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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스포츠 강국이 아닌 스포츠 선진화가 중요” [세계초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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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21 06:00:00 수정 : 2020-10-20 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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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
“성적지상주의, 폭력사태 악순환 불러
선수·지도자 안정적 생활위한 대책을
폭력·성폭력문제 어디든 존재하지만
책임지는 사람 없기에 체육계 욕먹어”
마을의 수호신이 있다고 여겨지는 언덕을 당산이라 한다. 신성한 이곳을 지키는 보호수가 당산나무다. 유준상 대한요트협회장의 호는 당산나무를 뜻하는 ‘당수(堂樹)’다.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뎌낸 뒤 사람들을 차별 없이 품어주는 쉼터 같은 유 회장의 그릇을 보고 한 지인이 붙여준 것이다. 실제 유 회장은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국가를 수호하는 든든한 당산나무였다면 다른 한편으로는 어려서부터 운동에 익숙한 집안 분위기 덕에 유도와 테니스 배구 마라톤 등 다양한 스포츠를 섭렵했을 뿐 아니라 여러 체육단체에서 행정과 외교를 펼쳐온 체육계의 ‘당수’다. 오랜 세월 묵묵히 체육발전에 힘써온 만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부터 폭력 문제까지 요즘 체육계 현안들을 지켜보는 그는 누구보다 느낀 점도 많고 할 말도 많을 것이다. 체육계 발전에 대한 그만의 철학과 비전을 들어봤다.  

 

―화려한 정치 경력만큼이나 체육계와의 인연도 꾸준하게 이어왔다. 

 

“형님이 유도, 동생이 필드하키 선수였을 만큼 온 가족이 스포츠맨이다. 나도 유도 5단이다. 이처럼 체육 쪽에 익숙하다 보니 1974년 해외대회에 나가는 레슬링 선수단장을 시작으로 1988 서울올림픽 국회지원특별위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그러다 2009년부터 8년간 대한롤러스포츠연맹 회장도 지냈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롤러 인라인 종목의 정식종목 채택을 위해 스포츠 외교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 인연이 대한요트협회 회장으로 연결된 것인가. 

 

“볼보오션레이스라는 요트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게 됐는데 그것이 요트협회와 직접적인 인연이 됐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다. 예로부터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지 않았나.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는 시대에 요트가 대한민국의 새로운 ‘블루 오션’이 될 것이라는 신념이 생겨 회장직을 수락했다. 그런데 막상 맡고 보니 재정자립도가 6%로 체육회 가맹단체 중 꼴찌였다. 밀린 직원 급료와 퇴직금, 시간 외 수당에 미지급 포상금 등을 해결하고 조직을 정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역대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에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대한요트협회 일본지부를 설치하는 등 열심히 준비했지만 올림픽이 연기돼 아쉽다.”

―70대에 마라톤 풀코스 완주는 놀랍다. ‘유준상의 장딴지 근육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는 말이 있다.

 

“65세이던 2007년 마라톤에 입문해 7개월 만에 42.195㎞를 끝까지 뛰었다. 2009년에는 제주울트라마라톤에서 100㎞도 완주했다. 헌정사상 국회의원으로서는 최초다. ‘거거거중지 행행행이각(去去去中知 行行行裏覺)’이라는 말이 있다. 가다 보면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또 행하면 그 속뜻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마라톤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마라톤을 하면서 앞만 보고 혼자 달리는 것이 아니라 옆을 보며 함께 달리고자 했다. 경쟁자와 공존하는 따뜻한 동반 경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지친 마라토너를 부축하며 같이 뛰는 러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속도보다는 방향성을 갖추고 경쟁과 공존이 동반하는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마라톤이 가르쳐줬다.”

 

―40년간 체육계와 함께하면서 한국 스포츠의 안타까운 현실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처음 대한체육회장 선거에 나갔을 때 가맹단체 회장 49명만 투표한다고 하더라. 이것은 권력의 목소리에 좌우되는 구조였다. 그때부터 체육인 동호회 학부모까지 온 국민이 참여하는 투표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지금 1400명이 넘는 대의원 투표 방식으로 바뀔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조재범이나 고 최숙현 선수 사건처럼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했을 때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대한체육회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많았다. 사실 폭력과 성폭력 문제는 체육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자체장 등 일련의 사건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분야에서도 일어난다. 그런데 체육계만 이런 일이 있는 것처럼 집중 조명받는 것은 아쉽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클린센터’ 설치 같은 흔한 대책보다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성적 지상주의는 폭력사태의 악순환을 반복시킨다. 그 고리를 끊으려면 선수나 지도자가 평생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역할 마련의 대책이 필요하다.” 

한국체육의 미래를 이끌어갈 인물이 갖춰야 할 네 가지 덕목으로 ‘능력’ ‘도덕성’ ‘애국심’ ‘소통’을 꼽는 유준상 회장은 “체육계에도 ‘체육꾼’이 아니라 진정한 ‘체육인’이 나와야 한다”며 “국민을 즐겁고 기쁘게 할 체육계의 나훈아나 임영웅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서상배 선임기자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의 갈등도 표면화됐는데.

