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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은 진화의 승리·발전 시작점
시간과 공간 뚫고 더 높은 도약

지구라는 별에 와서 내가 첫걸음을 뗀 것은 언제였을까?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도 두세 살 안팎 무렵이었을 테다. 첫걸음 이후 이리저리 뻗은 시골길과 도시의 길들, 눈비를 맞으며 들판을 가로지르거나 내륙의 강물을 따라 걷고, 평지돌출한 산속에 펼쳐진 구불구불한 산길을 걸었겠지. 더러는 길 잃고 헤맨 적도 없지 않으리라. 평생 걸은 거리는 지구 몇 바퀴 돌 만한 길이일지도 모른다.

직립보행은 호모사피엔스가 진화의 미로에서 취득한 유의미한 생물학적 능력이다. 사람은 신체를 수직으로 세우거나 수평으로 뉘는데, 두 발로 이동하거나 일할 때는 척추를 세우지만 잠이나 휴식을 취할 때는 수평으로 뉜다. 사람은 직립 자세로 진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고, 바람의 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돛배와 같이 미래로 나아간다. 중국계 미국인 지리학자인 이푸 투안은 ‘공간과 장소’에서 직립이 “질서정연한 인간세계를 창조하고 유지하기 위해 날마다 중력과 다른 자연의 힘에 맞서”며 문명활동을 잇는 데 필요한 조건이라고 말한다.(138쪽)

장석주 시인

직립은 자세의 진화적 승리이자 사회적 공간을 향한 전진의 시작점이다. 사람이 땅을 딛고 서는 일은 행동의 예비단계이고, 제 신체구조에 따라 세계를 파악하고 거머쥐려는 공간 기획의 일부다. 직립 자세는 불과 도구를 다루는 손의 자유를 보장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미래 가능성을 넓히고 더 높은 단계로의 도약을 약속한다. 이때 직립은 생물학적 진화를 견인하는 자연선택의 결과일뿐더러 인간이 지구 정복자와 문명으로 질주하는 동인(動因)이자 촉매가 되었을 테다.

직립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stand(서다)인데, 이 단어는 키(stature), 법규(statute), 재산(estate), 설립하다(institute) 같은 성취와 질서라는 의미를 공유하는 한 무더기 단어군의 뿌리다. 이는 대지를 딛고 직립한 채로 하는 행위의 함의가 얼마나 넓은가를 예증하는 사례일 테다.

생후 여섯 달 이전의 아기들은 종일 척추를 수평으로 누운 채 지낸다. 아기와는 달리 성인은 자거나 와병 중일 때를 빼고는 직립 자세를 취한다. 아기가 첫걸음을 뗄 때, 오, 아기의 눈동자가 커지고 맥박과 호흡은 빨라진다고 한다. 이건 직립 자세가 세계를 향해 존재 지평을 확장하고, 문명의 질서를 세우고 미래기획 속으로 저를 밀어넣는 능동성의 발로라는 사실에서 오는 무의식적인 기대와 흥분을 보여준다.

직립 자세로 전방을 주시하면서 제 앞에 놓인 위험을 회피하고 공간을 더 잘 통제하는 조건을 얻는다. 이 자세에서 세계에 대한 시각·후각·미각·촉각 정보를 얻는 데 유리한 조건을 거머쥐는 것이다. 위상학적 위계에서 보자면 전방은 미래와 존엄, 신분의 높음을 뜻한다. 후방은 과거로의 퇴영과 지위의 하향, 신성성에서 세속으로의 후퇴를 뜻한다. 예로부터 신분이 더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앞에 서는 게 일반적이다.

걷는 이는 제 신체 중앙의 중심축과 좌표체계를 앞으로 밀며 나아간다. 잘 알다시피, 사람은 척추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다. 두 발을 번갈아 내딛는 걸음은 신체에너지의 투자와 회수, 근육의 긴장과 이완이라는 생물학적 순환과 그 리듬을 보여준다. 지구에 영장류는 250여종인데, 오직 인간만이 직립보행을 한다. 이것은 사람의 미래 영역을 넓히고 더 높은 도약을 약속하건만 우리는 언제 걷는 일의 숭고함에 대해 숙고한 적이 있던가? 직립보행은 인간됨의 명민성을 증명하고, 시간과 공간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며, 이것으로 장소와 장소를 잇고, 지구와 우주에 연결되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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