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중 삼성전자 언급하며 오열
“천재 한명이 수십만 먹여살려”
유별난 인재 사랑 널리 알려져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공개석상에서 두 차례 눈물을 보였다. 한 번은 ‘비자금 조성’ 혐의로 재판을 받던 때, 다른 한 번은 속죄의 뜻으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평창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됐을 때다. 가장 감정이 북받친 나락과 환희의 순간으로 해석된다.
이 회장은 2008년 조준웅 삼성 특별검사팀으로부터 비자금 조성 등 혐의로 기소됐다. 그해 7월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여섯번째 재판에서 판사와의 문답이다.
“계열사 중에 특별히 중요한 회사가 있나요.”(판사)
“전자와 생명입니다. 삼성전자에서 나오는 제품 중 11개가 세계 1위인데 1위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런 회사를 만들려면 10년, 20년 갖고는 안 됩니다.”(이 회장)
이 회장은 목이 메였고 눈물을 흘렀다. 이듬해 이 회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았다. 글로벌 삼성에는 그림자도 짙게 드려졌다.
이 회장이 속죄할 기회는 올림픽과 함께 찾아왔다.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전을 도와달라는 요청이 온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2차례 실패한 후였다. 재계와 체육계는 이 회장 도움을 받자고 제안했고, 정부는 2009년 12월 이 회장을 단독 사면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10년 넘게 활동해온 영향력을 국가를 위해 활용해 달라는 뜻이었다.
이 회장은 사활을 걸었다. 2010년 2월부터 1년 6개월 동안 단독출장만 11차례 떠나는 등 IOC 위원 110명을 거의 모두 찾아다녔다. 이동거리만 21만㎞. 지구 다섯바퀴에 해당한다. 사위인 김재열 대한빙상경기연맹 회장 겸 제일모직 사장은 아예 해외에 살다시피 하며 유치 활동을 지원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올림픽 ‘톱 스폰서’(최우선 후원사)이다 보니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IOC 윤리 규정 때문에 그룹 차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며 “이 회장이 나홀로 뛰는 것을 지켜만 봤다”고 전했다.
그리고 2011년 7월6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외쳤을 때, 카메라에 포착된 이 회장의 눈가에선 눈물이 흘렀다. 형이 확정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원포인트 특별사면·복권’을 받은 부담과 압박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되는 장면이었다. 이 회장은 귀국길 심경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고 답했다.
다른 한편으로 유명한 게 이 회장의 인재 사랑이다.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 직원을 먹여 살리는 인재경영의 시대”라는 말은 잘 알려져 있다. 이 회장은 2002년 6월 ‘S급 핵심인력 확보·양성 사장단 회의’에서의 “S급 인재는 사장이 직접 뛰어다녀도 찾을까 말까”라며 “업무 절반 이상을 S급, A급 인재를 뽑는 데 할애하라”고 선언한 바 있다. 성별, 학력, 학벌을 따지지 않는다는 철칙도 유명하다.
조현일·이우중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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