 

“대한체육회와 문체부는 오랜 기간 사안별로 입장을 달리해 왔다. 최근에는 대한체육회와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분리 문제를 두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안다. 한국체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문체부와 체육회가 상호 보완 작용을 해야 하는데 관계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큰 문제다. 문체부와 체육회가 서로 분리와 통합 주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진솔하게 소통해야 한다. 폭력 문제 해결이나 스포츠 인권 등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을 접어두고 다른 일에 휘둘려 체육계 분열만 조장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체육인 인권 문제에 오롯이 집중할 때다. 특히 최근 체육회장 연임을 위한 정관 개정을 두고 두 조직 간 갈등이 컸는데, 양측 모두 문제가 있었다. 체육회는 특정 인사를 위해 정관까지 바꿀 필요는 없었다. 문체부는 개정된 정관 승인을 5개월이나 미룰 필요가 없었다. 2024 동계청소년올림픽 유치와 2032년 하계 남북공동올림픽 유치 등 당면과제를 위해서라도 두 조직의 협력은 절실하다.”

 

―내년 1월에는 체육 대통령이라고 하는 대한체육회장 선거도 있다. 공직선거법상 출마자격이 없는 이들이 선거에 나온다는 것은 기본에 어긋나는 일이다.

 

“환지본처(還至本處)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있어야 할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능력과 철학, 비전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할 자리가 대한체육회장이다. 욕심보다 먼저 스스로 능력과 소신, 철학이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새 회장 선출 과정에서 자칫 금권, 관권 선거가 될 우려도 느껴진다. 예산과 자리를 이용해 선거를 치르려 하거나 지방자치단체장 등에 기대 선거에 참여하려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안다. 최소한 공직선거법에 준해서 체육회장 선거가 치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한국체육의 미래를 이끌어갈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지 않을까.

 

“내 나름대로 생각한 체육계 리더의 4가지 덕목이 있다. AMPC라고 이름을 붙여봤다. 첫째는 능력(ability)이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외교 역량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언제까지 통역을 데리고 다닐 것인가. 두 번째는 도덕성(morality)이다. 털어서 먼지 날 사람이 중요한 자리를 맡으면 안 된다. 세 번째는 애국심(patriotism)이다. 스포츠는 국위선양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소통(communication)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려면 열린 마음으로 많은 의견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분열의 체육회가 아닌 통합의 체육회가 돼야 한다. 16년간 국회에 있으면서 정치가가 아닌 정치꾼들을 많이 봤다. 그들은 국가나 사회를 보기 전에 자신의 재선만 바라본다. 체육계에도 체육꾼이 아니라 진정한 체육인이 나와야 한다. 스포츠로 국민을 즐겁고 기쁘게 할 체육계의 나훈아나 임영웅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체육계가 나가야 할 방향은. 

 

“경기에서 이기는 기술이 아닌, 체육인 헌장의 기본을 다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체육회부터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 엘리트 체육, 생활체육, 학교체육 등의 구분을 할 것이 아니라 5200만 국민 모두를 위한 스포츠가 돼야 한다. 체육청 독립도 한 방법이다. 이제는 스포츠 강국이 아니라 스포츠 선진화가 중요하다.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고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맞는 체육이 요구된다. 효율적인 투자를 통해 경쟁력도 키울 수 있다. 해외 스포츠기구와 적극적인 교류도 필요하다. 또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에서 유럽 등 선진국들보다 우리나라가 더 잘했듯이 스포츠 분야에서도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우리가 발전을 이룬 정보기술(IT)과 스포츠의 접목이 중요하다.”

― IT와 신기술 쪽에도 지식이 깊은 것으로 안다. 2010년부터 한국정보기술연구원(KITRI) 원장을 맡아 IT 보안에 관심을 가져왔고, 최초로 ‘10만 IT 전문가 양병설’을 주장해 ‘화이트 해커’의 아버지로 불린다. 마지막으로 스포츠와 신기술이 어떻게 결합할 것으로 보는가.

 

“2015년 사이버 해킹 방어대회에서 한국이 23년 만에 우승하는 쾌거도 일궜다. 이제 스포츠도 사물인터넷이나 가상현실, 증강현실과 결합할 것이다. 당장 내년 도쿄올림픽이 무관중 경기로 열린다면 가상현실과 증강현실 기술이 크게 각광받을 것이다. 스포츠 분야에서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지도자들의 선수 평가도 IT기술을 활용하면 좀 더 공정해질 것이다. 앞으로 홈트레이닝과 비대면 트레이닝도 점점 부각될 것인데 새로운 디지털 체육 프로그램 보급에 적극 나설 때다.”

 

대담=김신성 문화체육부장

정리=송용준 기자 eidy015@segye.com

 

유준상 협회장은… ●전남 보성 출생(78) ●광주고·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건국대 정치학 박사 ●제11, 12, 13, 14대 국회의원 ●국제의원연맹(IPU) 부의장, 대한롤러스포츠연맹회장, 국제롤러경기연맹 올림픽특별위원, 국민생활체육회 고문 등 역임 ●한국정보기술연구원(KITRI) 원장 ●한국블록체인기술진흥협회 이사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대한민국 헌정회 이사 ●21세기경제사회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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