독교의 상징이 된 이유 [명욱의 술 인문학]

입력 : 2020-11-14 19:00:00 수정 : 2020-11-13 20: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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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와인은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포도’가 인간에게 뜯기고 밟히지만, 결국 ‘와인’이라는 새로운 삶을 사는 모습이 예수의 모습과 유사해서다.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어릴 적 친구 따라 교회를 가면 성찬식이라는 의식을 맞이하곤 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최후의 만찬 때 자기 죽음을 기념하여 빵과 와인을 나누라는 복음서 말씀을 따르는 의식이다. 예수는 만찬에서 와인은 자신의 피고, 빵은 자신의 살이라고 말한다. 왜 많은 술 중에 와인을 예수의 피라고 지칭했던 것일까? 와인의 색이 단순히 피의 색과 유사해서 그런 것일까?

실은 의외로 와인을 ‘자신의 피’라고 일컬은 기록이 꽤 많다. 수메르 문명에서 와인의 여신인 게스틴(Gestin)은 자신의 피는 와인이며, 흙과 함께 섞어서 인간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즉, ‘와인=피’라는 공식은 기독교도만의 문화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기독교에서는 와인은 단순히 피가 아니라, 부활과도 연관이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고 성경에 기록돼 있는데, 이것이 와인과 유사하다. 부활했다는 예수의 삶이 포도나무와 포도, 그리고 와인과 유사하다고 유럽인은 봤다.

포도나무는 포도 수확이 끝나고 가을이 되면 철저하게 말라비틀어진 존재가 된다. 그냥 보면 마치 죽었다고 느껴질 만큼 볼품이 없다. 하지만 봄이 지나 여름이 되면 죽었다고 생각했던 가지에서 수많은 잎이 나오며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된다.

또 하나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에 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포도를 뜯어야 한다. 뜯긴 포도송이는 발에 밟혀 짓이겨져서 와인이 된다. 이처럼 인간에게 처절하게 뜯기고 밟히며 모욕당하는 부분은 예수의 고된 삶과 같다. 무엇보다 포도나무(또는 포도)는 이러한 힘든 과정을 거친 후에 너무나도 영롱한 와인으로 재탄생한다. 이는 힘든 역경을 거치고 새로운 삶을 보이는 예수의 모습과 일치한다.

이렇게 예수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 와인이 됐고, 예수의 피인 와인은 중세시대만 하더라도 아무나 쉽게 만들 수 없었다. 수도원에서 성직자들이 귀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이렇다 보니 특권층이 즐기는 술이 됐다. 반대로 이슬람교에서는 7세기부터 술이 예배를 방해한다고 금주령을 내렸다. 이후 유럽과 달리 이슬람 세계에서는 와인을 포함해 술을 마시지 않게 됐다.

원래 와인은 암포라라는 항아리에서 발효 및 숙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갈리아(프랑스 지방 등) 원정을 떠나고, 거기서 오크통에 맥주를 담아 만드는 게르만인을 발견한다. 이후 항아리 숙성보다는 참나무로 만든 가벼운 오크통이 이동 및 숙성에 훨씬 편리하다는 것을 알고, 점차 이 오크통을 와인 저장고로 사용하게 된다. 알고 보면 맥주 문화도 들어간 것이 바로 와인이기도 하다.

참고로 ‘톤(ton)’이라는 무게 단위도 와인에서 왔다. 중세시대 프랑스 보르도에서 와인을 영국으로 수출하면서 용량을 체크하기 위해 오크통을 두들겨봤는데, 이때 ‘통’이라는 소리가 나면 꽉 찼다고 인식한 것이 톤의 유래다.

성찬식에 주로 쓰이는 와인은 수도원 등에서 직접 빚는 것도 있지만, 와인 애호가가 마시는 고가의 제품이 아닌, 저렴하고 달콤한 와인이 대부분이다. 내 입맛에 맞으면 됐다.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교수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는…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객원교수. SBS팟캐스트 ‘말술남녀’, KBS 1라디오 ‘김성완의 시사夜’의 ‘불금의 교양학’에 출연 중.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 ‘말술남녀’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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